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가수 지 파멜루는 2012년 여성으로 성전환했지만, 성별을 바꾸지 않아 지난해 러시아 침공 이후 징집 대상이 됐다. 독일로 탈출한 뒤 지난해 4월 미 NBC 인터뷰에 응한 파멜루의 모습. 트위터 캡처, 그래픽 = 권호영 기자
■ Global Window - 뜨거운 감자 된 ‘트랜스젠더’ 정책
우크라이나 가수인 지 파멜루
성전환 했지만 법적 性 안바꿔
징집 대상되자 독일로 탈출해
핀란드선 진보적 권리법 통과
신분증상 性수정 절차 간소화
스페인도 트랜스젠더 권리법
영국, 스코틀랜드 성인식법 제동
감형 위한 ‘위장 성전환’ 의혹
여론 싸늘… 男 교도소로 이감
종교·이념·인권 등 얽혀있어
지지층 결집수단 변질 우려도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침공을 강행하자 계엄령을 선포하고 만 18세부터 60세 남성의 출국을 금지했다. 전황이 불리해지면 이들을 언제라도 예비군으로 징집할 수 있게끔 한 조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남성에서 여성,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했지만, 신분증상 기존 성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여성이 됐지만, 법적으로 아직 남성인 사람은 영토 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해석을 내놨다.
반발은 거셌다. 지난해 4월 미 NBC는 2012년 성전환으로 여성이 된 우크라이나 가수 지 파멜루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2016년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려 했지만, 까다로운 검사와 한 달 동안 정신과 시설에 머물러야 하는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마음을 접었다. 파멜루는 “굴욕감과 사기 저하를 느껴 법적 성별 수정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이후 전쟁이 터졌고 신분증상 여전히 남성이었던 파멜루는 징집 대상이 됐다. 그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독일로 탈출해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선 트랜스젠더가 성별을 법적으로 변경하는 데 필요한 절차와 기준을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이를 간소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진보 진영에선 누구나 정체성에 따라 성별을 선택하고, 이를 법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 진영에선 성별 정정이 쉬워지면 이를 악용하는 일이 빈번해져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핀란드·스페인 “나는 트랜스젠더” 선언만으로 인정… 시민단체 “환영” = 핀란드 의회는 지난 1일 트랜스젠더의 신분증상 성별 수정 절차 간소화 내용을 담은 일명 ‘진보적 권리법’을 찬성 113표, 반대 69표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18세 이상 성전환자는 ‘자기 선언’ 과정만 거치면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핀란드에선 전문가의 의학적, 정신과적 승인이 있어야만 성별을 바꿀 수 있었다. 유로뉴스는 “애초 미성년자인 16세 또는 17세로 대상을 확대하려 했었다”고 소개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어린 시절 성소수자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어머니를 오랜 기간 지켜본 마린 총리는 “성전환자 권리를 대폭 강화한 이번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스페인 하원도 지난해 12월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의료진 판단 없이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트랜스젠더 권리 법안을 찬성 188표, 반대 150표로 가결했다. 성별을 바꾸기 위해선 2년간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는 증빙서류와 성별과 정체성 사이에 불일치를 느낀다는 의학적 진단서를 정부와 법원에 제출해야 했는데 이를 모두 철폐한 결정이었다.
진보 진영과 시민단체는 환호했다. 핀란드 성소수자 단체 세타(Seta)는 “최종 법안에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성전환자 권리 향상에 대한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성전환 강간범’ 여성구치소 수감 논란 스코틀랜드… 보수 진영 “반대” = 영국은 지난달 17일 본인 선택만으로 성별 정정이 가능하도록 한 스코틀랜드 의회의 ‘성 인식 법’에 제동을 걸었다. 영국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1999년 스코틀랜드 의회 출범 이후 처음이었다. 집권 보수당에선 “법적 성별을 쉽게 바꾸도록 하면 이를 악용하는 일이 계속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정부가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스코틀랜드가 꼬리를 내리게 된 결정적 사건이 발생한다. 스코틀랜드 출신 트랜스젠더 여성 이슬라 브라이슨은 애덤 그레이엄이라는 이름의 남성이었던 시절 여성 두 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2019년 7월 첫 재판을 받았다. 재판이 시작되자 그는 돌연 “어린 시절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며 화장을 자주 했다”며 자신의 성 정체성이 여성이라고 주장했고, 실제로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스코틀랜드 당국은 지난달 26일 유죄 판결을 받은 브라이슨을 여성 전용인 콘턴 베일 교도소로 보냈는데, 다른 여성 수감자는 물론 영국 안팎에서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브라이슨이 남성일 때 결혼했던 전처가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성 정체성이 여성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고백하자 형을 감면받기 위한 ‘위장 성전환’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스터전 수반은 결국 “남성 교도소로 옮기겠다”며 고개를 숙였고, ‘성 인식 법’에 대한 여론도 싸늘해졌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 지지층 결집 수단 변질 우려 = 트랜스젠더 이슈는 각국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종교와 이념, 사회 시스템과 인권 문제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이를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활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2024년 미국 대선 출마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좌파의 젠더 광기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며 “50개 주 모두에서 미성년자가 ‘성별을 확인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들을 악(惡)으로 취급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스코틀랜드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성전환자 법적 성별 변경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진보적 권리법’을 통과시킨 핀란드 의회에선 극우 핀란드인당과 보수 기독민주당뿐 아니라 내각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중도 중앙당에서도 이탈표가 나왔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