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학력 여성 출산율 반등 비결은… ‘남녀 모두 야근없는’ 직장

by 민들레 posted Oct 27,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년 9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행인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초저출산 사회’인 일본은 지난해 고학력 기혼 여성 합계출산율이 19년 만에 반등했다. AP 연합뉴스

■ 김선영 기자의 오후에 읽는 도쿄 - ‘일하는 방식’ 바꾸는 기업

‘워킹맘 조기퇴근’ 특혜 대신에

오후 3~6시 퇴근 근무제 도입

잔업은 다음날 출근전 집에서

무역회사 이토추 출산율 뛰어

남성직원 육아휴직 마음껏 써

일과 육아 양립 문화도 한 몫

 

 

“육아하는 여성 직원만 혼자 퇴근시켜 주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금지하고, 아침 일찍 출근해 빨리 퇴근할 수 있게 하는 아침형 근무제 등을 도입하니 고학력 여성 직원 출산율이 뛰었어요.”

일본 도쿄(東京)에 본사를 둔 무역회사인 이토추(伊藤忠) 상사의 사외 이사인 무라키 아쓰코(村木厚子) 전 후생노동성 사무차관이 고학력 여성 사원의 출산율이 1.97명(2021년 기준)으로 뛰었다며 밝힌 비결이다. 일본에서 고학력 여성들의 합계출산율이 19년 만에 반등했다. 지난 10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닛케이)신문은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2021년 출생 동향 기본조사를 인용해 4년제 대졸 이상인 기혼 여성의 출산율이 평균 1.74명으로 2002년 이후 19년 만에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직전 조사인 2015년(1.66명)에서 증가한 것이다. 그동안 일본에서 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은 직장 생활과 육아 병행의 어려움 때문에 출산을 기피해 왔다. 이는 일본 사회 인구 감소의 주된 요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일본) 정부의 일·육아 양립 지원, 일하는 방식의 개혁으로 고학력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원활해졌다”고 평했다.
 



실제 이토추 상사는 지난 2010년 여성 인재의 이탈을 막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혁신했다. 2013년부터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금지하는 대신, 잔업을 오전 5시부터 8시 사이 집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아침형 근무 제도’를 도입하며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 어린 자녀를 둔 직원들은 ‘아침형 출근’ 제도를 활용해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3∼6시 사이에 퇴근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는 출산율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 아침형 근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출산한 이토추 상사의 여성 직원들은 거의 전원이 복직했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는 것 역시 여성 직원들이 사회에서 오래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의 사례는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 0.81명을 기록하며 전 세계 꼴찌를 기록한 한국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 가임기 여성들은 출산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당장 일상과 커리어 위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으면 내 밥그릇을 지킬 수 없을지 모른다는, 조직에서 핵심이 아닌 잉여 인력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 시대 2030 가임기 여성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것이 가임기 여성들이 과거 우리 정부가 시행한 ‘전국 가임기·출산력 지도’에 분노하는 이유다. ‘애 낳을 환경’은 만들어주지 않고서 여성을 “출산력”으로 대상화하는 시선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 꼴찌를 차지한 한국 출산율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는 대한민국 가임기 여성들의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기업 조직문화는 한국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는다. 양국 모두 여자가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 하며 살아남기 어려운 경제적·사회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실제 이토추 상사 직원들도 ‘회사에 폐를 끼치는 것’ ‘상사가 임신 사실을 알고 난감해하는 것’에 압력을 느꼈다고 한다. 무라키 이사는 “다른 동료들은 모두 야근하는데 육아하는 여성 직원만 혼자 퇴근시켜 주는 배려 방식은 일을 떠맡게 된 다른 직원들의 불만을 사기에 지속 가능하지 않고, 여성 직원 본인도 직장 생활에서 활력을 잃는다”며 “성별과 무관하게 일하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임기 여성에게만 특혜를 주는 방식은 형평성 문제를 초래하면서 실질적으로 워킹맘이 직장에서 끝까지 잘 살아남기 어렵게 만든다. 출산·육아휴직을 쓴 여성이 ‘특별 취급’을 받는다는 시선이 장기적으로는 이들을 회사 밖으로 몰아내기 때문이다. ‘특별대우’에 쏟아지는 따가운 눈초리와 ‘B급’ 직원이라는 낙인은 조직 내 여성의 성장을 막는다. 필요한 건 남성을 포함한 전 직원 모두가 출산·육아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기업 문화의 혁신이다. 출산·육아하는 여직원 입에서 “애 때문에 죄송해요” 소리가 일절 나오지 않는 조직에서 우리는 ‘저출산’의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