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 않아" 110만 유튜버의 호소…왜 'BJ 스토킹' 계속되나

by 민들레 posted Dec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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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카가 타고 있는 택시를 오토바이로 뒤쫓는 스토커의 모습. / 사진 = 릴카 유튜브 갈무리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뒤 스토커가 더 악질이 됐습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유명 BJ(개인방송 진행자)이자 구독자 110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릴카는 지난달 29일 3년간 스토킹 범죄에 시달리고 있다며 증거 영상을 공개했다. 2019년 여름부터 릴카를 뒤쫓아 온 스토커는 집 앞에서 4시간 이상 대기하며 선물을 두고 가거나 그가 타고 있는 택시를 오토바이로 뒤쫓는 등 지속적으로 공포감을 줬다. 릴카는 "경찰에 다섯차례나 신고했다"라며 "집에 있기 싫어 친구 집을 전전했다"고 호소했다.

인터넷 1인 방송인들을 겨냥한 스토킹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튜버를 뒤쫓다 앙심을 품고 그 가족을 살해하거나 배달원을 위장해 무단으로 자택에 침입하는 등 여성 방송인이 표적이 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연예인들처럼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만 연예인에 비해 보호조치가 미흡해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크다고 지적한다.


BJ 뒤 밟다 앙심 품고 잔혹하게 가족 살해…"사생활 노출된 인터넷방송인 숙명(?)"

 

릴카가 공개한 스토커가 자신의 집 인터폰을 누르는 모습. / 사진 = 릴카 유튜브 갈무리


릴카와 경찰에 따르면 릴카 측은 최근 경찰에 남성 스토커 A씨의 신원을 특정하고 100m 이내 접근금지 신청과 민사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한 상태다. A씨는 3년간 뒤를 밟거나 집 앞에 선물을 두고 가는 등 스토킹 행위를 지속했으며 이사간 집 주소를 알아내 현관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현재 진행 중"이라며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고 있어 정확한 내용은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인기 유튜버 사이에서는 이같은 '악성 스토커' 피해가 드물지 않다. 지난 10월 21일부터 경범죄로 다뤄지던 스토킹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력 처벌하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으나 현장에서는 아직 큰 차이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연예인들을 괴롭히던 '사생팬'(사생활을 침해하는 팬)이 유튜버들에게는 스토커인 셈이다.

지난 10월 4일 서울 은평구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는 한 30대 남성이 침입해 5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인근 건물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다. 이 남성은 피해자의 딸인 인터넷방송 BJ가 자신을 방송 도중 강제퇴장시킨 것에 앙심을 품고 스토킹해 왔다. 이 남성은 이날 "딸을 만나게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자 분노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달 19일 서울 금천경찰서는 여성 BJ의 집을 찾아가 '꽃 배달이 왔다'라는 문자를 보내 문을 열게 한 뒤 집 안에 무단침입한 30대 남성을 검거했다. 이 남성은 피해자의 손목을 잡아끌고 나가자고 하는 등 폭력을 행사했으며, 아파트 계단에 숨어 있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으나 "만나주지 않아 찾아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관련업계는 인터넷방송의 특성상 더 많은 스토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50만 구독자를 보유한 한 유튜버의 소속사 관계자는 "길거리 방송이나 집 안 방송, '팬방'(팬 소통 방송)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방송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스토킹 범죄에 취약하다"며 "소속사도 영세한 경우가 많아 관련 범죄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처벌법 시행됐지만 사각지대 노리는 스토커들…김병찬도 그랬다

 

지난 10월 5일 오전 11시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철제 셔터가 내려져 있다. 같은 달 4일 30대 남성이 이 사무실을 찾아 사무실 대표를 살해한 뒤 인근 빌라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음에도 아직까지 수사기관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지목된다. 법에 규정된 행위가 5가지에 불과해 처벌이 불가능한 사각지대를 노리는 스토커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스토커에게 내려진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했을 경우 받는 처벌은 과태료 부과에 불과하다.

스토킹 피해를 수차례 신고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을 살해한 김병찬(35)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여성은 전 남자친구인 김병찬의 스토킹에 시달리다 다섯차례에 걸쳐 스토킹 피해 신고를 했으며, 지난 7일부터 경찰 신변보호를 받았다. 또 법원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 금지와 정보통신 이용 접근 금지 등의 잠정조치가 내려졌으나 결국 김병찬의 손에 숨졌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처벌법이 분명히 있음에도 동종 범죄가 반복되는 것은 법률을 집행하는 수사기관의 문제"라며 "이미 범죄혐의가 있다고 봐 잠정조치가 내려진 사안에 대해서도 경찰이 증거요청을 하는 것은 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기간 반복되는 스토킹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적시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