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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지진 속 태어난 생명… 엄마는 아기 지키고 끝내 하늘로 떠났다
튀르키예-시리아 사망 1만명 넘어

 

6일(현지 시간) 시리아 진디레스의 무너진 아파트 잔해 속에서 태어나 탯줄을 단 채 구조된 신생아가 7일 알레포의 소아병동에서 치료받고 있다. 알레포=AP 뉴시스

 

6일(현지 시간) 오후 시리아 북부 진디레스. 규모 7.8 강진으로 5층 아파트가 무너져 내린 잔해에서 칼릴 알 샤미(34)는 형의 가족을 찾기 위해 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둔 형수와 태어날 아기가 걱정이었다. 시멘트 파편과 흙먼지 사이로 형수로 보이는 여성의 다리와 탯줄을 달고 있는 아기가 보였다. 차가운 폐허 속에서 조카가 태어난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재난의 한복판에 갇힌 조카는 팔다리가 축 처진 채 구조대원의 손에 들려 나왔다. 얼굴과 등이 멍투성이였지만 숨을 쉬며 팔다리를 움직였다. 아기가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은 앞다퉈 담요를 던졌다. 안타깝게도 산모 등 다른 가족들은 모두 숨졌다고 AP통신은 7일 전했다. 조카의 탯줄을 자른 샤미는 “형수가 다음 날 출산하기로 돼 있었는데 지진의 충격으로 분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6일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8일 오후 2시 반(한국 시간 오후 8시 반) 기준 확인된 사망자는 1만1200여 명에 이른다. 최대 3일까지인 구조의 골든타임이 끝나가고 있어 사망자는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수 있다. 유니세프는 어린이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부모를 잃어 신원 파악이 안 되는 아이들도 많다.

숨진 아이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시신 수습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누르다으의 건물 잔해에서 숨진 자녀를 꺼낸 압두라흐만 겐차이 씨는 “아이를 빨간 담요로 말아 집집마다 다니며 묻어줄 사람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시체 안치소도 꽉 차서 수십 구의 시신이 앞에 방치돼 있다”고 7일 워싱턴포스트(WP)에 전했다.

지진 사망 1만1200명 넘어
천으로 싸인 시신들 도로 곳곳 널려
“생존 아동들도 큰 트라우마 겪을 것”
이재민 2300만명… 동사 위험도 커



지진으로 도로 등 기반시설이 파괴된 데다 장비 부족 등이 겹치면서 현지에서는 주민들이 맨손으로 잔해를 파내며 구조에 나서는 실정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여기에 추운 날씨까지 겹치면서 생존 능력이 약한 어린이들의 희생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사태 수습에 사실상 손을 놓은 상황에서 구조 작업을 주도하는 반군 측 민방위군 ‘화이트 헬멧’의 한 대원은 “가족 내 사망자 중 대부분이 아이들”이라고 WP에 전했다. 다른 대원은 한 소녀가 건물에 깔린 것을 보고 나무토막으로 잔해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막으며 4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지만 다른 곳에서 지원 요청이 쇄도해 결국 떠나야 했다. 그는 “생존자가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절망감을 드러냈다.

기적적인 생존 소식들도 간간이 전해졌다.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에서는 콘크리트 지붕과 뒤틀린 철근 아래에 갇혀 있던 세 살배기 남아 아리프 칸이 지진 발생 이틀 만에 구조됐다. 칸보다 먼저 구조됐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구급차에 실리자 감격의 눈물을 터뜨렸다. 33세 여성과 두 살 난 딸이 지진 발생 44시간 만에 구조됐고, 소파 밑에 끼어 있던 2세 아이도 43시간 만에 구출됐다고 튀르키예 아나돌루통신이 전했다.

조 잉글리시 유니세프 대변인은 뉴욕타임스(NYT)에 “지진 피해 지역 어린이들 중 신체적·심리적으로 이번 재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아이는 없을 것”이라며 “아이들에겐 트라우마 중의 트라우마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짧은 생 마감한 어린이… 생존자들도 망연자실 7일(현지 시간) 시리아 지진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알레포의 한 공동묘지에서 주민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 숨진 어린이를 흰 천으로 감싸 매장하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튀르키예 말라티아에선 건물 잔해에 매몰된 가족과 지인을 수색하던 주민들이 눈 덮인 건물더미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세계 각국에서 지진 피해 지역으로 구호 인력과 물자가 들어오고 있지만 지진으로 도로 등이 무너져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말라티아=AP 뉴시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회색 먼지를 뒤집어쓴 수십 명의 생존자가 유령처럼 절뚝거리며 (가족이나 지인을 찾기 위해) 아파트 잔해를 헤집고 있다”며 지진이 휩쓸고 간 현장의 참상을 묘사했다. 한 여성이 11세, 17세인 두 아들이 서로 껴안은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며 울먹이자, 어머니를 찾고 있던 이웃은 “시신이라도 찾은 당신이 부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해가 특히 심각한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안타키아에는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구급차량들이 접근하지 못해 혼란이 벌어졌다고 NYT는 보도했다. 하타이 현지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천으로 싸인 시신들이 도로 곳곳에 5, 6구씩 놓여 있었다.

피해 지역은 넓은데 당국의 구조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자구책에 의존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알리며 구조를 요청하는 게시물이 이어졌다. 무너진 집에 갇힌 한 10대 소년은 영상 촬영 도중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자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신이여, 저희를 도우소서”라고 말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8일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대 1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이재민은 2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 튀르키예 주민은 “텐트도, 난로도, 아무것도 없는데 아이들과 함께 비에 젖은 채 떨고 있다. 굶주림이나 지진이 아니라 추위로 죽을 것”이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튀르키예 시민들은 정부가 재난 예방과 응급 서비스 개선에 쓰겠다며 1999년 이른바 ‘지진세’(특별 통신세)를 도입해놓고 지진 대비에는 부실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AFP통신은 시민들이 “재난 발생 후 첫 12시간 동안 구조팀이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인 것이냐”며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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