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백신 공급을 통해 코로나19 ‘기원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의 계획이 잇따라 무산되고 있다. 중국 백신 공급의 최전선인 브라질에서는 백신 계약이 취소된 데 이어 중국 백신 구매를 놓고 대통령과 보건 당국 수장 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중국 백신 공급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고 있고 백신 계약을 기대했던 개발도상국에서는 미국과 영국 기업의 백신 계약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29일(현지 시간)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에두아르두 파주엘루 보건 장관은 중국 시노백의 코로나19 백신 ‘코로나백’ 구매 문제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마찰을 빚은 뒤 공개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주엘루 장관은 지난달 20일 코로나백 4,600만 개를 구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으나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거부 입장을 밝히면서 계약이 전격 취소됐다.
오는 2022년 대선에서 유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주앙 도리아 상파울루 주지사를 견제하기 위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코로나백 구매에 반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적 이유 외에 임상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중국 백신에 대한 불신도 브라질이 중국 백신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로 꼽힌다. 세계 보건 싱크탱크인 ‘엑세스 헬스 인터내셔널’의 윌리엄 해설틴 회장은 블룸버그통신에 “10만 명 이상에게 백신을 접종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중국의 얘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입장에서 브라질은 백신 공급을 위한 전초기지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백신 공급 경쟁에서 밀리는 중국이 브라질에서 성공적으로 백신 계약을 체결할 경우 안전성 등에 대한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개발도상국으로 백신 공급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마우리시오 산토로 리우데자네이루의 국립대학 교수는 가디언에 “중국은 코로나19가 자국에서 발생했다는 것에 대한 책임을 백신 공급으로 회피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중국에 브라질은 중요한 시험장”이라고 밝혔다. 브라질산 농축산물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이 같은 경제 관계를 무기로 백신 계약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대통령의 반대와 백신에 대해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백신 공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의 백신 확보를 위해 백신 공급 국제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 참여했지만 개발도상국들에도 외면받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미국 제약 회사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 중인 백신 1,280만 회분의 구매 계약을 체결했으며 태국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600만 회분의 구매 계약을 맺었다. 이밖에 필리핀의 30여 개 업체도 아스트라제네카 측과 최소 260만 회분의 코로나19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동남아에 대한 영향력이 큰 중국이 화이자 등 서방 국가의 백신을 비판하며 자국 백신을 홍보하는 ‘백신 여론전’에 나서고 있지만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상황이다.
한편 한국 정부가 백신 계약을 서두르지 않는 가운데 한국인의 83%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세계경제포럼(WEF)의 설문 조사 결과를 인용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동의 비율이 일본은 69%, 한국은 83%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이 백신 계약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에 대해 “보건당국자들은 백신 접종을 서두르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거나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지만 일각에서는 자칫 국제사회의 백신 확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