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3세 미만 어린 자녀를 둔 근로자들은 재택근무가 가능해지고, 취학 전 자녀를 둔 근로자는 야근이 면제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저출산 대책을 마련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육아 시간을 보장해 출산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2021년 7월 이본 도쿄 시내에서 한 여성이 아이 둘을 태운 자전거를 몰고 있다. /AFPBBNews=뉴스1
니혼게이자이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이차원(異次元·차원이 다름)'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육아와 일의 양립을 뒷받침하는 정책 정비를 진행한다고 전했다. 후생노동성은 3세 미만 자녀를 둔 직원은 재택근무가 가능하도록 기업에 '제도 도입 노력' 의무를 부과하고, 현재는 3세 미만 자녀를 둔 근로자에 제공하던 야근 면제권을 취학 전 자녀를 둔 근로자로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중으로 육아·간병휴직법 및 관련 시행령 개정을 목표로 한다.
일본 정부는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면 출산 후 복직이 쉽도록 다양하고 유연한 근무방식을 선택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보육시설 정비나 육아휴직 보장 등 기존의 일·육아 양립 지원에 추가되는 보강책인 셈이다.
특히 출산 및 육아 수당 같은 대책과 달리 재원을 요구하지 않고 사회 전체가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아이를 키우는 근로자는 재택근무 시 출퇴근 시간이 사라져 육아 시간을 추가 확보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둘째, 셋째를 낳을 마음이 생기기 어렵다. 야마구치 신타로 도쿄대 교수는 "재택근무 등으로 남녀가 모두 유연하게 일하고 가사와 육아를 평등하게 부담하는 게 저출산 대책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재택근무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일본에서 빠르게 확산했다. 국토교통성 자료에 따르면 재택근무 제도가 있는 직장인 비율은 2019년 19.6%에서 2022년엔 38.6%로 두 배 늘었다. 재택근무 제도가 없는 직장인 가운데 도입을 원한다는 응답은 67%에 달했다. 때문에 기업이 제도를 마련하면 재택근무가 더 빠르게 확산할 공산이 크다.
다만 대면 근무가 불가피한 서비스업이나 의료, 간병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재택근무 적용을 받기가 쉽지 않다. 직원 수가 적은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재택근무 도입 비율도 낮았다. 후생노동성은 재택근무가 어려운 경우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유연근무제 활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재택근무나 육아휴직은 최종적으론 개인의 선택이지만 제도 도입이 늦어지는 기업은 인재 유치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짚었다. 다이와종합연구소의 고레에다 슌고 수석 연구원은 "일을 하면서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관련 정책의 확대와 이를 활용하도록 하는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5일 일본 도쿄 외곽으로 아이들이 소풍을 나온 모습. /AFPBBNews=뉴스1
저출산 문제를 우려하는 일본은 올해 들어 이 문제 대응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3월 말 일본 정부는 "앞으로 6~7년이 저출산 추세를 뒤집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경제적 지원 강화 △보육 서비스 확충 △일하는 방법 개혁을 3대 축으로 하는 저출산대책 초안을 공개했다. 아동수당 확대, 보육시설의 시간 단위 사용,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 높이기 등이 제시됐다. 지난달에는 저출산 문제를 포함해 각 부처의 아동 정책을 주도할 어린이가정청도 출범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자녀 출산 후 8주 이내에 아빠가 4주 동안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산후 아빠 육아휴직' 제도가 시작됐는데 올해 3월까지 약 1만4000명이 이 제도를 이용했다.
한편 이번 육아 지원 재택근무 정책에 대한 현지 평가는 일단 뜨겁지 않다. 무라카미 메구 일본종합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자녀 나이 기준이 3세 미만인 근거를 알고 싶다"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일 때 육아 시간 확보는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원하면 재택근무가 가능하도록 근로 환경의 종합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일본 여행사 W어메이징을 운영하는 카토오 후미코 최고경영자(CEO)은 "자녀 연령에 제한을 가한다는 것은 자녀가 3살까지는 힘드니 특별히 우대해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며 되레 재택근무를 이용하는 직원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누리꾼들의 반응도 미지근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번 정책에 대해 "결국 혜택을 받는 건 대기업에 다니는 화이트칼라 근로자일 것"이라며 "제도 자체에 불평등이 담겨있다"고 꼬집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한 누리꾼은 "육아 근로자에 재택근무를 적용하려면 최소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해야 한다"면서 "차라리 재택근무보다 단축근무 적용 연령을 확대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