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급등으로 불만이 쌓인 시민들이 대거 길거리 시위에 뛰어들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으로 당분간 고물가 시대가 불가피해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물가 폭등 항의 시위 현장.
나날이 폭등하고 있는 전기·가스요금에 견디다 못한 영국인들이 1일(현지 시각) 5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가디언과 B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시위는 최근 몇 년 동안 영국에서 발생한 시위 중 최대 규모로, 잉글랜드 남부 플리머스에서 스코틀랜디 애버딘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집회가 열려 수천 명이 참가했다.
영국은 가계 에너지 지불액이 올 4월에 54%, 8월 말에 다시 80%가 올라 1년 새 3배 가까이 폭등했다. 올겨울은 지난해보다 에너지 관련 비용을 두 배 이상 지출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물가 폭등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주 금융 시장 혼란과 주택 모기지 금리 인상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성난 민심은 더 흉흉해졌다. 이날 철도와 우편 노동자들도 파업에 들어갔다.
이날 시위는 ‘돈 페이(Don’t Pay·지불하지 말라) UK’라는 이름의 그룹이 주도한 것ㅇ로 알려졌다. 대학원생이자 ‘돈 페이 UK’ 그룹의 일원인 프랭클린 도슨(29)은 가디언에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들이) 그들의 생활 수준에 즉각적이고도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데다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분명하게 불공평한 것이기 때문에 격노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돈 페이 UK는 전기 및 가스 요금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 요금을 지불하지 말라는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 19만3000명 이상이 이에 동참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요금 인상에 항의하는 의미로 에너지 요금 청구서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29일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도시 수십 곳에서 정부에 생활고 해결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프랑스 노동총연맹(CGT)과 극좌 성향의 야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등이 주도한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파리에 4만명, 마르세유에 40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물가 안정과 함께 급여 인상과 연금 시스템 개혁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정년이 아닌 급여를 올려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난 4월 재선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정년을 62세에서 64~65세로 높이고, 무려 42개에 달하는 복잡한 연금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시위대가 거리로 나선 근본적인 요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수개월째 이어지며 유럽 대륙 전체에 경제적 충격파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서방 제재에 따른 반발로 천연가스 공급을 감축하자 유럽 내 에너지 가격이 급상승했다. 프랑스 정부는 에너지 위기 대응을 위해 400억 유로(약 52조2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유럽 각국은 에너지 위기 대응을 위해 재정을 쏟아붓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에서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경찰 추산 1만명이 모인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시위는 노동조합이 주도했지만, 시위 내용은 고물가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뤘다. 시위대는 “삶이 너무 비싸다” “사람 말고 물가를 잡아라” 등의 문구가 적힌 깃발을 흔들었디. 최근 벨기에 일간지 브뤼셀타임스가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벨기에 국민의 64%는 “이번 겨울 가스·전기 요금을 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답했다.
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