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2>성별 정정 요건에 저항하다

 

지난달 12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교정에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김신엽씨. 오른쪽 사진은 신엽씨가 2019년 스웨덴 교환학생 시절 사용한 배지를 손에 올려 보여 주는 모습. 배지에는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파랑·흰색의 삼색 깃발 위에 여성을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she/her)가 적혀 있다.대전 박윤슬 기자 [email protected]

 

트랜스젠더에게 법적 성별을 바꾸는 것은 남들처럼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주민등록증을 내밀 때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고, 일터에선 ‘왜 이력서의 성별과 모습이 다르냐’는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을 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원은 여전히 생식능력 제거와 외부성기 수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받아야 하는 호르몬 치료와 수천만원이 드는 외과적 수술에는 아무런 지원도 없다. 학교와 가정 밖으로 내몰린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적어도 수년간 숨죽인 채 수술비를 모으는 걸 우리 사회는 그저 방관하고 있다. 여기 이런 현실에 저항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있다.

 

 

“성확정 수술을 모두 받고 오지 않으면 ‘남성’ 선수로 등록을 해 줄 수 없습니다.” 운동에 재능을 보여 코치로부터 선수 등록을 권유받은 트랜스 남성 박영(18)은 올 초 대한체육회에서 이런 말을 전해듣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수년간의 호르몬 치료와 가슴제거술로 남성의 외관을 갖췄는데도, 체육회는 영이를 향해 변함없이 ‘넌 남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영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성별불일치로 인한 고통과 학교에서의 괴롭힘으로 영이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관뒀다. 자신을 키워 준 할머니에게도 이때쯤 커밍아웃했다. 할머니는 ‘내 새끼 행복하면 됐지 울고불고하는 것보다 낫다’며 함께 병원에 가 줬다.

평소에도 건장한 체격이던 영이가 호르몬 치료를 받게 되자, 주변에서는 영이를 더욱더 남성으로 인식했다. 영이가 스스로 말을 하기 전까진 법적 성별이 여성이란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 일곱 번째 자리에 있는 ‘4’(2000년대 이후 출생한 여성)라는 숫자가 영이의 발목을 잡았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 모두가 절 남성으로 받아들이고 대하는데 성기가 있고 없고가 무슨 상관인가요. 위험한 것도 있지만 수술비 감당은 어떻게 하고요.” 영이는 생식능력 제거·외부성기 수술을 받지 않은 채 지난 10월 법원에 성별 정정을 신청했다.

성별 정정을 원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나 비싼 수술비 탓에 외과적 수술을 받지 못한 채 성별 불일치감으로 고통받는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많다. 서울신문이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경제적 부담’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45.8%)에 달했다. 같은 이유로 외과적 수술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4.8%나 됐다.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의료적 조치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호르몬 치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에서 운영하는 건강센터를 찾는다. “센터에서는 가장 저렴한 주사를 맞아요. 저렴한 건 안정성이 떨어질 때가 있어서 보통 겔을 선호하는데 한 달치가 8만원 정도라 매달 사기가 쉽지 않죠.”

외과적 수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트랜스 남성이 가슴절제술을 받으려면 400만~500만원이 든다. 출생 시 성별이 남성인 사람이 여성형 유방증(남성의 가슴이 여성의 형태로 발달하는 증세)으로 수술을 받을 땐 보험이 적용돼 100만원 남짓한 돈이 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생식능력 제거·외부성기 수술까지 모두 받으려면 수천만원이 든다. 가슴절제술을 받기 위해 고깃집에서 6개월간 한 달에 하루만 쉬어 가며 일했던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는 “트랜스젠더들 사이에선 수술비 벌려고 고생했던 때를 군대 시절처럼 얘기하기도 한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트랜스 여성 김신엽(22)씨는 2년 전 스웨덴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비로소 숨을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선 누구도 신엽씨를 남자로 대하지 않았다. 성중립화장실이 도처에 있어 화장실에 가는 걸 참을 이유가 없었고, 여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동아리에서도 신엽씨를 환영했다. 한국에선 많은 트랜스젠더가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이 불편해 집 밖에서는 음료나 음식을 먹지 않는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은 지난 7월 트랜스젠더의 공중 화장실과 관련한 스트레스 요인 경험이 우울 증상 유병률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스웨덴에 다녀온 후 신엽씨는 한국의 성별 정정 시스템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됐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신엽씨를 여성으로 대했고, 후배들도 ‘누나’라고 부르는데 굳이 정정을 위한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을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알게 된 한 변호사는 신엽씨에게 “병역 의무가 있는 상황이라면 난민 신청이 무조건 받아들여진다”며 명함을 건네기도 했다.

지난 9월 법원에 성별 정정 신청을 낸 신엽씨는 아우팅당한 뒤 가정폭력을 겪다 집에서 쫓겨나 성확정 수술을 받을 돈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성별 정정 요건으로 불임 수술을 강제하는 건 개인의 재생산권 등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사는 신엽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예상은 했지만 눈물은 나더라고요.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나 쉽게 단정 짓는 법원에 화가 나죠.” 신엽씨는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신엽씨처럼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을 전혀 하지 않은 트랜스 여성의 성별 정정 신청이 법원에서 허가된 사례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 2017년 가슴확대술과 고환적출술을 하고, 외부 성기 재건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여성의 성별 정정 신청을 허가한 사례가 청주지원 영동지원에서 나왔었다.

