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역전패 당한 한국 인구문제 (3)
1990년부터 저출산대책 시작한 일본
출산율에 브레이크 걸리기까지 15년
'저출산율의 함정' 빠지면 못빠져나와
30년후 가임기 여성 31% 급감하고
남성 4명·여성 6명 중 1명은 평생 독신
낮은 소득 탓에 결혼하고 싶어도 못해
gensen wedding
2020년 기준 일본 남성 4명, 여성 6명 가운데 1명은 평생 독신으로 산다. 1980년 독신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3%와 4%에 불과했다. 지난 40년 사이 일본인들이 결혼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7개 회원국 가운데 일본인들은 결혼에 가장 긍정적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본에 역전패 당한 한국 인구문제 (1) 저출산·고령화 원조 일본이 한국을 더 걱정한다 에서는 1995년 세계 최초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비율이 14% 이상)에 진입한 일본이 2040년께부터 고령자 비율이 감소할 전망이라고 소개했다.
고령화의 파고를 넘으면 남은 문제는 저출산이다. 인구의 30~40%를 차지하던 고령인구가 줄어든다는 건 2015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인구감소가 급격히 빨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구절벽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신생아수는 매년 최저 기록을 세우고 있다. 2019년 일본은 인구조사를 시작한 지 120년만에 처음으로 출생아수가 90만명을 밑돈 '86만명 쇼크'를 겪었다. 그로부터 3년 만인 올해는 신생아수 80만명선이 무너질 게 확실시 된다.
일본은 1990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시작했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소인 1.57명을 기록한게 계기였다. 저출산 대책을 시작하고부터 출산율 추락에 브레이크가 걸리기까지는 15년이 걸렸다.
2005년 역대 최저치인 1.26명까지 떨어진 일본의 출산율은 이듬해부터 상승세로 전환했다. 2015년에는 1.45명까지 회복했다. 2016년부터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 지난해에는 1.30명까지 떨어졌다.
어쨌든 일본의 출산율은 2005년 이후 10년간 상승했고, 지난 30여 년간 대체로 1.3~1.5명을 유지했다. 출산율이 번지 점프하듯 추락하는 한국과 차이다. 저출산 대책의 효과가 나오기까지 15년 걸린 일본의 예에서 보듯 인구 전문가들은 한번 떨어진 출산율을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저출산율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계속해서 낮으면 아이가 적은 것이 당연해 진다. 사회구성원들의 의식과 생활 스타일도 이에 맞춰 변한다. 저출산율의 함정에 빠지는 경계선을 출산율 1.5명으로 본다. 일본은 1995년 이후 27년째 저출산율의 함정에 빠져 있다.
일본인들의 의식과 생활 스타일 변화는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5년마다 한 번씩 실시하는 출생동향기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18~34세 미혼자들이 희망하는 자녀의 수가 남녀 모두 남녀 모두 평균 1.8명으로 역대 최소였다. 여성의 희망 자녀수가 2명을 밑돈 것은 처음이다.
'결혼하면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도 35.6%로 5년 만에 반토막났다. 2015년 조사에서는 67.4%였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결혼하면 아이 둘은 기본'이라는 인식이 뿌리깊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러한 상식이 안 통하는 것이다. 저출산율의 함정에 빠지는게 무서운 이유다.
신생아를 갑자기 늘릴 수 없는 점도 저출산 대책을 실시한다고 해서 출산율이 바로 오르지 않는 이유다. 생물학적 구조상 인간은 성인이 돼야 출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구학적으로 출생아수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15~49세 가임기 여성의 수에 좌우된다. 2000년 일본의 가임기 여성은 2932만명이었다. 2021년 가임기 여성의 수는 2453만명으로 20년 만에 500만명 줄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총무성의 인구추계에 따르면 2021년 10월1일 현재 30세 일본인 여성은 57만9000명인 반면 0세 여아는 39만7000명이다. 30년후 30세가 되는 일본인 여성이 지금보다 31.4% 줄어든다는 뜻이다. 여성이 단기간에 이렇게 급격히 줄면 출산율이 아무리 개선돼도 신생아수는 줄 수 밖에 없다.
신생아수가 이렇게 줄어든 건 결혼을 안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생애미혼률(50세까지 독신으로 사는 비율)은 전문가들도 눈을 의심할 만큼 뛰어올랐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1년 일본의 결혼건수는 약 50만건이었다. 2차대전 이후 최소다. 단카이세대(1947~1949년생)가 25세 전후였던 1972년의 절반 수준이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젊은 인구가 줄었다 해도 결혼건수가 50년 만에 반토막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성은 25.7%, 여성은 16.4%까지 상승한 생애미혼율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인들이 결혼을 기피하는게 아니다.
OECD 회원국 7개 나라를 대상으로 5년마다 실시하는 의식조사(2018년)에서 '결혼하는 편이 낫다'는 일본인의 비율은 50.9%였다. 미국(52.7%)에 두 번째로 높았다. 46.1%인 한국보다 높았다. 반대로 '결혼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응답은 35.4%로 7개국 가운데 최저였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에서도 젊은 층의 90% 가까이가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은 낮은 수입 때문이라는게 공통된 분석이다. 현재 40대 후반 대졸 남성의 평균 실질소득은 10살 윗세대가 같은 나이었을 때보다 150만엔(약 1442만원) 가량 적다.
작년 12월 일본릴레이션십협회가 25~49세 여성 400명에게 남편의 조건을 물었더니 기혼과 미혼 여성 모두 '경제력'을 첫 번째로 꼽았다. 미혼 여성들이 생각하는 남편의 이상적인 연봉은 1위(28.6%)가 600만~800만엔이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결혼 적령기인 25~29세 남성의 평균 연 수입은 평균 393만엔, 30~34세는 458만엔이었다. 일본 남성이 아내의 조건으로 '경제력'을 꼽는 비율 역시 1992년 27%에서 2015년 42%로 늘었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