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4000년돌'로 불리는 여성이 있다. 40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미모의 아이돌이란 의미다. 주인공은 중국 아이돌 그룹 SNH48에서 활동 중인 쥐징이(鞠婧禕·28).
요즘 일본 여성들에게 쥐징이와 같은 중국 미인의 화장법을 따라 하는 '중화(中華) 메이크업'이 인기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보도했다. 일본 청년층이 기성세대와 달리 중국에 대한 편견이 덜하고 중화 메이크업 자체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걸그룹에서 활동 중인 쥐징이(사진). 최근 일본에서는 쥐징이와 같은 중국 미인들의 메이크업 방식을 따라하는 '중화 메이크업'이 유행하고 있다. 사진 웨이보 캡처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해도 중화 메이크업은 '차이보그'(차이나 사이보그) 화장법으로 불렸다. 로봇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한 미인상을 표현하는 화장법이란 의미다. 입술은 새빨갛게, 눈썹도 확실하게 그리는 게 특징이다.
중국 메이크업 가운데 '차이보그' 방식으로 화장한 유튜버. 사진 유튜브 캡처
그러나 이젠 트렌드가 달라졌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에선 중화 메이크업 중에서도 '순수함과 욕망'이란 두 토끼를 잡은 '순욕(純欲)' 메이크업이 유행이다. 분홍색을 사용해 귀여우면서도 성숙한 분위기를 내는 화장법이다.
중화 화장법의 한 종류인 '순욕' 메이크업. 사진은 리호 미나미라는 일본 유튜버. 사진 유튜브 캡처.
일본 여성들은 중화 메이크업의 또 다른 형태인 '백탕(白湯·따뜻한 물이라는 뜻) 메이크업'에도 관심이 높다고 한다. 베이지색 화장품을 주로 써서 '자연 미인'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순욕 메이크업에 비해 차분한 느낌을 준다. 지난해 구글 저팬에 따르면 순욕·백탕 메이크업은 메이크업 연관 검색어 2위와 3위를 각각 차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일본에서 중화 메이크업이 인기를 얻은 덕에 중국 토종 화장품 브랜드인 화시즈(花西子), 즈시(滋色) 등의 매출도 덩달아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2017년 설립된 화시즈의 매출은 2019년 10억 위안(약 1823억원)에서 2020년 30억 위안(약 5470억원)으로 증가한 데 이어 2021년엔 54억 위안(약 9846억원)을 돌파했다.
일본에서 중국 미인들의 메이크업을 따라하는 '중화 메이크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중화 메이크업의 한 종류인 백탕 메이크업을 한 여성들. 사진 모라 홈페이지 캡처
어떻게 중국산 화장품이 일본 소비자를 사로잡았을까. 고토 야스히로 일본 아시아대 교수는 "반도체 등 정부가 통제하려는 산업과 달리 화장품은 비정치적인 영역"이라고 이코노미스트에 전했다. 영유권 분쟁이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 등 중·일 갈등도 일본인들의 화장품 소비에는 영향을 거의 주지 않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일본인들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고토 교수는 "중장년층 일본인들은 중국 제품은 열등하다고 여겨 중국산 사용을 피했지만, 자녀 세대는 그런 생각이 희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21년 여론조사에서 18~29세 일본인 응답자의 40% 이상이 중국인·중국 제품에 대해 '친숙하다'고 답했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60~70대는 응답자의 13%만 이렇게 답했다.
중국 화장품 자체의 품질도 이전보다 향상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화장품 업체들은 최근엔 가격 경쟁력과 독창성을 갖춘 제품도 내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전했다.
일본 기능성 화장품 연구소의 하야시 사야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관영 매체인 차이나데일리에 "중국 화장품 브랜드가 값싸고 질 낮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산 화장품은 일본에서 중·저소득층을 겨냥했지만 최근 고가·고품질 화장품이 늘면서 직장 여성과 고소득 고객이 몰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중국에서는 해외 화장품이 인기였지만 최근에는 자국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화장품이 해외 시장에서 통하면서 시장 지형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래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화장품 대국이었지만, 2019년부터 중국에 밀렸다. 데이터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일본 화장품 시장은 미국(802억 달러·약 99조원), 중국(517억 달러·약 64조원)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10위권(120억 달러·약 13조원)에 속해 있다.
여기에 중국에선 청년층을 중심으로 자국 상품을 애용하는 '애국주의 소비(國潮·궈차오)'열풍이 불면서 중국 화장품 업체들은 '겹호재'를 맞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중국인들은 유럽·한국 등 해외 화장품을 선호했지만, 이제 중국 화장품은 자국민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 화장품 소비의 중심엔 청년층이 있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중국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Z세대는 화장품 등 미용 제품을 사는데 다른 연령층보다 최대 돈을 2배 더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