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크라이나 중부 드니프로에 들어선 이동식 방공 시설. 사진 트위터 캡처
#1. 최근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드니프로에선 길거리 한가운데 이동식 콘크리트 방공호를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방공호는 2014년 시작된 돈바스 전쟁터에서 땅에 묻어 사용할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지만, 수시로 날아드는 러시아의 미사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에 세워졌다.
#2. 영국 국방부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국방정보국(DI) 보고를 통해 “러시아의 미사일 재고가 고갈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포착된 러시아의 미사일 잔해에서 1980년대 생산된 핵탄두 탑재용 X-55 순항미사일이 발견됐다면서다. DI는 러시아가 미사일 부족으로 핵탄두를 제거한 채 이 미사일을 사용한 것으로 봤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전장에서의 전투 외에도 우크라이나 전역을 타격하는 미사일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포를 안겼다. 다량의 미사일을 소모해 재고 부족에 시달린다는 관측이 그간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여전히 대규모 미사일 공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미사일은 얼마나 남았을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스푸트니크=연합뉴스
현재 러시아 정부는 자국의 미사일 비축량과 생산량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이 때문에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지난 22일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이 비교적 구체적인 수치를 내놨다.
우크라 “러, 고정밀 미사일 대부분 소모”
그래픽=박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전 시점부터 지난달 18일까지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사일 사용량을 정리한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다량의 고정밀 미사일을 소모했다.
대표적인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이스칸데르의 경우 전체의 13%만 남았다. 침공 이전 배치된 900기 중 829기를 소모한 것으로 파악된다. 추가 생산은 48기만 이뤄졌다. 군함에서 발사되는 함대지 순항미사일 칼리브르의 경우에도 기존 500기에 120기를 추가 생산했지만, 391기를 써 37%까지 비축량이 떨어졌다. 공대지 미사일 등도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제외하면 재고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완전한 고갈은 아니지만, 러시아가 이 미사일들로 이번 전쟁 수행 외에도 드넓은 국토 방위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부 우려가 나올 수 있는 수준이다.
레즈니코프 장관은 “러시아 미사일 부대에는 4개의 적이 있다”며 우크라이나 방공 전력, 서툰 러시아군, 외부의 제재, 그리고 시간을 꼽았다. 서방의 제재로 원활한 미사일 추가 생산이 어려운 러시아의 힘이 갈수록 빠질 것이라는 취지다. 다만 레즈니코프 장관은 러시아의 미사일 소모량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동식 발사차량에 적재되는 러시아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 타스=연합뉴스
군사 전문가들도 미사일이 충분하다는 러시아의 주장과 달리 여러 차례 미사일 부족 정황이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우선 개전 초 거의 매일 미사일 공세가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간헐적인 공격으로 그 횟수가 줄었다. 러시아가 지난 2월 침공 후 약 5달 동안 사용한 미사일 또는 유도 로켓은 3650발 이상으로 파악되는데, 지난 10월 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한 수치는 약 4500발이었다.
또 더글러스 베리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가 지대공 미사일인 S-300을 지상 공격에 동원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미사일 재고가 없다는 확실한 신호”라고 했다.
지난 10월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리브네의 에너지 인프라 시설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한 모습. AFP=뉴스1
정밀 유도무기에는 첨단 부품이 대거 필요하다는 점에서 추가 생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일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군사 장비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첨단 반도체 기술은 미국 기업에서 나오는데, 러시아의 미사일은 자체 생산할 수 없는 반도체로 가득하다”며 “현재 러시아의 마이크로칩 수입이 90%가량 줄었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암시장에서 부품을 구하고, 일부 부품을 자체 생산해도 러시아가 (단기간에) 미사일을 보충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미사일 고갈 수준 아니다…일정 수량 확보 가능” 반론도
그러나 일각에선 개전 초와 같은 대규모 미사일 동원은 어려워도 이를 과장해 평가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러시아의 미사일 재고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고갈된 수준이 아닌 데다 생산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달 24일 67발, 15일에는 약 100발 등 최근에도 다량의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타격했다. 발전소 등 민간 기반시설 공격으로 우크라이나의 다수 지역이 심각한 전력난을 겪는 중이다.
러시아군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전력시설이 상당 부분 파괴된 가운데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남부 헤르손의 한 병원 의사들이 어두운 수술실에서 러시아군 공격에 부상당한 13세 남자 어린이의 왼쪽 팔 절단 수술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턴 어드바이저리 그룹의 리처드 코놀리 컨설팅 책임자는 최근 미국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미사일 비축량의 3분의 2를 소모했다는 주장은 지난 4월부터 있었지만 계속 사용되고 있다”며 “우린 러시아 방위산업의 현황을 정확히 모른다. 충분치는 않아도 계속 생산하고 있어 정기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공격을 할 수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란제 자폭 드론(무인항공기)도 미사일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군에 보완 수단이 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란제 샤헤드(Shahed)-136 자폭 드론은 느린 속도로 비교적 격추는 쉽지만, 1대 당 2만 달러(약 2600만원)라는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이런 드론을 다수 운용하면서 값비싼 미사일 소모량을 줄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한복판에 떨어진 러시아 드론.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러시아의 미사일 재생산에도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갈 전망이다.
‘포브스 우크라이나’가 추정한 이스칸데르 미사일 1기의 가격은 300만 달러(약 40억원)다. 829기를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이스칸데르 발사에 들어간 비용만 3조원이 넘는다. 러시아가 지난 3월부터 사용한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은 1기 당 가격이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출이 아닌 자국 납품이라는 점에서 비용이 낮아지는 걸 고려해도 천문학적인 액수다.
지난달 16일 러시아연방통계청은 올 3분기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연속으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기술적 의미의 경기침체가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러시아의 올해 4분기 GDP도 전년 동기 대비 7.1%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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