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수민은 나태주 시인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나태주 시인을 "왜 좋아하느냐" 묻자 조수민은 "때묻지 않은 따뜻함이 담겨 있다"고 했다. '때묻지 않은 따뜻함'이란 무엇일까. 머릿속으로 곱씹고 있었더니, 조수민이 "시집을 읽고 있으면 저까지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커다란 눈을 끔뻑, 끔뻑, 끔뻑거린다.
'펜트하우스'의 민설아일 때에도, '금혼령'의 화윤이던 순간에도 TV 화면에선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또 한번 엔딩' 오프닝에서 조수민이 연인에게 애원하며 울먹일 때에는 어디서 기어 올린 건지 눈물이 쏟아질듯 찰랑였다.
조수민의 동심(童心)이 깊다.
단지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필통을 아직도 가지고 다녀요"란 말을 해서는 아니다. "가수 민수를 좋아하는데, 가사가 예쁘고 노래가 동화 같더라고요"란 호감을 꺼내서도 아니다. 조수민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 사람은 과연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서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고요? 얼마 전에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대답할 게 마땅히 없었어요. 긍정적인 편인데, 제가 사실 상처 받는 거에 약한 것 같아요. 남들이 하는 말을 한번 들으면 그게 오래 남더라고요. 누구나 인생에 굴곡이 있고 좋은 사람만 마주할 순 없으니까, 과연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지 고민하게 돼요. 저마다의 '좋은 어른'의 기준이 있을 것도 같고요. 그러면서 저도 저 스스로한테 부끄럽지 않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좋은 어른'이 되려는 여정이었나.
'소문난 칠공주'의 왕미라, '투명인간 최장수'의 최솔미, '엄마가 뿔났다'의 이소라까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 '동심'의 어린 배우가 모두 조수민이었다. 아역 시절 때묻지 않은 연기로 그렇게 시청자들을 울려 놓고도 조수민은 아역 배우 활동을 그만두었고, 연예계와 작별하면서도 조수민은 "스무 살 어른이 되면 돌아오자"고 기약했다.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TV를 보면서 많이 따라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워낙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연기를 하면서도 정말 즐거웠어요. 근데 학업이랑 연기를 병행하면 학교를 못 나가게 되는 날이 생기더라고요. 학업에 집중하고, 제 가치관이 정립된 다음에, 학교를 온전히 마치고 돌아오고 싶었어요. 연기가 너무 하고 싶긴 했죠. 그치만 돌이켜보면 중, 고등학교 생활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제 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의 친구들이 지금까지 제 친구들이에요. 너무 소중한."
조수민이 말한 '때묻지 않은 따뜻함'의 시상(詩想)은 선뜻 그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조수민이 지나온 작품들을 되씹다 보니, 문득 조수민의 연기 밑바닥에 깔린 동심이 그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투명인간 최장수'에서 "아빠, 사랑해요!"라고 부르짖으며 최장수(유오성)에게 달려간 솔미는 '펜트하우스' 비극의 중심 민설아를 거쳐 '금혼령'의 화윤이 되어 "소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변함없던 건 조수민의 커다란 눈에 박힌 깊은 동심이었다.
"악플에 상처 받지는 않아요. 저를 잘 모르고 쓰신 거니까요"란 말을 할 때에도 조수민은 웃었다. "반장을 9년 했어요" 슬쩍 자랑하면서도 조수민은 웃었다.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만이, 받은 사랑을 돌려준 적 있는 사람만이 지닌 그런 웃음. "대신에 제가 상처 받는 건, 제가 정말 믿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돌아온 조수민을 이제는 우리가 믿어줄 차례인 셈이다.
그 시절 그 꼬마 조수민이 긴 숨을 고르고 우리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서 돌아왔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우린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나태주 시인이 '풀꽃'에서 노래했듯, 우리는 조수민의 연기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조수민이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사실 집에 있을 때는 저희 '꼬미'랑 놀아요. 반려견이에요. '꼬미'는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게 너무 좋아요. 항상 저만 바라봐주고, 변하지 않는 꼬미의 그 눈빛이요."
조수민이 웃었다. "제일 행복한 날은 아직 안 온 거였으면 좋겠어요"라며 웃었다. '좋은 배우' 조수민이 웃었다.
마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