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건곤'과 '태호', 사파리월드로 옮겨져
시민들 "영역 다툼 있는 곳에서 부적응" 우려
동물단체 "공간 등 고려 않고 무분별 번식" 비판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동물원 내 엄마 호랑이 건곤과 새끼 다섯 마리 아름, 다운, 우리, 나라, 강산의 모습. 강산은 지난해 1월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숨졌다. 연합뉴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에버랜드가 공간 부족을 이유로 스타 '호랑이 부부'의 사육장을 이동시키자 시민들과 동물단체들이 우려하고 있다. 동물단체들은 공간이나 시설∙인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호랑이를 번식시키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에버랜드는 이달 1일 호랑이 '건곤'(7세∙암컷)과 '태호'(7세∙수컷)를 타이거밸리에서 사파리월드로 옮겼다. 건곤과 태호는 2021년 낳은 새끼 호랑이 네 마리 '아름', '다운', '우리', '나라'와 타이거밸리에서 지내왔는데 새끼들이 성장하면서 이들이 생활하는 내실 공간이 부족해졌다는 게 에버랜드 측의 설명이다.
건곤과 태호의 이동 소식이 알려지자 에버랜드 동물 관련 온라인 카페에서는 이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민들은 운영 방식이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호랑이들의 적응 여부를 우려하는 한편 기존 방사장 확대 등 대안은 없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타이거밸리와 사파리월드는 똑같은 에버랜드 내 사육장이지만 운영방식은 차이가 있다. 타이거밸리는 일반 동물원과 같은 전시형태의 사육공간으로 교차방사 등을 통해 개체들을 관리하고 있다. 반면 사파리월드는 관람객들이 트램을 타고 이동하면서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드는 호랑이, 사자 등을 가까이에서 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동물단체들은 사파리월드에 많은 개체가 방사되고 있어 영역 다툼으로 인한 스트레스, 부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에버랜드 내 사파리월드는 관람객들이 트램을 타고 맹수를 가까이 본다는 콘셉트의 공간이다. 이곳은 개체 간 영역 다툼이 불가피해 동물에게 스트레스와 부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에버랜드 홈페이지 캡처
시민들은 2018년 중국 상하이 동물원에서 온 건곤과 태호가 1년간 사파리월드에서 생활하다 2019년 타이거밸리로 이동한 후 4년 5개월여 만에 다시 돌아가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두 호랑이의 나이가 적지 않고, 특히 건곤의 경우 새끼 기르는 데 지친 상황이라 영역 다툼 등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민들과 동물단체들은 또 건곤과 태호의 이동이 예견됐음에도 지금까지 공간 확보 등을 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에버랜드는 2020년 2월 건곤과 태호가 낳은 '태범'과 '무궁'을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경북 봉화군 춘양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동시킨 바 있다.
건곤과 태호가 낳은 호랑이 가운데 막내인 강산이 지난해 1월 9일 음식물이 기도를 막는 사고로 숨졌다. 에버랜드 제공
논란이 커지자 에버랜드 측은 "건곤과 태호를 기존 사파리월드 호랑이들과 합사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사파리월드의 규모는 2만6,000㎡에 달한다"며 "건곤과 태호를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사파리월드 내 호랑이 개체 수는 민감한 정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동물단체들은 이번 논란을 통해 동물원의 번식정책과 사육방식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곤과 태호는 2020년 2월에 이어 1년 4개월 만에 또다시 출산했다. 당시 에버랜드 측은 새끼 키우는 데 지친 건곤이를 쉬게 하는 도중 태호와 잠깐 합사하는데 임신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버랜드에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동한 태범(오른쪽)과 무궁의 모습. 백두대간수목원 제공
야생동물 수의사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동물원 내 번식은 멸종위기종 보전과는 상관이 없는데, 보전이라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번식을 시키고 있다"며 "번식을 시킬 때는 방사장 면적뿐 아니라 내실 규모, 사육사 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호랑이는 암수 모두 단독생활을 하는데 사파리월드처럼 한 공간에 몰아넣는 것은 동물 습성에 반하는 사육형태"라고 비판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도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으로 동물원 서식환경 기준이 강화될 것"이라며 "개체의 복지를 고려하지 않은 증식은 앞으로 강화된 기준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