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석준(25)이 피해 여성을 성폭행하고 영상까지 촬영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범행 이전 '감금' 신고를 받고 피해 여성을 구출한 경찰은 '성폭행과 불법촬영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피의자 이석준을 풀어줬고, 그런 이석준은 사흘 뒤 여성의 가족을 살해했습니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참극을 낳았다는 비판이 불가피한 대목입니다.
신변보호 전 연인 가족 살해 피의자 25세 이석준. 경찰청 제공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석준(25)이 피해 여성을 성폭행하고 영상까지 촬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범행 이전 '감금' 신고를 받고 피해 여성을 구출한 경찰은 '성폭행과 불법촬영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이석준을 풀어줬다. 그런 이석준은 사흘 뒤 여성의 가족을 살해했다.
감금 신고 직후 경찰은 피해 여성에 대해 신변보호 조치까지 결정했지만, 그 가족에 대한 보복 범죄는 막지 못했다. '안일한 대응이 참극을 낳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피해자가 죄질이 극히 나쁜 범죄로부터 현저한 피해를 호소했음에도 가해자를 풀어주고, 끝내 보복 범죄에 희생된 결과 경찰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부실 대응을 뒷받침하는 추가 사실들이 드러나는 상황에 대해 "언론의 보도로 피해자가 상처를 입는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범행을 막지 못한 경찰은 뒤늦게 '피해자 중심주의'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
1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석준은 지난 5일 천안 소재 본인의 주거지에서 피해 여성 A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신고하지 못하게 한 후 성폭행하고 이를 본인의 휴대전화로 촬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 날인 6일 A씨는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친구에게 "핸드폰이 부서져 직접 전화를 할 수 없다. 감금을 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사실을 전해달라며 아버지 연락처도 함께 알려줬다.
이 소식을 들은 A씨 아버지는 즉시 경찰에 "딸이 감금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취지로 신고했다. 소재 파악에 나선 경찰은 A씨가 대구에서 이석준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이한형 기자
A씨는 대구 수성경찰서 경찰관에게 "이석준으로부터 성폭행과 불법 촬영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반면 이석준은 '동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며 정반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A씨의 얼굴과 몸에는 멍자국 등 폭행 당한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준을 경찰서로 임의동행한 경찰은 휴대전화를 육안으로 살펴본 뒤 불법 촬영된 영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냈다. 디지털 포렌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았다.
이후 경찰은 A씨의 신병은 부친에게 인계했고, 이석준은 귀가 조치 했다. 피해 여성으로부터 감금, 성폭행, 불법 촬영 등 피해 사실을 듣고, 얼굴·몸에 있는 폭행 흔적을 봤음에도 가해자로 지목된 이에 대해선 특별한 신병조치 없이 풀어준 것이다.
경찰은 당시 긴급체포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증거가 부족한 데다가 두 사람의 진술이 상반되며 이석준이 임의동행 및 휴대전화 임의제출 등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사건은 이석준 거주지를 관할하는 천안 서북경찰서로 넘어갔고, 경찰은 피해 여성 A씨에 대한 신변보호를 의결했다.
하지만 사흘 후 이석준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A씨 집으로 찾아가 집에 있던 A씨의 모친과 10대 남동생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르고 도주했다. 그는 흉기를 미리 준비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의 어머니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119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남동생은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당시 A씨는 현장에 없어 화를 면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인근 빈집 장롱에 숨어 있던 이석준을 발견하고 살인 및 살인미수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한 뒤 구속했다. 이석준은 경찰 조사에서 "흥신소를 통해 A씨 집주소를 알아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송파경찰서는 흥신소 관계자 B씨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해 조사한 뒤 구속 조치했다.
경찰이 피해 여성 측으로부터 감금·성폭행·불법촬영에 대한 진술을 듣고도 어떠한 조치 없이 이석준을 풀어주는 등 부실하게 대응했던 사실이 언론 보도로 하나씩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에 경찰은 스토킹 범죄에 대해 '주의→위기→심각'의 3단계 접근법을 내세우며, 위기 단계부터 피의자를 입건, 격리 조치하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과에서 드러나듯 선행된 스토킹 신고가 없을 경우 적용하기 어렵다.
폭행과 상해가 동반됐을 경우 '위기' 단계를 적용해 피의자 신병을 구속하겠단 입장이지만, 경찰이 사안 자체를 스토킹 범죄로 인식하지 못했던 이번 사건의 행태가 재연될 경우 적용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나마도 서울 경찰에 한정된 대책이라 지역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에는 해당조차 되지 않는다.
경찰은 범죄 예방 조치보다 들끓는 여론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모양새다. 피의자의 엽기적인 행각이 점차 드러나자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후속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해당 사건의 공보 업무를 맡은 서울경찰청 김근준 강력계장(경정)은 취재진에 "경찰의 조치가 미흡했던 부분에 대한 비판은 언론의 기능상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취재 과정에서 피해자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미흡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가족이 사망한 상황에서 피해 여성이 가해자로부터 성폭행 및 불법촬영을 당한 내용이 언론 보도로 나가면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해달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김 계장의 이 같은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 스스로가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는 사실을 직접 밝힌 바 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했다면 사건 초기부터 성범죄 관련 사안 전반에 대해 비보도를 전제로 취재에 응했어야 옳다.
황진환 기자
경찰이 여성에 대한 폭행과 상해, 성범죄, 불법촬영 등에 대해 초기부터 면밀히 검증했는지는 의문 투성이다. 피해 여성의 부친은 피해자가 몸에 멍자국이 있었다고 증언한 반면, 경찰은 발생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근거로 입건 조치를 미뤘다. 또 논란이 된 성범죄에 대해서도 '합의한 관계'라는 가해자의 주장을 너무도 손쉽게 믿고 휴대전화 포렌식 등 증거입수 절차를 지연시켰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종합하면 피해 여성이 당시 성폭행·불법촬영 등 경찰에 피해를 호소했던 사실이 경찰의 '부실 대응'과 직접 연관되고, 이에 따른 비판 여론이 커지자 뒤늦게 보도를 막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가 감금 당했다고 주장하고 성폭행 및 불법촬영 등 피해를 호소했다는 대목은 경찰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점을 찾아내기 위해 반드시 언급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노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