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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도시 티후아나의 시장은 왜 군부대로 거처를 옮겼나
 

▲  지난 12일 새벽,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일곱 구의 시신이 픽업트럭 짐칸에 뒤엉킨 채 발견되었다.
ⓒ 유튜브 갈무리


픽업트럭 짐칸 아래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침 주변에 있던 경찰이 차를 세웠고 짐칸을 들췄다. 그 안에 일곱 구의 시신이 엉켜 있었다. 전날과 전전날에도 도합 일곱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니 지난 10일(토요일) 밤부터 12일(월요일) 새벽까지 총 열네 건의 피살이 기록되었다.

해마다 2000명 가까운 피살 사망자가 누적되는 티후아나에서 6월 둘째 주말을 지나며 다시 숫자 14가 더해졌다. 지난 4월, 올해 첫 넉 달 동안 피살자가 786명으로 집계되었다. 두 달이 더 흐른 지금 피살자는 이미 1000명을 넘어섰을 것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확인된 숫자일 뿐이다. 어딘가 묻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는 죽음들까지 헤아린다면, 숫자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대로라면 인구 200만 명이 살고 있는 티후아나의 피살자 숫자는 올해도 2000명을 훌쩍 넘길 것이다. 인구 10만 명당 105명의 피살률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통칭이 무색하지 않다.
 

▲  2018년 11월 14일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중앙 아메리카 이주자 카라반 참여자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 연합뉴스/AP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어 하는 1위 도시 샌디에이고 바로 아래 붙은 쌍둥이 도시 티후아나 이야기다. 천당과 지옥으로 가늠되는 두 도시의 한쪽, 불행하게도 이곳은 철조망 너머 천당이 훤히 보이는 지옥, 천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통과해야 하는 지옥 쪽 최종 관문이다.

숱한 사람들이 천당에 닿겠다는 일념으로 세계 곳곳에서 이곳까지 밀려온다. 천당에 들든 지옥에 남든, 이들 대부분이 한 치 앞에 둔 날들을 살아가기 위해 저당 잡힐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목숨뿐. 그들의 목숨값을 향해 숱한 욕망이 불나방처럼 달라붙는다.

판이 커질수록 목숨을 둘러싼 폭력의 수위는 거칠어진다. 폭력의 이면에 이주, 인신매매, 매춘, 불법무기 그리고 마약이 있다. 이 모든 면면이 마약 카르텔이라는 범주 안에서 첨예하게 얽힌다. 물론 그 안에 야합과 배신과 복수가 없을 수 없다. 그러니 죽음이 처처에 만연할 수밖에.

치안 부재와 부패 보여주는 척도
 

▲  미국 국경과 인접한 멕시코 티후아나시의 몬세라트 카바예로 시장
ⓒ 연합뉴스


시신 일곱 구쯤이야, 이곳의 일상으로 치부되어 어쩌면 단신 뉴스로 묻힐 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몬세라트 카바예로 티후아나 시장이 기자회견을 자처하고 나섰다. 자신의 거처를 티후아나에 주둔한 28보병연대 기지 안으로 옮기겠다는 내용이었다. 시신 일곱 구 앞에서 밍밍했던 세간의 관심이 활활 타올랐다.

정치인으로서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아둔한 것인지, 몬세라트 시장의 인터뷰는 들떠 있었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들어갈 것이며, 그곳(군부대)에서는 길에서 애완견과 함께 안전하게 놀 수 있을 것이고 군인들이나 그들 자녀들과 축구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미국에 있으니 문제 될 것 없지만, 아들은 치안 부재의 상황을 피해 신변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언론은 인터뷰 내용을 여과 없이 흘려보냈고 티후아나 시민들의 부글부글 끓는 속이 다시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몬세라트 시장을 향한 사회적 비난과 정치적 공격이 동시에 쏟아졌다. 일부 방송은 군부대로 들어가 살겠다는 몬세라트 시장에게 '결국 티후아나는 마약 카르텔의 손에 넘어가는 것인가'라고 직접 물었다.

다음 날 아침 대통령궁 정례 기자회견장에서도 기자들은 대통령에게 몬세라트 시장의 행보에 대해 물었다. 여당 소속 티후아나 시장의 기자회견은 대통령을 향한 공격의 빌미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으레 짐작한 듯 질문을 받았고 차분히 답을 줬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군부대로 거처를 옮겨 상황을 주시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내용이었다.
 

▲  지난 5월 11일 멕시코 티후아나의 산 이시드로로 입국하는 차량 사이를 멕시코 방위군이 순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장 살해'는 사실 멕시코에서 흔한 일이다. 지난 2000년 이후 총 94명의 시장이 피살되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현 대통령의 지난 4년 반 임기 동안에만 18명의 시장이 피살되었다. 외부 시각으로 본다면 극단적인 치안 부재다. 안에서 본다면 마약 카르텔과 관계를 떼 놓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멕시코에는 더 이상 마약 카르텔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정치와 마약 카르텔의 간극은 더욱 좁혀진다.

어느 정치인이든 마약 카르텔보다 월등히 강하지 않거나 그들과 야합하지 않는 한 목숨은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간 목숨을 잃은 94명의 시장 외에도 100명의 지역 의원, 32명의 지방정부 소속 변호사가 피살되었다. 200명 넘는 숫자다. 정치인 살해, 특히 시장 살해는 멕시코의 치안 부재와 부패를 보여주는 척도다. 더러 '실패한 국가'라는 오명의 단면이기도 하다.

지금 또 한 명의 시장이 마약 카르텔로부터 공개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몬세라트 시장은 군부대 안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 이유로 2년여 재임 기간 중 1700여 점의 불법 무기를 압수했다는 사실과 60명 넘는 마약 카르텔 조직원을 검거했다는 사실을 반복해 언급했다.

