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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위험 빠뜨리는 ‘숏폼 콘텐트’

“헉!”

지난달 중학생 박모(16)양은 외마디를 질렀다. 유튜브 영상 속 초등학생은 계속 머리를 흔들며 굴렀고 실신 직전까지 갔다.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구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10초. 이 시간에 자극적인 영상을 욱여넣었다. 짧으니 자극의 농도는 진하게 우러나올 수밖에 없다. 숨을 참아 한계가 임박하는 건 희열이다. 차량 절도가 모험이고, 지나가는 사람의 뼈를 부러뜨리는 건 즐거움이다. ‘숏폼 콘텐트’로 부르는 영상 중에 이런 콘텐트가 버젓이 돌고 있다. 규제할 방법이 없다. 청소년이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

# 박양이 유튜브 쇼츠에서 본 영상은 ‘나는 실패작이래’라는 챌린지다. 일본 노래 ‘실패작소녀(失敗作少女)’의 ‘나는 실패작이라서 필요 없는 아이래’라는 가사를 표현한 이 영상은 유튜브 쇼츠와 틱톡에서 조회 수가 수십만 회에 달한다. 박양은 “초등학생들이 일종의 놀이로 이런 챌린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죽음까지 언급하는 수준인지는 몰랐다”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30초로, 숏폼 콘텐트로는 ‘중편’이다.

틱톡·유튜브 쇼츠·인스타 릴스에 중독
 

우유 상자 챌린지

 

숏폼 콘텐트는 짧게는 10~15초, 길게는 60초 동안 이어진다. 2017년 애플리케이션(앱) ‘틱톡’을 시작으로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을 통해 국내외에 퍼졌다. 콘텐트들은 한번 클릭하면 이탈하지 않는 이상 무제한으로 재생된다. 인공지능(AI)이 유저(이용자)의 취향을 파악해 콘텐트를 추천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숏폼 콘텐트를 중독성이 높은 미디어로 분류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Z세대(1996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평일 평균 75.8분, 주말에는 96.2분간 숏폼 콘텐트를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편’ 30초짜리 영상을 하루 180회 안팎으로 시청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SNS)가 ‘정보의 바다’가 아닌 ‘유해 콘텐트의 천국’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Z세대의 눈길을 사로잡는 숏폼 콘텐트가 무법지대로 떠오른 이유는 이곳에 업로드된 동영상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유튜브 동영상과는 달리 ‘방패’ 역할을 할 제목과 섬네일(영상 대표 이미지)조차 없다. 내가 보려는 콘텐트가 어떤 내용인지도 전혀 모른 채 ‘일단 클릭’을 유도하는 셈이다.
 

스컬 브레이커 챌린지

 

일단 클릭으로 인한 청소년의 폐해는 통계로도 증명됐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절반 이상이 온라인 공간에서 본인 의도와 다르게 선정적(61.3%), 폭력적(56.7%) 영상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열 명 중 아홉명은 범죄로 번질 수 있는 일까지 겪기도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낯선 이성이 만남을 제안한 적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은 92.5%였고,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 있다고 답한 경우도 94.2%에 달했다.

두 달 전 초등학생 딸이 보고 있던 틱톡 영상을 우연히 접하게 된 학부모 김성희(34)씨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남자친구와 진도를 어디까지 나가봤어?”라는 대사와 함께 성인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김씨는 “급하게 휴대전화를 빼앗아 ‘이런 건 보면 안 된다’고 하면서 앱을 삭제했더니 아이가 ‘다른 친구들도 다 본다’며 반항하더라”며 “친구들 사이에서 틱톡 안 하면 왕따를 당한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용인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래픽=김이랑 [email protected]

 

