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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실효성 논란

홍콩 가사노동자 주당 71시간 일해
코로나 땐 24시간 대기조처럼 근무
해고 이후 2주내 일 못 구하면 귀국
고용주 학대·착취 감내하면서 버텨
싱가포르는 최저임금 규정도 없어

국내서도 이르면 2023년 가을부터 도입
인권 침해 논란… 대책 효과도 의문

전문가 제시 해법 들어보니

美, 저임금 노동력 공급에도 출산율 ‘뚝’
고용안정, 일·가정 양립 때 출산 늘어나


“카르티카 푸스피타사리(41·여)에게 86만8000홍콩달러(약 1억4000만원)를 배상하라.”
 
지난 2월 홍콩지방법원의 캐서린 청 캄린 판사는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노동자 카르티카를 3년간 학대한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된 고용주 부부에게 이같은 배상명령을 내렸다. 홍콩 내 가사노동자 학대 사건과 관련한 배상금 중 역대 최고액이었다.

 

2003년 당시 홍콩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월 최저임금을 400홍콩달러(약 6만5000원)로 삭감한 정부에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기록적인 배상액도 카르티카의 몸에 남겨진 45개의 흉터를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다. 고용주 부부는 카르티카의 살갗을 달궈진 다리미로 지졌으며, 그 고문의 흔적이 남은 몸을 자전거 체인으로 후려쳤다. 그녀를 의자에 묶어둔 채 태국으로 휴가를 간 적도 있다. 카르티카는 부부가 돌아올 때까지 빵 한 조각 먹지 못하고 굶주려야만 했다.
 
이르면 올가을부터 국내에서도 카르티카와 같은 ‘동남아 이모님’들을 만나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저출생 대책으로 “홍콩·싱가포르와 같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논의가 급전개됐고,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협조해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부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제도 도입을 추진하면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의 대표적인 ‘그림자’인 인권침해 문제는 논의 대상에서 빗겨났다. 제도를 도입한 지 반세기가 지난 홍콩과 싱가포르마저 여전히 몸살을 앓을 정도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학대·차별은 근절이 어려운 고질적 문제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난 18일(현지시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다국적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우리에게 임금을 달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여전히 저임금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베이루트=EPA연합뉴스

 

◆‘현대판 노예’ 외국인 가사노동자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현대 아시아의 노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19년 가사노동자 착취 문제를 보도하며 이렇게 정의했다.
 
실제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의 삶은 노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근로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2016년 홍콩 비영리 인권단체 저스티스센터에 따르면 홍콩 내 가사노동자들은 주당 평균 71.4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싱가포르의 ‘인도주의적 이주경제기구(HOME)’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폐쇄회로(CC)TV로 감시당하며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의 사례가 소개됐다. 보고서는 “싱가포르에서 가사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해 CCTV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 됐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동안 근로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고용주나 그 자녀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사노동자들은 24시간 대기조처럼 일해야 했고, 2021년 기준 약 4만명의 노동자가 단 하루도 쉬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전했다. 홍콩의 가사노동자들은 법적으로 일주일에 하루 휴일을 보장받는다.
 
심지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해고돼 고용주의 집에서 쫓겨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갈 곳 잃은 가사노동자들은 공원이나 다리 밑에서 잠을 자며 노숙생활을 했다고 알자지라는 덧붙였다.
 
홍콩의 이른바 ‘2주 출국’ 규정 탓에 끌려가듯 귀국해야 했던 이들도 있었다. 가사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으면 2주 내로 홍콩을 떠나도록 한 이 규정은 추방이 두려운 노동자가 고용주의 학대와 착취를 감내하도록 만든다. 유엔은 지난 3월 가사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홍콩 정부에 2주 출국 규정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긴 근로시간과 비례하지 않는 저임금도 노동착취라는 비판을 낳는다. 홍콩 가사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월 4730홍콩달러(약 77만원)인데, 이는 지난해 홍콩의 월 평균임금인 1만9100 홍콩달러(약 312만원)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싱가포르의 경우 법정 최저임금 규정이 없다. 고용주와 가사노동자 중개 플랫폼인 ‘헬퍼초이스’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가사노동자 평균 급여는 약 600싱가포르달러(약 57만원)로 추산된다. 싱가포르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싱가포르인 월평균 급여(약 496만원)의 8분의 1 수준이다.

 

2007년 홍콩상하이은행(HSBC) 본사 건물 밑 그늘에서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들이 일주일에 한 번뿐인 휴일을 맞아 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도 보편화·저출생 대책 효과도 의문
 
현재 서울시가 추진 중인 시범사업 형태는 입주형이 아닌 근로시간이 정해진 출퇴근형으로 최저임금제를 적용하고, 주거비를 일부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형태의 제도가 도입된다면 홍콩·싱가포르 제도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소지는 다소 줄일 수 있다. 대신 한국인 고용주 부담을 키워 제도 취지가 무색해진다.
 
최저임금을 적용한 서울시 시범사업 가사노동자의 월급은 200만원 안팎으로 책정될 전망이다. 그러나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국내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333만원, 중소기업 근로자의 경우 266만원에 그쳤다. 고소득층을 제외한 일반 가정에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이용이 ‘그림의 떡’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지난 3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월 100만원대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는 또다시 홍콩·싱가포르 사례와 같은 저임금 노동착취를 제도화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는 정당성과 실효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제가사노동자의날 기자회견에서 가사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저출생 문제 해소에 이바지하는 효과가 나올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내국인 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고 주양육자의 경력 단절을 막는 등 저출생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막상 1970년대부터 가사노동자 제도가 정착된 홍콩과 싱가포르의 출산율도 한국(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 0.78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홍콩은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 0.7을 기록해 한국과 ‘세계 꼴찌’를 다투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1.05명을 기록해 마찬가지로 하위권에 자리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없애는 나라도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성평등 선진국 노르웨이 정부는 최근 “내년부터 ‘오페어’ 취업비자 발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오페어는 서양판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다. 주로 필리핀 출신이 많은 노르웨이의 외국인 가사노동자들 역시 일부 착취와 학대를 피할 수 없었고, 노르웨이 정부는 제도의 근본적인 비윤리성을 인식하고 폐지를 결정했다.
 
◆“돌봄 공공성 강화해야 저출생 위기 극복 가능”
 
“돌봄의 공공성 강화만이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이주 가사노동자의 현실과 노동권 보장방안’ 토론회 자료집에서 김양숙 미국 플로리다 애틀랜틱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생과 맞벌이 가정의 육아 문제 해법이 ‘임시방편에 불과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아닌, 합리적 가격에 질 좋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적 돌봄 시스템의 강화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발제문에서 “한국사회는 이미 돌봄노동을 동포 여성들에게 외주화해 사회 재생산 위기를 해결해 보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은) 중국동포보다 더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을 뿐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김 교수는 미국의 출산율 반등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저임금 돌봄 노동력이 공급되는 국가임에도 합계출산율이 2020년(1.6명)까지 추락하고 있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대유행)으로 일자리를 보존하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던 2021년 미국 고학력 여성들의 출산율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여성은 돌봄노동을 전가할 수 있을 때 출산과 맞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이 안정되고 일·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다고 느낄 때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가정 내에서의 공정한 가사 분담 △일·가정 양립을 지향하는 직장 문화 △돌봄의 공공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저출생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다른 전문가들 역시 제도의 실효성과 적절성에 의문을 표했다. 최혜영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연구위원은 “홍콩과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에 대해 국제사회가 인권 침해적 제도라는 이유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공적 돌봄 체계가 마련돼 있는 우리나라가 홍콩 등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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