몬세라트 시장이 마약 카르텔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게 된 이유가 곧 자신이 그간 해 온 일들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시장의 개입이 어느 선까지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몬세라트 시장이 마약 카르텔과 대립각을 세웠던 것은 맞다. 물론, 무기 1700여 점과 검거된 조직원 60여 명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옹호하는 대통령, 반발하는 시민들
 

▲  3160km에 달하는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은 서쪽 끝에서 태평양과 만난다. 이곳에 티후아나가 있다. 두 나라를 가르는 철책은 티후아나의 끝 해안으로부터 100여 미터 더 국경이 이어진다.
ⓒ 림수진


몬세라트 시장과 마약 카르텔의 대립은 최근 '자릿세'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격돌했다. 그간 마약 카르텔 말단 조직원들이 상인들에게서 자릿세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상황에서 몬세라트 시장이 '돈은 당신들에게 빚 진 자들에게나 찾아가 받으라'는 공개 메시지를 냈다. 곧 카르텔로부터 답이 왔다. 역시나 공개 메시지였다. '당신에게 그 빚을 받도록 하겠다'라는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걸렸다. 누가 내걸었는지 특정할 수 없지만, 명백한 '나르코 메시지'였다.

몬세라트 시장은 즉각 연방정부에 경호 강화를 요청했고 군 병력이 증강되었다. 몬세라트 시장의 모든 행보에 대형 경호 차량 열 대가 따라붙었다. 그 와중에 지난 5월 17일, 몬세라트 시장의 미용실 방문을 위해 동행한 경호원 한 명이 총격을 받았다. 사실 이 정도의 위협은 여느 멕시코 정치인들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린 탓에 세간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넘어갔지만 군부대 안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몬세라트 시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재소환되었다.

시신 일곱 구가 픽업트럭 짐칸에 구겨진 채 발견된 지난 6월 12일, 신변 안전을 위해 군부대로 거처를 옮기겠다는 몬세라트 발표 뒤 시민들의 실망과 불만이 불거졌다. 언론은 몬세라트 시장을 인터뷰하면서 정치적∙사회적 불만을 재생산했다. 시장 당선 전 지역 의원을 지낸 바 있어 정치 신인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언론의 공세를 감당하기엔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몬세라트 시장의 답은 어떤 질문에도 한가지로 경직되었다. 그간 자신이 해온 일의 결과만 언급할 뿐, 시민들의 실망과 불만에 대한 공식적 입장은 단 한 번도 밝히지 못했다. 계속되는 언론들의 인터뷰에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몬세라트 시장의 말은 힘을 잃었다.

몬세라트 시장의 결정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략적'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옹호했다. 국방부와 국토방위군의 제안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몬세라트 시장 역시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재임 기간 티후아나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에서 5위로 하향했다고 언급했지만 시민들의 실망과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신의 안전이 곧 시민들의 안전이라며 인터뷰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낳은 채 시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구하지 못하였다.

어디를 가든 열 대 이상의 경호 차량을 동원하고 수십 명의 근접 경호를 받는 시장과 그 어떤 제도적 보호 장치도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시민들 사이에 놓인 간극을 좁히는 일은 차라리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시장의 어린 아들이 신변 안전을 위해 군부대로 들어간다는 내용과 관련해 시민들은 정작 자신들의 자녀가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여전히 따져 묻는 중이다.

마약 카르텔에 정부가 밀리는 현실
 

▲  상징적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철책이다. 서쪽 끝 국경이 끝나는 곳 철책 하나하나에 이름들이 쓰여 있다. 천당이라 불리는 미국에 닿기 위해 목숨을 저당 잡히고 끝내 그 저당 잡힌 목숨을 다시 찾지 못한 채 죽은 이들의 이름이 각 철책마다 새겨져 있다.
ⓒ 림수진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주춤하던 몬세라트 시장은 지난 23일 거처를 군부대 안으로 옮겼다. 몬세라트 시장은 일반 사병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라 협소하고 부대 내 보안상의 이유로 전화와 인터넷 사용에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반복해 강조했다. 몬세라트 시장을 향한 시민들의 불편한 시선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임이 역력하다.

70제곱미터 정도의 협소한 공간에서 거주와 집무를 함께 하기로 했다. 언제쯤 몬세라트 시장이 다시 군부대 밖으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사건을 두고 멕시코 언론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보도하지만, 사실 그간 주지사나 시장들이 해당 지역에 주둔하는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 거주하며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던 일들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간의 사례들이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행해졌을 뿐이다. 몬세라트 시장은 그들만큼 노련하지 못했다.

인구 규모로 멕시코 수도에 이어 제2 도시에 해당하는 티후아나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실화냐'라고, 혹은 '그게 나라냐'라고. 지방 정부 수장이 마약 카르텔의 협박에 신변 위협을 느끼고 해당지역 군부대로 거주와 집무 공간을 옮기는 것은 일부 언론의 표현대로 마약 카르텔에 정부가 밀리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의 이면에는 또 다른 복잡한 계산이 존재한다. 한꺼번에 끄집어낼 순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적어도 작금의 현실이 이 도시 티후아나 한 곳에서 배태되고 파생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히 천당이라 불리는 미국 어디쯤으로 흘러가는 마약, 그곳으로부터 티후아나로 흘러 들어오는 무기, 천당에서 잠시 지옥으로 내려오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매춘을 비롯한 온갖 향응, 미국에 닿고자 가진 목숨을 기꺼이 거는 이주자들, 이 나라의 오래된 고질적 부패와 그 부패를 가능케 했던 또 다른 외부의 어떤 힘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 내는 서사의 한 단면이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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