숏폼 콘텐트 유저인 청소년의 의견은 갈린다. 김모(15)양은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켜주는 숏폼 콘텐트도 많지만, 정도를 넘으면 좋기보다는 나쁜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루 2시간 이상 인스타그램 릴스에 빠져 사는 노모(14)양은 “이상한 영상은 그냥 알아서 안 보면 되고, 현실에서 받지 못하는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어 릴스가 좋다”며 “크리에이터도 하나의 직업인데 어리다고 해서 그걸 막을 이유는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자극적인 숏폼 콘텐트는 청소년들의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일부러 사람에게 발을 걸어 뼈를 부러지게 하는 ‘스컬 브레이커 챌린지’, 숨을 참거나 몸을 흔들어 기절하는 것을 묘사하는 ‘블랙아웃 챌린지’, 항히스타민제를 다량으로 복용하는 장면을 촬영한 ‘베나드릴 챌린지’, 우유 상자를 쌓아 그 위를 밟고 올라가는 ‘우유 상자 챌린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영상들은 중독성 강한 음악에 단순한 동작으로 만들어져 모방하기 쉽고, 업로드할 경우 높은 조회 수와 ‘좋아요’를 받을 수 있다 보니 청소년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퍼졌다. 실제로 영국, 미국, 이탈리아에서는 스컬 브레이커 챌린지를 따라 하다가 목이 부러져 크게 다치거나 죽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에는 현대·기아차를 훔치는 과정을 촬영해 틱톡에 올리는 ‘기아 챌린지’를 따라 하던 미국 10대들이 사고를 일으켜 사망하는 사건까지도 발생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챌린지로 인한 사고 사례가 공식적으로 보고된 바는 없지만 숏폼 플랫폼에서 기절 챌린지, 다리걸기 같은 이름으로 유사한 동영상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술이나 담배 등 과거에는 엄격하게 제재했던 청소년 유해물이 영상에 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방송이 콘텐트의 전부였던 시절에는 방송법에 따라 청소년 유해 매체물 등급을 매기는 등 무분별한 노출을 막았다. 하지만 Z세대의 94.2%가 이용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트는 방송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상 영상물에 해당해 심사 기준이 턱없이 낮다. 음주, 흡연 등 유해한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는 실정이다. 지난 10월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모니터링 결과 19세 이상 관람가인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서는 성인인 교사가 학생에게 술·담배를 권유하거나 학생의 담배를 빌려 흡연하는 장면이 버젓이 노출됐다. 이 드라마는 시청연령이 제한되어 있지만, 유튜브에 업로드된 클립에서는 이 장면을 누구나 시청할 수 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흡연, 음주하는 콘텐트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청소년들이 이를 모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방송법 규제도 변화했어야 하는데 수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범죄사실을 미화하는 콘텐트까지도 나온다. 틱톡에서 ‘소년원’ 해시태그를 검색한 결과 #소년원드갑니다, #소년원출신 등이 태그된 영상 조회 수는 각각 약 69만, 16만 회에 달했다. 범죄 사실을 마치 자랑마냥 써두고 이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문화가 퍼진 것이다. 틱톡뿐만이 아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조직폭력배 출신 유튜버들이 수억원의 후원금을 받으며 범죄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례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숏폼 콘텐트, 아이들 행동에 직접 영향
 

숏폼 콘텐트는 청소년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야기한다. [연합뉴스]

 

이렇다 보니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현장에서의 고심도 깊다. 박유신 서울석관초등학교 교사(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장)는 “유튜브 영상이 언어생활에 영향을 줬다면 숏폼 콘텐트는 아이들의 행동과 놀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박소현 옥길산들초 교사는 “짧은 영상에 익숙한 아이들은 긴 시간 집중을 해야 하는 영상이나 글을 어려워하게 된다”고 전했다.

해결책 마련이 시급해보이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조차 미지수다. 현재 SNS 등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재 등의 권한이 있지만 아직은 신고가 들어온 뒤 영상 게재를 중지하는 등의 사후 조치가 유일한 방법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메타), 틱톡은 자체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청연령 제한, 아동 모드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조차도 허점이 많다. 플랫폼이 모든 영상을 검열, 제한할 수 없고, AI 기반의 필터링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해 콘텐트를 전면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콘텐트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보아도 플랫폼 측에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지난달 27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펜실베니아 법원은 지난해 ‘블랙아웃 챌린지’를 따라 하다가 사망한 10세 소녀 나일라 앤더슨의 모친이 틱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틱톡 알고리즘에 의해 챌린지 영상에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틱톡에 책임을 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유 교수는 “유해 콘텐트로 인해 날로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제도나 기술적으로 규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방치할 순 없다”며 “방통위 등 유관기관이 유해 콘텐트 업로드를 제한하거나 최소한 미성년자가 손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플랫폼의 자정 노력만으로는 사각지대를 막을 수 없다면 결국 보호자들이 나서야 한다. 실제로 미국, 호주, 핀란드, 영국 등에서는 청소년의 미디어 리터러시 함양을 위해선 부모 교육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관련 정책을 개발한다.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틱톡과 같은 숏폼 콘텐트 서비스에 실제로 어떤 콘텐트가 있는지 함께 보면서 사용법을 익히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지도가 필요하다”며 “부모와 자녀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동시에 적응하고 이해해야만 유해 콘텐트를 피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청소년에게 적절한 영상 미디어 사용법을 가르칠 필요도 있다. 이귀영 양현고등학교 교사는 “미디어 생산 경험을 통해 미디어 현상을 다각도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윤경 봉은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에서의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가정과의 연계 교육”이라며 “가정에서의 미디어 노출 시간이 많아지고, 통제가 되지 않으면 학생들은 스스로 절제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도 이를 잘 조절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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