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48초'···이 시간마다 아이가 죽는다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멜카벨로 지역에서 한 어린이가 물을 길기 위해 물통을 등에 지고 진흙탕 길을 걷고 있다. 수 년째 이어진 가뭄의 여파로 어린이들은 물을 찾기 위해 매일 먼 거리를 걸어야 한다.

 

“1분 48초”.

이 짧은 시간마다 한 명의 어린이가 물이 없어 목숨을 잃는다. 월드비전의 2021년 통계에 따르면 매일 5세 미만 아동 800명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누군가 주문한 커피 한 잔을 기다리는 시간에 물조차 마시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하카물리스 케벨레에 위치한 젤로 보건소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4년째 이어진 가뭄으로 급성 영양실조로 보건소를 찾는 아이들이 3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하카물리스 케벨레에 위치한 젤로 보건소에서 급성 영양실조에 걸린 프롬사 아브라함(2)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은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다. 에티오피아와 케냐, 소말리아 전역은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는 우기’가 4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3700만 명이 물 부족과 극심한 굶주림에 직면해 있다. 가뭄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이다. 2011년 닥친 동아프리카 대기근 당시, 소말리아에서 목숨을 잃은 25만 명 중 절반이 5세 미만 어린이였다. 식수 부족으로 오염된 물을 마신 아이들이 수인성 질병에 노출되고 영양실조에 걸렸기 때문이다. 가뭄이 발생한 곳에는 기아가 찾아온다. 물이 사라진 땅에서 농작물과 목초지는 모두 황폐해졌고 가축들은 폐사했다.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멜카벨로 와레다(한국의 읍·면에 해당)의 저지대 지역인 비프투 네가야 카벨레 지역의 농토가 가뭄으로 황폐해진 모습.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멜카벨로 와레다의 저지대 지역인 비프투 네가야 카벨레에서 지역 농부가 가뭄으로 바짝 마른 땅에서 잡초를 솎아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멜카벨로 와레다의 저지대 지역인 비프투 네가야 카벨레에서 한 농부가 작업을 하던 중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케냐 가리사현 ‘다답(Dadaab) 난민 단지’ 인근 길가에 가뭄으로 죽은 소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다. 올해 최악의 가뭄으로 동아프리카에서만 15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폐사했다.

 

지난 달 취재를 위해 약 보름간 일정으로 에티오피아와 케냐를 찾았다. 총 2만3000㎞의 긴 여정에서 마주한 현실은 통계 속 숫자들보다 참혹했다. 이동하는 내내 차창 밖을 지나치는 풍경에서 극심한 가뭄을 목격했다. 에티오피아에서 마주친 아이들 손에는 다양한 크기의 물통이 쥐어져 있었다. 이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6~10㎞ 거리의 산길을 오르내리며 가족과 가축이 마실 물을 길어 날랐다. 학교수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른 아침, 우물가와 산속 샘터에는 새벽부터 길을 나선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아침 안개가 자욱이 내려 앉은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멜카벨로 지역에서 한무리의 여성들이 우물가로 향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멜카벨로의 한 지역 우물가에서 여성들이 줄을 서서 물을 길고 있다.
 

이른 아침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멜카벨로 지역에서 두 어린이가 무거운 물통을 함께 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오로미아주 멜카벨로 와레다(한국의 읍·면에 해당) 자자타운의 한 학교 급수터에서 어린이들이 물을 마시고 있다. 학교 안에 월드비전이 제공한 급수터가 있어 어린이들은 매일 먼 거리를 걸어 물을 떠야 하는 노동에서 벗어나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케냐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세계 최대 규모인 ‘다답(Dadaab) 난민 단지’로 향하는 길에는 메마른 땅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길가에는 폐사한 가축들이 널브러진 채 부패하고 있었다. 굶주림에 걷지도 못할 만큼 지쳐 보이는 사람들이 이따금 난민 단지를 드나드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어 마실 물을 구걸했다. ‘시원한 물’이란 뜻의 동아프리카 최대 상업도시 나이로비에서 474㎞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은 매순간 물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케냐 다답 난민 단지로 향하는 길에서 한 어린이가 달리는 차를 향해 물을 구걸하고 있다.
 

케냐 다답 난민단지에서 굶주린 어린이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케냐 가리사현에서 한 어린이가 물을 구하기 위해 물통을 줄에 매달고 어디론가 걷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를 취재하러 간 아프리카에서 나의 카메라는 그들이 처한 재난의 실체를 모두 또렷하게 담아낼 수 없었다. 굶주림이 만연한 땅에서 매끼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는 게 스스로 민망했다. 달리는 차창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나의 현실은 냉정하게 분리돼 있었다. 내게는 아직 닿지 않은 내일이 그들에게는 절망적인 오늘이었다. 작은 손에 물통을 쥐고 끝없이 펼쳐진 길을 하염없이 걷던 아이들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