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미인대회에서 무슨 일이···‘할라페뇨 맛’ 멕시코 드라마 ‘세뇨리따 89’[오마주]

by 민들레 posted May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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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드라마 <세뇨리따 89>는 1989년 미스 멕시코 대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미인 대회를 이용하려는 권력자들과 살아남기 위해 ‘왕관’을 차지하려는 멕시코 여성들의 현실이 녹아있다. 왓챠 제공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오래 전 베네수엘라의 미인대회 열풍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국내에서만 매년 수 만 개 미인대회가 치러지고 여성들은 이를 위해 어릴 때부터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계 미인대회 출전자를 양성하는 ‘미인사관학교’까지 있다고 하니 이들의 미인대회 사랑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멕시코 드라마 <세뇨리따 89>를 보면 이웃 나라 멕시코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에서 제공하는 이 8부작 드라마는 1989년 미스 멕시코 대회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음모와 비밀에 관한 스릴러입니다.

숲 속에 자리한 대저택 ‘라 엔칸타다’에 32명의 여성이 모이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들은 멕시코 32개 주를 대표하는 미인들입니다. 미스 멕시코 대회 본선까지 3개월 동안 멕시코 대표 미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훈련을 받으러 온 것이죠.

이미 빼어난 미인들인 이들의 몸에 가장 먼저 대어진 것은 줄자와 펜. 트레이너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성형외과 의사 등으로 구성된 스태프들은 ‘완벽한 미인’의 기준을 정해놓고 참가자들의 몸을 이에 맞추려 합니다. 엄격한 식단을 구성하고 성형수술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멕시코의 정치인, 관료 등 권력자들은 미인대회 참가자들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용하려 한다. 왓챠 제공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이 세계가 실은 얼마나 추악한지 드러납니다. 특히 멕시코 여성들이 미인대회에 집착하는 데는 암울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멕시코에서 여성이 가난을 벗어나는 방법은 미인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난 게레로 주 대표 돌로레스는 12살 때 이미 샌들보다 하이힐이 편해질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유카탄 주 대표인 이사벨은 똑똑하고 승부욕 넘치는 여성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MBA 학위를 가진 남자만 남편감으로 고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미인대회 출전이 늘 여성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치와와 주 대표 요셀린은 미스 멕시코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살던 북쪽 지역에는 여자들한테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리고 마을의 거물이 경마라도 하듯 저에게 돈을 걸면 전 달릴 수밖에 없어요.”

미인대회를 둘러싼 음모와 비밀은 권력자들이 개입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부와 명예를 가진 이 중년의 남성들은 자신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참가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들의 힘을 키우는 데 이들을 이용하려 합니다. 미스 멕시코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점찍은 참가자 만이 될 수 있습니다. 미인대회는 부패한 정치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릴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참가자들은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바꿔보려 애를 쓰고, 서로 힘을 모읍니다. 등장인물들이 마냥 수동적으로만 그려졌다면 드라마의 매력은 반감했을 것입니다.
 

<세뇨리따 89>의 한 장면. 왓챠 제공

지난해 초 멕시코 현지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즌 2 제작도 이미 확정됐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중남미 지역의 드라마인 ‘텔레노벨라’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콘텐츠입니다. 그 중에서도 멕시코 드라마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과 음모, 배신은 텔레노벨라의 단골 소재입니다. 총과 마약, 수위 높은 폭력도 자주 등장합니다. 한국의 막장 드라마가 ‘매운 맛’이라면 <세뇨리따 89>는 ‘할라페뇨 맛’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