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미국 국기 그래픽.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첩보를 사우디 측이 미국에 공유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이 사우디와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와 미국 그리고 중동 지역의 다른 이웃 나라들은 군의 위기 대응 태세를 격상했다.
WSJ와 CNN이 전한 사우디 측의 첩보에 따르면 이란은 사우디 내 에너지 기반 시설과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역의 에르빌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만 세부 사항은 전해지지 않았다.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은 이란이 이런 공격을 감행하려는 것은 이란 내에서 지난 9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WSJ에 전했다. 현재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전역에선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경찰에 체포된 후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에 따른 반정부 시위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이란 연대 시위. 앞서 지난 9월 이란에서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경찰에 체포된 후 의문사하면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 측은 앞서 사우디와 미국, 이스라엘이 이란 내 반정부 시위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호세인 살라미 이란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지난달 사우디을 향해 “언론을 통해 이란 내정에 간섭하고 있는데,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경고”라며 “이란 시위를 ‘이란 인터내셔널’ 등 위성 뉴스 채널로 보도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런던에서 설립된 이란 인터내셔널은 이란의 공식 언어인 페르시아어 뉴스를 제작하고 있으며, 사우디 왕실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의 경우 지난 9월 말에도 이란의 공격 대상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이란은 이라크 북부에 수십 발의 탄도미사일을 쏘고 무장 드론으로 공격을 가했다. 이 중 하나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에르빌을 향해 날아가다 미군 군용기에 격추됐다. 이란 측은 에르빌에 근거지를 둔 쿠르드 분리주의자들이 이란 내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공격을 벌여왔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이날 사우디 측의 경고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만약 이란이 공격을 실행한다면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NSC 측은 “군과 정보 채널을 통해 사우디와 상시 접촉 중이며 이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과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이란군이 제공한 영상에 따르면 이란 쿠르디스탄(코말라) 지역에서 이라크 술라이마니야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첩보를 계기로 최근 석유 생산 문제로 악화했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개선될지도 주목된다. 지난달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는 미국의 자제 요청에도 11월부터 원유 생산량을 하루 200만 배럴씩 감산하겠다고 결정했다. 이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크게 반발했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유가가 상승하면 집권 민주당에 매우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우디에 대한 이란의 위협이 구체화하면 이런 미국의 태도는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WSJ는 “대테러 작전과 이란에 대한 억제, 이스라엘의 지역 내 통합 등의 노력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사우디를 포기할 것 같지 않다”고 분석했다.
한편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 커지면서 국제유가도 상승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유(WTI)는 전날보다 2.13% 상승한 배럴당 86.3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1.8% 오른 배럴당 94.51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