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선택은 ‘협력’”,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미국과 중국의 자세

by 민들레 posted Mar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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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은 미·중이 유일하게 협력 또는 경쟁하는 분야다.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은 ‘생태 문명’을 선언하며 변신 중이다. 미국은 IRA로 대변되는 자국 산업 보호를 기후 대책으로 내세운다.

 

중국 장쑤성 양저우시 바오잉현에 설치된 태양광과 풍력발전단지 주변을 관계자들이 점검하고 있다. ©Xinhua



미국과 중국이 싸우는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섬뜩하다. 정치·경제·군사·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세계 패권을 놓고 으르렁대는 두 나라의 행보가 우리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국이 사실상 유일하게 협력 또는 경쟁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기후위기 대응이다.

전 세계의 기후위기 대응은, 일찌감치 그 심각성을 깨달은 유럽이 앞서가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형국이다.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세우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두 나라(1위 중국, 2위 미국)의 적극적 참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두 나라의 참여로 파리협정이 맺어지면서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전 세계적인 약속, 이른바 ‘신기후체제’가 등장했다.

이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어깃장으로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 바이든 대통령 때 복귀하는 등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지만, 양국이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미국과 중국은 2021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기후변화 앞에서 양국의 유일한 선택은 ‘협력’이다”라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 세계의 굴뚝, 중국의 파격 변신



양대 강국의 기후위기 대응에서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 있다. 중국의 행보다. 최악의 온실가스 배출 국가로 지목돼온 ‘세계의 굴뚝’ 중국이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미국을 앞서나가고 있다. 여기서 의아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의 나라 중국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하나씩 살펴보자.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 업체인 중국의 화웨이는 올해 1월 국제 비영리 환경기구 CDP(Carbon Disclosure Project:탄소 정보공개 프로젝트)의 기후변화대응 평가에서 최상위 등급인 ‘A 리스트’를 받았다.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늘리고 제품 생산 및 포장 단계에서 탄소배출을 줄인 점을 인정받아 ‘우수 환경 리더십상’도 수상했다.

CDP 평가는 다우존스 지속가능성지수(DJSI) 등과 함께 유력한 지속가능 경영 평가지표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LG디스플레이, SK에코플랜트, KT&G 등이 올해 관련 부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말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연방정부와 거래하는 업자에게 CDP를 통해 환경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할 만큼 그 중요성이 커지는 지표다.

10여 년 전만 해도 화웨이는 덤핑과 기술 도용으로 오명을 얻었던 기업이다. 최근까지도 화웨이 장비가 민감한 정보를 빼간다는 이유로 미국과 갈등을 빚어왔다. 화웨이의 안면인식 기술이 반체제 인사 식별과 탄압에 이용된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랬던 화웨이가 서방을 주축으로 한 비영리 환경기구로부터 기후위기 대응 우수기업으로 꼽혔다.

지난해 4월 화웨이는 ‘친환경 개발 2030 보고서’를 발표하고 ‘녹색산업’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주류로 자리 잡은 재생에너지 △산업 전반의 친환경화 △전기 교통수단 본격화 △탄소중립으로 운영되는 건물 △친환경 디지털 인프라 △저탄소 생활에 대한 관심 증대 등이다.

보고서가 말하려는 바는 뚜렷하다. 세상이 친환경·탄소중립으로 변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거기에 발맞추겠다는 것이다. 화웨이의 사례는 일부일 뿐이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중국의 거대 IT 기업들이 2021년을 기점으로 일제히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계획의 현실성과는 별개로, 2022년에 탄소중립을 선언한 한국의 삼성전자보다 빨랐다.

중국 기업의 탄소중립 선언 뒤에는 정부가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0년 유엔 총회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래 중국은 기후위기 대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이른바 ‘쌍탄소’ 정책이다. 2030년에 탄소배출 피크를 찍고 206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산업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 전부를 쏟아부어도 삼성전자 한 기업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국은 이런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생산하고 있을까. 아래 〈그림〉을 보자. 아랍에미리트(UAE)에 있는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2020년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가장 많은 나라 10개국을 꼽은 데이터다. 중국의 발전량은 약 218만GWh로 압도적 1위다. 2위 미국은 약 84만GWh로, 중국의 절반도 안 된다.
 

