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통화, 신흥국보다 오히려 달러 대비 가치 하락 심해"
영국 런던의 한 상점
미국 달러화 가치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경제가 취약한 신흥국뿐만 아니라 선진국 통화가치도 하락, 경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6일(현지시간) 진단했다.
엔화와 유로화 등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측정하는 달러 지수는 이날 0.35% 상승한 110.214를 기록, 2002년 이후 약 20년 만에 최고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집계하는 선진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 지수는 올해 10% 올라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에 비해 신흥국 통화 대비 달러 지수는 3.7% 상승에 그쳐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의 고점에 못 미치는 상태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세계적 영향이 완전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선진국 통화 대비 달러 강세가 두드러진 것은 오랜만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신흥국 다수도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에 직면해있지만, 그동안 비축해온 외환보유고와 미국보다 선제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최소한 지금까지는 과거 위기 때보다 잘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올해 자국 물가가 13% 넘게 오르고 4분기 경기후퇴에 진입할 가능성을 밝힌 가운데, 파운드화 가치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여파가 이어지던 2020년 3월 수준까지 내려간 상태다.
BOE는 지난달 27년 만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은 데 이어 이번 달에도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로화 가치는 1달러당 1유로 선을 깨며 20년 만의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달러 초강세 속에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한층 고통받고 있다. 이자벨 슈나벨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에너지 공급 충격이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환율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 엔화도 달러 대비 환율이 올해 140엔을 돌파,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경기 부양을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에너지·식품 등 수입 물가 상승이 경제와 민생에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에서도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택시장이 식어가는 가운데, 호주 중앙은행(RBA)은 이번 달까지 4개월 연속 빅스텝을 단행했다.
블룸버그는 각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의 경제전망이 미국보다 안 좋은 만큼 달러 대비 통화 가치 하락을 막지 못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이 향후 자국 경제 침체를 우려해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경우 달러 가치 강세가 완화될 수 있겠지만, 연준은 "물가 안정을 회복하려면 당분간 제약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뚜렷이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모리스 옵스펠드는 "강달러는 보통 미국의 높은 장단기 금리나 세계 시장의 부담,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달러화에 대한 자금 쏠림 등을 동반한다"면서 "이러한 빡빡한 금융 조건은 모든 선진국 경제를 둔화시킨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은행의 만수르 무히우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가치가 계속 과도하게 급등할 경우 선진국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면서 "이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들이 올해 자국 자산시장이 하락하고 성장률이 떨어지는데도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다"고 봤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