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미술관, 원작 국립박물관에 대여…대체할 모작 공모해 전시
獨 크리에이터,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로 작품 제작해 제출
예술계 “원작자·예술가에 모욕적” vs 미술관 “이런 과정도 창조적”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페르메이르의 원작(오른쪽)과 인공지능(AI)이 그린 모작. 율리안 판디컨 인스타그램·위키피디아 등 캡처. 연합뉴스 |
네덜란드에서 인공지능(AI)이 그린 그림이 유명 미술관에 전시되면서 예술계에서 이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며 발칵 뒤집어졌다. 이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모방한 그림이다.
이를 두고 예술가들은 “원작자는 물론 예술가들에 대해 모욕적”이라고 강하게 반발한 반면 해당 미술관 측은 “이러한 과정도 창조적”이라고 맞섰다.
10일(현지시간) AF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페르메이르의 원작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대여하는 동안 이를 대체할 애호가들의 모작 여럿을 공모해 전시했는데, 이중 한 그림이 AI가 그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율리안 판디컨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모티브로 한 작품 전시 이벤트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는 AI로 작업한 그림 ‘빛나는 귀걸이를 한 소녀’를 출품했다.
그는 인터넷에 올라 있는 관련 이미지 수백만 개를 토대로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에 자신이 생각한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도 사용됐다.
미술관 측은 접수한 총 3482점 중 170여 점을 원작이 있던 전시실에 디지털 형식으로 전시했고, 판디컨이 제출한 것을 포함해 총 5점만 엄선해 실물(출력본)을 걸었다.
미술관에 출품된 여러 작품.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제공 |
출품된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인형, 공룡, 오리, 과일 등 기발한 형태로 패러디·오마주한 것들이 많았다. 3살 어린 아이나 94세 노인이 ‘소녀’ 대신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판디컨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박물관에서 내 작품을 보는 것은 초현실적이었다”라고 감상을 전했다.
해당 그림은 언뜻 보면 페르메이르가 지난 1665년 완성한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 같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귀에 걸린 장신구는 LED 전구처럼 빛을 내고 있고, 뺨에 있는 붉은색 주근깨 자국은 약간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드는 등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이 때문에 AI가 그린 작품이 과연 예술에 속하는지, 미술관에 다른 유서 깊은 명작들과 함께 걸릴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현지 미술계가 격렬한 논쟁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9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AI가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모작을 보고 있다. AFP 캡처 |
네덜란드 예술계 일각에서는 이번 전시회를 두고 날이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작가인 이리스 콤핏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페르메이르의 유산은 물론 활동 중인 예술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미술관에서 나오면서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AI 도구가 다른 작가들의 저작권을 침해하며, 그림 자체도 프랑켄슈타인 같은 느낌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반면 미술관 공보담당 보리스 더뮈닉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고, 사람들 사이 찬반이 갈린다”면서도 “작품을 선정한 이들은 AI가 창작한 것임을 알고도 마음에 들어 했고, 결국 선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판디컨의 출품작에 대해 “가까이서 보면 주근깨가 약간 으스스해 보이긴 한다”면서도 “우리는 이것이 멋진 그림이며, 창조적인 과정이었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며 “젊은 사람들은 AI가 새로운 것이라고 하지만, 나이 든 이들은 전통적인 회화를 더 좋아한다고들 말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작년에도 미국에서 AI가 그린 그림을 두고 한바탕 논쟁이 일기도 했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에 AI 미드저니로 제작된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이 1위에 올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