 

■ “의심할 여지 없는 풍력발전 리더”



여기에는 수력발전이 한몫한다. 세계 최대의 수력발전소인 싼샤댐 등 풍부한 수력자원을 가진 중국은 이미 재생에너지 강국의 토대를 갖췄다. 그런데 태양광이나 풍력 등 서구에서 집중 육성하고 있는 분야로 봐도 마찬가지다. 같은 해 중국의 태양광·풍력 발전량은 약 72만GWh로, 미국(46만GWh)보다 많다. 이 또한 세계 1위다. 발전량으로만 보면 중국은 이미 재생에너지 최강국이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여전히 제조업 기반 산업이 적지 않은 중국에서 전체 ‘비중’으로 보면 재생에너지의 몫은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 중국의 전력 생산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여전히 석탄·석유·가스 등 화력발전이다. 화력발전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그 뒤를 수력-풍력-원자력-태양광이 잇는다.

눈여겨볼 점은 태양광과 풍력 산업의 발전 ‘속도’다. 중국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보급과 투자에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중국 샤먼대학 등이 발표한 ‘중국 탄소중립 개발능력지수’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중국의 태양광·풍력 사업 투자액은 각각 410억 달러, 580억 달러였다.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전 세계 재생에너지 투자액의 40%가 넘는 금액이다. 풍력과 태양광이, 화력은 몰라도 수력발전을 능가하는 발전원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 결과 설비용량에서도 이미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중국의 풍력발전 설비용량은 세계 1위다. 2020년 풍력발전기 신규 설치 상위 10개 업체 중 7개가 중국 기업이었을 정도다. 엠버는 “중국은 의심할 여지 없는 풍력발전의 리더”라고 평가했다. 태양광의 경우 부품 소재 등 전 세계 공급망 80% 이상을 중국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성장할수록 중국이 돈을 쓸어 담으리라는 말이다.

2022년 6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제14차 5개년 재생에너지 개발계획’에는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더욱 높일 로드맵이 담겨 있다. 신장·허베이 등 7개 지역에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조성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해 송전망을 개발할 계획이다. 송전망 부족은 그동안 중국 전력 문제의 골칫거리였다. 급증하는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송전선로가 따라잡지 못해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일부 전력이 버려지곤 했다. 계획대로면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재생에너지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셈이다.
 

2021년 7월 중국 허난성 신샹시 웨이후이에서 홍수로 고립된 주민들이 구조용 고무보트를 타고 대피하고 있다. ©Xinhua

 

■ 기후위기 대응에는 어떤 체제가 나을까



‘생태 문명’이라는 말이 있다. 공항·역·거리 등 중국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호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공식화한 이 말은 환경오염으로 망가진 중국의 자연환경을 되살려 인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시진핑이 저장성 당서기를 지내던 시절 직접 만든 표어인 ‘녹수청산 금산은산(깨끗한 자연환경이 금이고 은이다)’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굴뚝’ 구실을 하다가, 국제사회로부터 환경오염 국가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중국이 ‘녹색 문명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다. 중국의 기후위기 대응에는, 경제도 경제지만 환경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중국의 지방정부도 탄소중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에서 탄소배출이 가장 많은 지역인 허베이성의 경우 최근 공해 및 탄소감축 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2월12일 〈허베이일보〉에 따르면 지방정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권고한다. ‘오염이 심한 기업의 이전, 개조 또는 폐쇄 가속화. 규정을 위반하여 철·코크스·시멘트·유리의 생산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을 엄격히 금지. 석탄 등 화석연료의 생산 규모를 합리적으로 통제.’

