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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식량위기]
<상> '푸드플레이션' 몰고 오는 슈퍼 엘니뇨
세계 식량창고 남아시아 폭염강타
쌀·밀·사탕수수 작황 타격 불가피
식량가격지수 13개월만에 오름세
스페인 올리브유도 26년만에 최고
유엔식량기구 "극단적 가뭄 대비"
글로벌 '식량안보 위기대응' 돌입


남아시아 곳곳이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40도 안팎의 폭염에 시달리면서 지구촌 식량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조만간 초대형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돼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안한 글로벌 식량 공급망에 또 하나의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아시아의 수은주는 이미 한여름이 무색할 정도로 치솟으며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13일 싱가포르의 낮 최고기온은 37도까지 올라갔다. 5월 기준 사상 최고다. 다른 국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베트남·라오스는 이달 초 기온이 각각 44.2도, 43.5도를 찍어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미얀마도 지난달 말 중남부 기온이 43도에 달했다. 필리핀은 5일 8개 지역에서 더위 수준이 체감온도 42~51도를 의미하는 ‘위험’ 단계에 다다랐고 인도에서는 지난달 집권 인도국민당 주최 행사에서 12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남아시아는 통상 4~5월이 혹서기로 꼽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올해 폭염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기상학계는 이번 폭염이 올 하반기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엘니뇨와 관련이 있다고 진단한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해수면의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높은 상황이 5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으로 남아시아 일부 지역과 호주·인도네시아 등에 가뭄을 유발한다. 통상 2~7년마다 발생하는데 최근 세계기상기구(WMO),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 등이 올 5~7월 엘니뇨가 발생해 북반구에서는 겨울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NOAA에 따르면 3월 중순 이후 전 세계 해수면의 온도는 직전 엘니뇨가 있었던 2016년보다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겨울 남아시아 지역 강수량이 적었던 것까지 겹치면서 이상기후가 심해졌다는 설명이다. 티에용 고 싱가포르사회과학대 기상기후 교수는 블룸버그통신에 “건조한 토양이 습한 토양보다 더 빨리 가열되는 만큼 봄이 오면서 이상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들 지역이 세계 식량 공급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태국은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와 쌀·밀의 생산 대국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팜유 원료인 야자(palm)의 세계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5%에 달한다. 전 세계가 이미 지난해 기록적인 ‘식량 인플레이션’을 겪은 상황에서 남아시아 국가들의 농작물 작황이 타격을 받을 경우 식량 가격이 또 뛰어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비료 업체인 모자이크의 조크 오로크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엘니뇨로 주요 지역의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농업 시장에 실질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인도 재무부는 엘니뇨가 인도의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16년 엘니뇨 당시 설탕 생산량은 700만 톤 감소했다.

이미 세계 식량 가격도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3월 159.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꾸준히 하락세였다. 하지만 지난달 127.2로 전월 대비 0.6% 상승해 13개월 만에 오름세로 전환했다. 지난달 설탕가격지수(149.4)가 인도·중국 생산량 전망 하향과 브라질 수확 지연 등으로 11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쌀가격지수도 124.2로 3월과 비교해 2.5% 올랐으며 전년 대비로는 17.8%나 높았다. 최근 피치솔루션은 보고서에서 중국·파키스탄의 쌀 생산량이 지난해 홍수로 급감했다며 올해 쌀 부족량이 870만 톤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2003~2004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이뿐만이 아니다. 3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올리브유 가격은 톤당 5989.7달러로 1997년 1월 이후 26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세계 최대 올리브유 생산국인 스페인의 생산량이 가뭄의 영향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예년의 절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북부 지역이 이례적인 기온 변화를 겪으며 지난달 말 중국 정저우상품거래소의 사과 선물 가격이 2주 동안 8% 급등했다.

국제기구와 각국은 엘니뇨, 나아가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안보 대응에 돌입했다. 태국 매체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태국 당국은 최근 농부들에게 올해 쌀을 한 차례만 재배할 것을 요청했다. 쌀을 연 2~3회 재배하려면 많은 물이 필요한데 강우량 부족이 전망된다는 이유에서다. FAO는 각국에 엘니뇨로 인한 극단적인 강우·가뭄·더위 등에 대비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취약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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