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수요의 60%, 150조원 규모의 가전시장을 가진 중국은 글로벌 IT시장의 수요 공룡으로 꼽힙니다. 중국 267분의 1 크기인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호령하는 TSMC의 본거지입니다. 미국·유럽 등 쟁쟁한 반도체 기업과 어깨를 견주는 것은 물론 워런 버핏, 팀 쿡 등 굵직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았죠. 전 세계의 반도체와 가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권을 이끄는 중국·대만의 양안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중국과 대만 현지의 생생한 전자·재계 이야기, 오진영 기자가 여러분의 손 안으로 전해 드립니다.
중국 내 실업(失?)을 의미하는 만평. / 사진 = 바이두
"아버지 연봉보다 많은 돈을 대학에 썼는데 실업자라니…차라리 한국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편이 낫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국인 리모씨(28)는 한국에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 취업 비자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목표는 한국 취직이다. 중국 기업들의 채용과 대우가 악화되면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도 귀국을 미뤘다. 현지 친구들도 대부분 해외 유학을 알아보는 중이다. 리씨는 "고국에 가고 싶지만 려우민(실업자)이 될 바에는 알바생이 낫다"라며 "친구들 중에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온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연초부터 실업률 완화에 자신감을 보이던 중국이 휘청이고 있다. 1년에 1000만명이 넘는 신규 대졸자가 쏟아지지만 주요 기업들이 일제히 문을 닫고, 제조 공장 가동률이 하락하면서 채용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귀농을 장려할 정도로 도시의 일자리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이른바 '관치 산업'의 부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인구보다 많은 중국 대졸자…"실업자 안 되려면 농촌 가라니"
/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30일 중국 국무원 정보판공실과 2023년 대학생 취업가능조사보고서 등에 따르면 올해 중국 내 신규 대졸자 수는 1158만명이다. 지난해보다 82만명이 늘었다. 연간 출생 아동 숫자인 956만명(2022년 기준)보다도 많다. 실업률이 개선되지 않는 와중 1000만명이 넘는 대졸자는 중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올해 5월 기준 16~24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20.8%로 역대 최고 수준이며, 청년 실업자는 60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 재계는 가장 큰 문제로 핵심 업종의 부진을 꼽는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던 산업이 미중 갈등과 정보기술(IT) 제품 수요 부진으로 실적이 악화되면서 고용 시장이 얼어붙었다. 올 1분기 중국 내 22개 주요 반도체 기업들 중 절반 이상이 적자를 낼 정도다. 각사 재무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주요 칩 제조업체 173개사 중 30개(17.3%) 기업이 전년 동기 대비 인원을 감축했다.
구직자는 느는데 고용 문이 좁아지다 보니 중국 정부는 실업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열심이다. 대표적 정책이 귀농 장려다. 시진핑 중국 총서기가 직접 나서 농촌 지도를 다니며 "농민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을 이해할 수 없다"고 언급할 정도다. 시 서기가 2003년 절강성 서기로 재직할 당시 주도한 농촌 활성화 프로젝트인 '천완공청'도 재부각하고 나섰다. 모두 농촌에 대한 청년층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한 시도다.
'중국의 입' 관영 인민일보가 "농민이 되면 월 1만8000위안(한화 약 33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거부감은 높다. 배달 아르바이트나 '따이지아'(대리운전)를 하더라도 도시에 남겠다는 청년층이 훨씬 더 많다. 베이징의 한 배달 앱 관계자는 "신규 배달 기사의 30~40%가 대학생"이라며 "석·박사 '엘리트'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내수 회복으로 경제 성장률 회복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려던 중국 정부의 구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에서 5.4%로, JP모건도 5.9%에서 5.5%로 낮춰 잡았다. 높은 실업률과 약해진 소비력 등 산업활동 지표가 악화되면서 회복 모멘텀(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실업 타격 큰 '미래산업' 中 반도체…공공연한 위기론에 '초긴장'
중국 취직준비생들의 모습. / 사진 = 바이두
특히 반도체 등 인력 집약적 산업의 타격이 크다. 중신궈지(SMIC)와 장디엔커지, 화티엔커지(TSHT) 등 중국 주요 반도체 업체는 막대한 인력을 투입해 양적 성장을 꾀해 왔다. 하지만 매출 감소로 인력을 대거 감축하면서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양쯔메모리(YMTC)는 올초 직원의 10%를 감원했는데,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가까이 급감한 13억 4100만 위안이었다.
중국 반도체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지만 당분간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학계에서 공공연하게 위기론이 언급될 정도다. 간용 중국 공학원 원사는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3세대 반도체 혁신 포럼'에서 "중국 반도체와 선진국의 기술 격차는 매우 크다"라며 "지금 대규모 산업 육성에 나서지 않으면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와 산업계에는 달갑지 않은 대목이다.
실업률 개선을 위해 산업구조를 재편하지 않고 청년층의 '눈낮춤'을 강조하는 문화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고용정보업체 관계자는 "중국 내 청년층의 고용정보업체 가입자 수만 60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좋은 직장'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사회 분위기를 무시한 채 귀농, 군 입대 등을 강조하는 문화는 사회 갈등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