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복 입은 내 모습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편해요.”
일본의 초·중·고교 수영 수업에 성별과 무관하게 공용으로 입을 수 있는 ‘남녀공용 분리형 수영복(젠더리스 수영복)’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학생들은 해당 수영복 착용시 엉덩이·가슴 등이 부각되지 않아 신체 노출에 대한 수치심과 거부감이 줄어들어 수영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중학교 3곳에서 지난해 6월 시범적으로 도입한 남녀공용 수영복 모습. 가슴과 허리 부분이 여유로워 몸선이 잘 드러나지 않아 학생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올해 200곳 이상의 학교에서 이 수영복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 풋마크 홈페이지 캡처
19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매체에 따르면, 올해 일본 전역의 학교 200여 곳이 수영용품 전문브랜드 '풋마크'에서 제작한 남녀공용 수영복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일본의 학교들은 수난사고 예방을 위해 '생존 수영'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데, 이 수업 때 착용할 수영복은 학생들이 선택한다. 최근 여러 학교에서 남녀공용 수영복을 학생들이 선택할 후보군 중 하나에 포함시키고 있는 추세다.
남녀공용 수영복은 지난해 6월 출시돼 도쿄도(東京都)와 효고현(兵庫県)의 3개 중학교에서 시범 도입됐다. 이중 한 중학교에선 1학년 학생 절반 이상이 해당 수영복을 선택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입소문이 났다. 풋마크 관계자는 “올해 이 수영복을 도입하려는 학교가 200여 곳을 훨씬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970년대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학생들이 착용했던 수영복 모습. 점점 노출이 줄고 몸선이 드러나지 않는 수영복으로 바뀌었다. 사진 풋마크 홈페이지 캡처
이 수영복은 긴 소매 상의와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반바지로 구성됐다. 전체적으로 품이 여유로워 체형이 드러나지 않는 게 특징이다.
특히 호평을 받은 건 반바지다. 넉넉한 디자인에 속바지가 따로 달려 있어, 착용시 엉덩이나 사타구니 등 민감한 부분이 부각되지 않는다. 또 발수 가공과 반바지 좌우 뚫린 구멍으로, 물 속에 들어가도 바지가 달라붙거나 부풀어오르는 일이 없다.
긴 소매 상의에는 갈아입기 쉽도록 지퍼를 달았는데, 수업 중에 지퍼가 열리는 사고를 막기 위해 특별한 잠금 기능을 추가했다. 또 상의의 가슴 부분에 검정색 패드를 부착해 여학생도 편하게 입을 수 있다. 가격은 사이즈에 따라 다르며 6710~7150엔(6만~7만원) 사이다.
일본 수영복 업체 풋마크가 내놓은 젠더리스 수영복 하의는 엉덩이 선이 부각되지 않는다. 사진 풋마크 홈페이지 캡처
해당 수영복을 착용한 학생들은 “수영복을 입은 내 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며 호평했다. 기존 수영복보다 몸을 많이 가려주는 디자인에 대해서도 “맨살와 체모를 숨길 수 있고, 햇볕에 타지 않아서 좋다” 또는 “소매가 길어 추운 날에도 수영할 수 있어 좋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수영복을 제작한 사노 레이코(佐野玲子) 디자이너는 “수년 전부터 ‘수영복 착용 시 체형을 감추고 싶다’는 학생의 요구가 빗발쳤는데, 그중 한 남자 중학생이 긴소매와 긴바지로 이뤄진 수영복을 제안했다”면서 “여학생뿐만 아니라 남학생도 이 같은 고민이 크다는 것을 알고 새 수영복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일본 학생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젠더리스 수영복 앞뒤 모습. 사진 풋마크 홈페이지 캡처
한 중학교의 체육 선생님은 “최근에는 남학생까지 수영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마르거나 뚱뚱한 체형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데, 새로운 수영복이 나오면서 수영 수업 참여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