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베트남-214] '메이드 인 코리아' 영화 '육사오'가 베트남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입니다. 베트남에서 역대 한국 영화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반도'의 기록을 뛰어넘었습니다.
싸이더스 등에 따르면 '육사오'는 지난 2일 기준 누적 관객 132만명을 기록해 2020년 '반도'가 세운 누적 관객 120만명을 뛰어넘었습니다. 한국 기준으로 체감 관객 수를 환산하면 600만명 정도가 영화를 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이달 말까지 '육사오'를 스크린에 걸어놓는다는 계획이어서 누적 관객 수는 앞으로도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육사오'는 1등 당첨금 57억원짜리 로또가 바람을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이후의 스토리를 재치 있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마음을 가볍게 하고 스크린 앞에 앉아 박장대소하며 웃고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인 영화입니다.
통상 이렇게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은 한국에서 개봉 초기 저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영화도 뒤늦게 입소문을 타고 스크린 점유율이 올랐습니다. '육사오'는 개봉 초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는 물론 브래드 피트 주연의 '불릿 트레인'에 비해서도 스크린 숫자가 밀렸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정말 재미있다'는 평가에 서서히 객석 점유율을 늘려 '헌트'를 뛰어넘어 점유율 1위에 오르고 이후 '공조2'의 맹공격에도 어슷비슷한 좌석 판매율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베트남에서는 개봉 당일 1위로 데뷔하며 기대감을 모으더니 결국 한국 영화 누적 관객 1위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육사오'가 베트남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양국 간 문화적인 일체감입니다. 베트남 역시 국토가 남북으로 쪼개져 치열한 전쟁을 벌인 경험이 있습니다. 통일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북쪽의 정치수도 하노이와 남쪽의 경제수도 호찌민에는 적잖은 경쟁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점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이고 그래서 축구 등 매개체를 통해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모으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습니다(박항서 감독의 찬란한 업적이 베트남에서 더 돋보이는 것은 이 같은 사회적 배경도 한몫했습니다. 베트남 축구를 응원할 때는 하노이도 호찌민도 따로 없으니까요).
'육사오'역시 남과 북의 군인들이 함께 나와 설전을 주고받는 재미로 무장한 작품입니다. 베트남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호찌민과 하노이의 갈등을 영화에 투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문화적 공통점만 들어 영화 흥행을 설명하기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한국에서 1600만 관객을 모았던 '극한직업'은 베트남 개봉 직후 소리·소문 없이 쓸쓸하게 퇴장했습니다. 찰진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뜨겁게 반응했던 한국 관객은 베트남에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왜 웃기지'라는 뚱한 표정만 텅 빈 좌석을 가득 채웠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 자체가 베트남에서 먹히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극한직업'을 리메이크한 영화 '매우 쉬운 일(Nghe sieu de)'은 지난 4월 개봉한 지 하루 만에 베트남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한국판 '극한직업'에서는 치킨집이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핵심 공간이었지만, 베트남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소갈비 식당이 이를 대체했습니다. 베트남 쌀국수에 널리 쓰이는 향신료를 써 갈비집이 대박나는 스토리로 새롭게 꾸민 것입니다.
한국 영화를 베트남에서 리메이크해 흥행한 사례는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상한 그녀' '과속 스캔들' '써니' 등 영화도 베트남판 리메이크 버전이 잇달아 히트했습니다.
양국 간 문화적 차이로 인한 채워지지 않는 약간의 이질감을 '리메이크'라는 수단을 통해 극복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사오'는 어째서 리메이크라는 과정 없이도 이 같은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일각에서는 빼어난 번역을 그 원인으로 찾기도 합니다. 베트남 현지에서 '육사오' 베트남어 자막은 매우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딱딱한 번역체에 머무르지 않고 베트남 생활언어 특유의 날것과 생동감을 효과적으로 담아냈다는 평가입니다. 베트남 청년층의 유행어를 효과적으로 수집해 적재적소에 써먹었다고 합니다.
'육사오'의 흥행 소식을 전하는 뉴스 기사 댓글만 봐도 베트남 현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관객이 웃고 울 수밖에 없게 감동적이다' '간단한 주제이지만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다'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고 유머가 잘 통한다'는 호평이 가득합니다.
K콘텐츠의 해외 진출 소식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영화 '육사오'처럼 '한국식 유머'를 무기로 한 영화가 해외에서 먹힌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든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흥행과는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영화 '육사오'의 베트남 리메이크 버전이 나올지 여부도 추후 관전 포인트로 떠오를 듯합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