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카파도키아 여행법③ 동굴 교회와 지하 도시
괴레메 야외 박물관 버클 교회의 내부 벽화. 원래는 사진 촬영이 금지됐는데 현장에서 허락을 받았다. 서기 9세기 작품인데 아직도 생생하다.
터키도 열렸다. 한국인이 유난히 사랑하는 나라 터키도 예전 같은 한국인의 사랑을 기대하고 있다. 11월 중순 터키 정부 관광청 초청으로 열흘간 터키를 다녀왔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터키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카파도키아 여행법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 전 세계가 꿈꾸는 관광지 카파도키아의 생생한 현장을 중계한다.
동굴 교회
괴레메 야외 박물관 어둠의 교회 외부. 괴메레 야외 박물관엔 이렇게 생긴 동굴 교회가 서른 개나 있다.
카파도키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문화유산이자 자연유산이어서 복합유산이다. 우리 제주도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올랐듯이, 카파도키아도 유네스코에 등록된 공식 명칭이 있다. ‘괴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바위 유적.’ 카파도키아의 수많은 바위 중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괴레메 외곽의 바위와 다른 지역의 일부 바위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괴레메 국립공원의 다른 이름이 괴레메 야외 박물관(Goereme Open-Air Museum)이다. 동굴을 파고 들어가 사람이 살았던 사연은 다를 게 없는데, 왜 이 일대 바위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나아가 세계유산이 됐을까. 간단히 말하면 동굴 교회여서다. 그것도 원형이 잘 보전된 벽화를 지닌 동굴 교회이어서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에만 동굴 교회 서른 곳이 있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의 동굴 교회는 서기 7∼12세기 지어졌고, 동굴 교회 내부 벽에 그린 성화(聖畵)는 9∼14세기 작품이다.
어둠의 교회 내부 벽화. 어둠의 교회 성화는 가장 보전이 잘 돼 있다. 1000년 전 벽에 그린 그림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에 입장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교회가 성 바실 교회다. 비잔틴 시대 카파도키아 지역의 주교였던 성 바실리우스(329∼379)에서 이름을 따 왔다. 기독교에서 바실리우스는 삼위일체설을 확립한 성인 중 한 명으로 통한다. 그는 극단적인 금욕 생활을 했다고 전해온다. 카파도키아에서 금욕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1000년 묵은 성화
어둠의 교회 성화. 예수와 성인 얼굴이 훼손된 게 보인다. 일부 무슬림의 소행이라고 한다.
성 바실 교회를 제외하면 괴레메 야외 박물관의 동굴 교회는 이름이 별나다. 사과 교회, 뱀 교회, 샌들 교회, 버클 교회 등등. 1950년대 동굴 교회가 발견됐을 때 붙였던 별명이 이름처럼 굳어졌다. 개중에서 ‘어둠의 교회’가 제일 특별하다. 야외 박물관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는데, 어둠의 교회에 들어가려면 또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 어둠의 교회 성화는 11세기 작품이나 100년 전 그림보다도 선명하다. 이유가 있다. 이 동굴에는 빛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어둠의 교회다. 볕이 잘 안 드는 데다 가장 늦게 발견돼 아직도 그림이 형형하다.
버클 교회 천장에 그려진 성화. 이 그림의 예수 얼굴도 훼손됐다.
어둠의 교회 천장에 그려진 성화. 디테일이 놀랄 만큼 치밀하다. 가장 높은 천장에 그려진 벽화여서 그런지 예수 얼굴이 손상되지 않았다.
어둠의 교회는 내부 촬영이 금지됐다. 혹시나 싶어 터키 정부 관광청의 초청 공문을 보여주니 잠깐 촬영을 허락해줬다. 버클 교회에서도 허락을 받았다. 버클 교회 성화는 9세기 작품이다. 괴레메 동굴 교회 성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비잔틴 시대를 통틀어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어느 동굴 교회든 예수를 중심으로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있는 성화가 자주 보인다. ‘청원(Deisis)’이라 불리는 성화로 비잔틴 시대에 특히 많이 그려졌다. 예수와 성인의 얼굴 대부분이 훼손됐다. 일부 무슬림의 소행이라고 한다. 아무튼, 내부 촬영이 금지된 동굴 교회 네 곳 중에서 두 곳을 촬영했다. 운이 좋았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을 방문한 한국인이 꽤 된다. 현지 여행사에 따르면, 선택 관광으로 열기구 체험을 선택하지 않거나 날씨가 안 좋아 열기구가 안 뜰 때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괴레메 야외 박물관을 들르기도 한단다. 다시 말해 열기구를 타면 1000년 묵은 성화를 놓치고 간다는 얘기다. 괴레메 시내에서 1㎞ 거리에 있다.
지하 도시
데린쿠유 지하 도시 모습. 지하 55m에 펼쳐진 또 하나의 세상이다. 약 1500년 전, 이슬람 세력의 약탈을 피해 초기 기독교인이 이 지하 도시에 숨어들었다.
괴레메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달리면 데린쿠유라는 작은 농촌 마을이 나온다. 아무리 둘러봐도 볼품없는 시골 마을인데, 어마어마한 비밀을 땅속에 숨기고 있다. 데린쿠유는 카파도키아를 대표하는 기독교 성지 ‘지하 도시’를 품은 마을이다.
터키인 가이드 이스마일에 따르면, 카파도키아에는 1000개가 넘는 지하 도시가 있다. 굳이 발굴할 필요가 없어 내버려 둔단다. 데린쿠유와 카이마클르가 지하 도시로 유명한데, 모두 6∼7세기 기독교 유산이다. 원래는 히타이트의 지하 창고로 쓰였던 동굴을 기독교인이 비상 대피소로 쓰기 위해 더 깊고 더 넓게 팠다. 동쪽에서 아랍인이 넘어오면 기독교인은 지하로 들어가 몇달을 버텼다. 이름만 도시가 아니다. 최대 1만 명이 지하에서 살았다고 한다. 깊이가 최대 100m에 이른다. 현재 개방된 지하 도시는 지하 55m 7층까지다. 거실, 부엌, 와인 창고, 교회, 학교, 가축우리도 갖췄다. 우물로 위장한 환풍구도 있다.
데린쿠유 지하 도시로 통하는 돌계단. 비좁고 낮아 계단을 다니려면 허리를 숙이고 무릎도 굽혀야 한다.
지하 도시 안은 비좁고 갑갑하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내릴 땐 허리 숙이고 무릎 굽힌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어야 한다. 통로 계단이 하나여서 진입하려면 소리를 질러야 한다. 안 그러면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오랜만에 유격 훈련을 받은 것 같았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지하 도시는 꼭 들른다. 가이드가 없으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터키 지도. 카파도키아가 중앙에 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