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역 임시선별진료소에서 근무중인 의료진. 2021.10.2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환자들 임종을 지키는 건 의료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이렇게 사망자가 많이 나오면 버티기 힘들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연일 7000명대를 기록하고 누적 사망자가 4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서울의 한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근무하는 A씨는 한숨을 쉬었다. A씨는 "고연차인 저도 요즘은 '이렇게 계속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코로나19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면서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간호사 등 의료진이 극한의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위중증 환자가 역대 최다치인 800명대로 치솟으면서 한숨이 깊어지는 의료진을 위한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코로나19 대응 속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의료진
의료진은 코로나19 대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오는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김모씨는 "방호복은 물론 고글에 마스크까지 쓰는데 고글에 습기가 너무 차서 앞이 하나도 안 보이거나 숨이 차기도 한다"라며 "그런 상태에서 환자를 최대한 돌봐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어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지는 동료들이 많다"라고 토로했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코로나19 환자들의 임종을 곁에서 지켜보고 시신 수습까지 맡으면서 '대리 외상'을 겪는 의료진도 늘어나고 있다. 안수경 국립중앙의료원 간호사는 "영상통화로 임종을 지키고 싶다는 보호자 요청에 옆에서 환자의 사망부터 가족의 울음까지 모두 지켜본다"라며 "시신을 소독하고 밀봉하는 것까지 간호사가 맡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하는 간호사들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최근 위중증 환자가 급증해 사망자가 더욱 늘어나면서 의료진의 심리적 피로도가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얼마 전만 해도 건강하셨던 분들이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환자들을 최근 많이 봤다"라며 "감정적으로 회복하지 못한 채 환자들이 사망하는 모습을 연속적으로 보게 되니까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주 업무가 아닌 일에 시달려 부담감을 느낀다는 반응도 나온다. A씨는 "코로나 병동에는 보호자들이 못 들어오는 게 원칙이지만 이걸 이해하지 못해 다짜고짜 따지는 보호자들도 있다"라며 "환자들 볼 시간도 부족한데 감정노동까지 하게 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라고 하소연했다.
◇ "심리지원보다는 인력 수급이 근본적인 해결책"
실제로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코로나19 의료진 등 재난대응 인력 1437명을 대상으로 마음건강검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 이상인 52.3%가 우울증상을 보였다. 또 25.4%가 ‘고도’ 수준의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증상을 나타냈다.
하지만 의료진은 이에 대한 지원 대책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심리상담보다는 애초에 의료인력을 늘려 업무 부담을 분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A씨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도 수간호사에게 면담을 신청하거나 퇴사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라며 "그렇게 힘든 상황 자체가 안 일어나도록 처음부터 간호 인력을 늘리는 게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안 간호사는 "작년에도 심리상담을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해서 지원금을 받았지만 애초에 일이 너무 많아 상담받을 시간도 없다"라며 "간호사들이 주력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인력을 늘려 심리적 부담을 낮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 간호사 1명당 환자수 법제화와 간호활동 보호 등 내용을 담은 '간호인력인권법'이 10만명의 국민동의청원을 받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료진의 심리적 고통은 지나친 업무량의 결과다"라며 "교대할 인원이 없이 쉼 없이 일해 번아웃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권 교수는 "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의료진의 부담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며 "의료진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현장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