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끝나도 지구온난화는 계속된다
산불·가뭄 이은 폭우·홍수에 각국 비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대신 근본적 기후 대응 필요
환경파괴에 대한 무위(無爲) 비용 점점 커진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록적 폭염·가뭄으로 지구촌이 가장 더운 여름을 보낸 데 이어 최근에는 전 세계 각국을 수마(水魔)가 할퀴고 지나갔다. 몬순 폭우로 파키스탄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기고 미국 미시시피는 지난달 홍수의 여파로 15만 명 가까이가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약자들에게 특히 큰 타격을 입혔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탄소 배출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기존 추산치의 3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제시됐다.
파키스탄 국민 7명 중 1명이 수재민...재건에 100억 달러 이상
유럽우주국(ESA)은 코페르니쿠스 위성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촬영한 파키스탄 국토 사진을 1일 공개했다. 인더스강 줄기를 따라 침수된 지역이 파란색으로 표시됐다. 연합뉴스
파키스탄에서는 6월 이후 계속된 폭우가 국가적 재앙 수준으로 치달았다. 현재까지 이재민은 3300만 명 이상이며 누적 사망자는 어린이 380여 명을 포함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기준 1136명에 달한다. 또 가옥 100만여 채가 부서져 이재민 약 50만 명이 구호캠프에 수용됐지만 대부분이 노천의 열악한 임시 주거시설에서 생활해 설사병, 콜레라, 이질 등 수인성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파키스탄의 홍수 상황을 최고 수준의 비상사태로 분류한 상태다.
파키스탄 홍수 현장. Colin McCarthy 트위터 캡처
인더스강 범람에 더해 카이버·파크툰크와주 등 북서부 지역에서 산악지대 빙하까지 녹아내리며 피해는 점점 커지고 있다. 파키스탄 기상국은 올해 지구 온난화로 예년보다 3배 가까이 많은 빙하수가 쏟아져 나왔다고 밝혔다. 특히 히말라야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이 만나 만년설에 뒤덮여 있는 북부 '길기트 발티스탄' 지역에선 올해 들어 16차례나 빙하수 분출 사례가 관측됐는데, 작년에는 5~6번밖에 없었던 일이다.
이에 아흐산 이크발 파키스탄 개발계획부 장관은 "홍수 관련 피해를 잠정 추산한 결과 100억달러(한화 13조 5000억 원)를 훨씬 넘어섰다"고 밝혔으며 단기적으로 식품 및 식수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해마다 남아시아에서는 6월~9월 사이 계절성 몬순 우기로 큰 피해가 발생한다. 하지만 올해 파키스탄에는 예년보다 10배 규모로 많은 폭우가 내리며 지난 30년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홍수 피해를 입게 됐다. 셰리 레흐만 기후변화부 장관 역시 "이것은 일반적인 몬순이 전혀 아니다"라며 "기후 디스토피아"라고 말했다.
이에 파하드 사이드 기후학자는 “가장 작은 탄소 발자국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파키스탄의 수재민들은 기후 변화에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파키스탄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 미만을 기여했음에도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고 평가했다.
미 미시시피 잭슨주 15만명 ‘식수대란’...폭우로 상수 시설 마비
1일(현지 시간) 미국 미시시피주 주도인 잭슨시 주민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생수 배급 트럭 앞에 모여 있다.AP연합뉴스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시에서도 폭우 및 홍수의 여파로 주민 15만 명 이상이 제대로 씻거나 마시지 못한 채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달 인근 펄강이 범람해 도시를 덮쳐 수돗물을 공급하는 상수도 시설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도시 일대가 침수된 당시 수압 관리에 문제가 생긴 결과 지난달 29일부터 식수 공급이 중단된 상태다.
테이트 리브스 미시시피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방위군을 동원해 생수 공급에 나섰지만 식수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이달 초부터 임시로 펌프를 추가해 일부 지역에는 수돗물 공급이 재개됐으나 제대로 정수 처리가 되지는 않아 생활용수로만 사용 가능하다. 시 관계자는 "샤워하는 동안 입을 벌리지 않도록 해야한다"면서 "당분간 식수는 끓인 물만 마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는 등교를 중단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으며 식당,호텔 등의 실질적인 운영도 어려운 상황이다.
처크워 루뭄바 잭슨 시장은 당장 펌프 시스템을 고치는 데만 10억 달러 이상이 들며 노후한 상수관 전체를 수리하고 현재 입은 피해를 해결하는 데는 수십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미 백악관은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통해 향후 90일간 비상사태 해소를 위해 필요한 예산의 최대 75%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식수대란이 예상 가능한 재난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도시에 속하는 잭슨시의 수도관이 몇년 간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CNN에 따르면 2020년 초에도 잭슨시의 식수는 유해한 박테리아 및 기생충 서식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돼 환경보호청 검사에 불합격했다. 지난해 겨울에도 수도관 동파로 일부 주민들이 한 달 가까이 식수가 끊겼다.
CNN은 “잭슨 인구의 약 82.5%가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반면, 주 의회는 다수가 백인으로 이뤄졌다”면서 “이에 물 부족과 이를 해결할 자원이 없는 상황이 인종차별에서 기인했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역시 “미시시피는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국 평균의 약 60%에 불과할 정도로 오랫동안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였다"면서 “결국 이러한 (상수도 관리의) 소홀함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결정이었다.미시시피주 전체는 수입이 낮은 편이더라도 분명 모든 주민들에게 안전한 식수를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백인들의 이주로 경제가 파탄난 흑인 중심 도시 잭슨은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탄소 배출 비용 기존의 3배…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을수록 비용 ↑
한편 탄소 1톤을 배출했을 때 사회가 1년 동안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 비용인 '탄소의 사회적 비용(SCC, Social Cost of Carbon)'이 185달러(약 25만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의 연구팀은 1일 SCC가 185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미국 연방정부의 현재 예측치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SCC엔 기후 위기로 사회가 부담하는 손실 규모. 농업 생산성 영향, 재산 피해, 건강 영향 등이 모두 포함된다.
연구팀은 이날 발표에서 해수면 상승을 비롯한 기후 변화로 인해 미래 부담해야 할 비용과 편익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할인율’을 당초 방식보다 낮게 조정했다. 연구팀은 “할인율이 낮을수록 무활동(inaction) 비용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기후 재난에 따른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이드 박사는 BBC 뉴스에 "부유한 국가도 올 여름 엄청난 홍수에 압도당할 것"이라면서 지난해 독일과 벨기에도 홍수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반시설이 열악한 빈곤국 위주로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입었던 것과 달리 “(이번 홍수는) 지금껏 봐온 것과 다른 종류의 존재다. 홍수의 규모도, 폭우의 정도도 너무 심각해 앞으로는 매우 견고한 방어 수단조차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