한국이라면 정부의 희망사항에 가까울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권고를 넘어 ‘강제’가 될 수 있다. 중국은 관계자의 ‘이해’를 무시하고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다. 실제로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가 국내외에서 골칫거리가 됐을 때 중국 정부는 석탄발전소 여러 개를 강제로 폐쇄시키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철학적인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2015년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 Photo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라쉬 씨는 기후위기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그는 한 방송에서 중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국민의 뜻을 반영하지 않고 공산당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권위주의 정부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무척 논쟁적인 이슈다.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환경운동가 중에서도 권위주의적 방식이 환경 및 기후위기 대응에는 더 낫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다. 예컨대 독일처럼 신축 건물마다 태양광 패널 설치를 의무화하려는데, 관계자들이 반대한다면? 토론과 설득, 적절한 보상이 정답이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도 중국 정부의 대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환경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윤성혜 교수(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는 “국제사회가 신뢰하든 안 하든, 기후위기 대응은 중국이 물러설 수 없는 문제다. 법률을 개정하려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환경법 개정은 수시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개정할 때마다 매번 가장 강력한 법률을 내놓고 있다. 의사결정이 느린 편인 중국에서 기후위기 이슈에 대한 결정은 무척 빠르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기후위기로 인해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지난해 중남부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이재민 200만명이 발생하는 등 해마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일어난다. 기후변화 데이터를 다루는 글로벌 기관 XDI는 최근 기후위기로 인한 ‘건물 피해’를 예측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기후위기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상위 20곳 가운데 17곳이 중국이었다. 장쑤(상하이 근방), 산둥, 허베이, 광둥, 허난 등 중국에서 큰 성들이다. 중국에게 기후위기 대응은 급박한 생존의 문제다.
 

■ 미국 공화당 우세 지역에 청정에너지 투자 늘어



이제 미국 이야기를 해보자. 미국의 기후위기 대응은 어찌 보면 단순 명쾌하다. 대놓고 경제다. 기후위기는 명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국 산업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다. 유럽이 탄소국경세를 통해 타국에 관세를 물리는 대신 자국 기업에 무상으로 나눠주던 탄소배출권을 유상으로 바꾸면서 ‘고육책’을 쓴 것과는 대조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가장 크고 중요한 기후 법안”이라고 말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미국의 물가 안정’을 목표로 만든 이 법에는 의약품 및 에너지 가격 조절 등과 기후위기 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 골자는 이렇다. 재생에너지·배터리·전기차 등 미국 내 녹색산업의 확대를 위해 그동안 한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에 주던 보조금, 세액공제 같은 혜택을 없애거나 축소한 것이다. 외국 기업이 혜택을 받으려면 미국 내에 공장이 있어야만 한다. 자국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도 늘리겠다는 계산이다. 중국·북한·이란 등 ‘우려 단체’의 부품도 쓸 수 없도록 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뉴햄프셔주의 태양광발전 프로젝트 현장을 방문했다.©REUTERS

 



IRA는 정치인 바이든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그동안 외국 기업에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불만에 차 있던 블루칼라 유권자에게 주는 당근이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는 IRA를 통과시키며 중간선거에서 선전했다. IRA 통과 이후 공화당 우세 지역에 청정에너지 투자가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IRA가 차기 미국 대선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은 기후위기 대응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43%로 확대하고, 연방정부에서는 전기차만 사용하게 하는 등 탄소중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풍력·태양광에 300억 달러를 지원하는 등 녹색산업 전반에 약 4464억 달러(약 574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쓴소리도 있다. 정내권 전 유엔 기후변화대사는 “IRA에는 산업을 키우려는 계획뿐, 탄소 소비 자체를 줄이려는 계획이 빠져 있다. 이래서는 기후위기 대응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IRA는 동시에 국제사회에 새로운 전선을 만드는 중이다. 당장 유럽연합이 지난 1월 미국의 IRA에 맞서 ‘그린딜 산업계획(Green Deal Industry Plan)’을 발표했다. 유럽을 녹색산업의 본거지로 만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관련 규제를 풀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물론 급성장하는 중국의 녹색산업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있다. 유럽 내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그래도 큰 흔들림은 없어 보인다. 2월1일 유럽연합은 그린딜 산업계획을 공식화했다.
 

■ ‘그린뉴딜’ 홈페이지마저 사라진 한국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협력과 경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물밑에서는 각자 치열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녹색산업에 대한 큰 구상 없이 다른 나라의 행보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한국은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그린뉴딜 정책을 도입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만든 그린뉴딜 홈페이지는 사라졌고, 그린뉴딜 펀드는 그 명칭이 바뀌었다. 과거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구호를 앞세워 IT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은 녹색 앞에서 멈춰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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