트랜스 남성의 경우 올 10월 생식능력 제거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남성의 성별 정정 신청이 최초로 수원가정법원에서 허가됐다. 당사자인 송우현(21·가명)씨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기관을 없앨 이유가 없다고 봤다”면서 “나라에서 이를 강제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만 하급심 판결이라 다른 법원도 유사한 사건에 허가 결정을 내놓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서울신문 조사에서 향후 성별 정정을 하고 싶다는 응답자는 트랜스 여성이 97.9%, 트랜스 남성은 83.9%로 높게 나타났다. 그에 비해 외과적 수술을 하겠다는 응답은 각각 85.1%, 82.3%에 그쳤다. ‘논바이너리’ 응답자의 42.6%는 성별 정정을 희망했지만 외과적 수술을 받겠다는 응답은 33.9%로 더 낮았다.

국내 대학병원 1호 젠더클리닉을 설치·운영 중인 이은실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는 “법원이 성별 정정 요건으로 불임 수술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젠더 상당수가 수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1. "돈 있어도 못 사는 車인데…여자아이 둘이 다 부숴놨습니다"
    지하주차장 주차된 차, 발로 '쾅쾅' 360도 돌아가면서 발로 차 "수리비 3000만원, 부모 연락도 안 돼" "부모에게 민사 소송 거는 방법 밖에…" '분노의 질주'에 등장해 마니아 층이 있는 차량이 지나가던 아이들의 발길질에 파손됐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
    등록일: 2021.12.16
    Read More
  2. 다시 4명 모임, 밤 9시 영업….45일만에 막 내린 '위드코로나'
    〈사진-연합뉴스〉 국내 코로나 19 확산이 거세지자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코로나)을 잠시 멈추기로 했습니다. 사적모임 인원은 4인으로 축소하고, 다중이용시설은 밤 9~10시 영업으로 제한합니다. 오늘(16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
    등록일: 2021.12.16
    Read More
  3. 학폭 가해자, 전학 후 졸업해도 2년간 학생부에 가해 내용 남긴다
    앞으로 학교폭력 가해학생은 전학 후 졸업하더라도 2년간 학생기록부에 가해사실이 명시된다. 신고나 고발이 없어도 학폭 징후가 보이면 교사가 바로 조사할 수 있고, 신고자를 찾기만 해도 학폭 가해자는 가중처벌을 받는다. 교육부는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
    등록일: 2021.12.16
    Read More
  4. 생명과학Ⅱ 1등급 40명 줄어… 최상위권, 최저기준 못 맞출 수도
    전원 정답 처리… 희비 엇갈린 수험생들 평가원, 일정 지체 우려에 “항소 포기” “성적 통보 전이라 피해자 존재 안 해” 표준점수 떨어져 1·2등급 119명 줄어 해당 과목 선택 상위권, 타격 불가피 고개 숙인 평가원장 - 법원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
    등록일: 2021.12.16
    Read More
  5. 서울변회, 변협에 '택시기사 폭행' 이용구 징계 개시 신청
    "공소제기 입장 개진 요구했으나 답변 없어" "특가법 위반 혐의로 공소 제기…품위유지의무 위반"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2021.6.1/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가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징계를 요구하는 변호사 단체가 낸 진정을 ...
    등록일: 2021.12.16
    Read More
  6. '런닝맨' 송지효·김종국, 하차 통보…장나라, 무려 130억↑기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연예계. 과거의 오늘(12월 14일) 연예계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SBS 대표 예능 ‘런닝맨’ 측에서 멤버 송지효, 김종국에게 하차를 통보했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배우 장나라의 선행으로 한 소녀가 백혈병을 완치했다. OSEN 타...
    등록일: 2021.12.15
    Read More
  7. 자해 흔적에 화난 의붓아빠, 10대 딸 알몸으로 내쫓아
    법원, 훈육동기 참작해 의붓아빠에 집행유예 선고 딸 자해 이유로 "학교생활 스트레스" 진술 10대 딸의 자해 상처를 보고 격분해 알몸으로 쫓아낸 의붓아빠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의정부지방법원 형사3단독재판부(판사 신정민)는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
    등록일: 2021.12.15
    Read More
  8. 외과적 수술비만 수천만원… “죽도록 알바해 불임수술하라는 격”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2>성별 정정 요건에 저항하다 지난달 12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교정에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김신엽씨. 오른쪽 사진은 신엽씨가 2019년 스웨덴 교환학생 시절 사용한 배지를 손에 올려 보여 주는 모습. 배지에는 트랜...
    등록일: 2021.12.15
    Read More
  9. '심신미약' 주장…지하주차장서 흉기로 중학생 강간 시도한 20대 남성
    중학생을 흉기로 위협해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한 20대 남성이 법정에서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현우)는 지난 9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간 등 상해 및 형법상 상해 ...
    등록일: 2021.12.15
    Read More
  10. 여친 찌르고 19층서 떨어뜨린 30대, 檢서 마약류 검출
    가상화폐 투자업체 운영하던 살인 혐의 30대 연인에 다른 남자와 관계 추궁하다 격분해 흉기로 수차례 찌른 뒤 베란다서 떨어뜨려 모발서 마약류 검출…검찰, 보완수사 요구 [서울=뉴시스]이준호 기자=이별을 통보한 연인을 흉기로 찌르고 집 베란다 밖으로 내...
    등록일: 2021.12.1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587 588 589 590 591 592 593 594 595 596 ... 641 Next
/ 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