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관계 숨기는 모습에 서운함 쌓여 범행
연인 34차례나 찔렀지만…항소심서 징역 22년으로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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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화가 난다."
A씨(38·여)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살해한 직후였지만 아직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닷새 뒤 두 번째 경찰 조사를 받을 때에도 A씨는 자신의 범행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A씨는 불과 며칠 전 만해도 남자친구 B씨(22)와 "앞으로 잘하자", "여수 놀러가자. 풀빌라 예약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7개월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잘해보려는 마음이 컸다. "사랑해"라는 표현도 자주했다. 범행 당일 몇 시간 전에도 A씨는 B씨와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이 둘의 사이는 비극으로 끝이 났다. 도대체 A씨는 B씨를 왜 죽여야만 했을까.
◇전화 걸었는데 빈 화면…극에 달한 배신감
사건은 지난해 6월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이날 새벽 4시까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B씨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B씨로부터 인증샷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B씨와의 연락이 끊겼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A씨는 오전 11시45분께 B씨 집을 찾아갔다.
집에 도착할 당시 B씨는 만취한 상태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A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B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평소 '00누나'라고 저장돼 있던 B씨 휴대폰에 아무런 이름이 뜨지 않았다. A씨는 다시 B씨에게 카카오톡 영상통화를 걸었고, 이마저도 차단된 사실을 알았다.
배신감을 느낀 A씨는 B씨를 살해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A씨는 B씨의 집에 도착하기 전 지인에게 "B를 죽일거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 딸린 돌싱에 16살 연상, 유흥업소 종사자…쌓이고 쌓인 열등감
사실 A씨는 평상시 B씨에 대한 서운함과 열등감이 있었다.
A씨는 B씨가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숨긴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16살이 많은 데다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B씨가 부끄럽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A씨는 이혼 전력에 2명의 자녀까지 있었다. 자녀들은 전 남편의 부모가 키우고 있었다.
A씨의 이 같은 감정은 오랜 기간 누적됐다. 그러다 B씨가 자신의 번호를 휴대폰에서 지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한순간에 폭발했다.
감정이 극에 달한 A씨는 주방으로 가 흉기를 들었다.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잡이를 화장지로 감기도 했다.
놀란 B씨가 일어나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음에도 A씨는 멈추지 않았다. 목과 등을 33차례에나 찔린 B씨는 결국 신체 다발손상으로 사망했다.
A씨는 범행 후 5일 뒤 두 번째 경찰 조사를 받을 때에도 배신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범행을 후회했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B씨에게)너무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주지방법원 신청사 준공식이 열린 16일 전북 전주시 전주지방법원 신청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준공 기념 테이프 컷팅식을 갖고 있다. 2019.12.16/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 "영구 사회 격리 유일한 수단 아닐 수 있어" 무기징역→징역 22년
A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휴대전화 주소록에 자신의 이름이 삭제돼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2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면서 "범행 경위와 범행수법이 잔혹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반성하고 있는 점, 계획적인 범행이 아닌 점, 재범위험성은 낮은 점 등이 고려됐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계획적으로 B씨를 살인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살인의 고의가 확고하고 범행 방법이 매우 잔혹하다. 동기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적어도 현 시점에서 피고인이 참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점, 성인 재범위험성 평가 결과 가장 낮은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A씨를 영구히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만이 범죄 예방의 유리한 수단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전주=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