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예브게니 프리고진(가운데)이 이끄는 용병집단 바그너그룹이 바흐무트 전투에서 승리한 후 러시아 국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러시아 용병집단 바그너(Wagner)그룹의 수장인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이 1만여 병력을 이끌고 24시간 동안 1000여㎞를 쾌속 진군하여 모스크바 턱밑까지 진격한 사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는 우크라가 오랫동안 벼르던 춘계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에 발생하여 더욱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무장반란' 모의 사건은 불과 36시간 만에 종결되었지만, 작년 2월 이후 거의 500일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이하 우·러전쟁)의 향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쟁 와중에, 비록 미완으로 끝났지만 교전당사국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내전에 이를 수도 있는 '적전분열'이 벌어진 것은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초유의 사태다.
조셉 나이(Joseph S. Nye) 교수에 의하면 어떤 사건의 원인은 시간적 근접성을 기준으로 촉발(precipitating) 원인, 중간(intermediate) 원인, 근원적(deep) 원인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이를 이번 사건에 적용해 보면, 촉발원인은 전투에서의 전술적 승리를 둘러싼 '논공행상 다툼'이다. 프리고진은 2만여 바그너 용병들의 대량 희생으로 힘겹게 바흐무트 전투에서 이겼는데, 러시아 국방장관(쇼이구)과 총참모장(게라시모프)이 제대로 된 탄약·보급도 지원해 주지 않았으면서, 바그너가 아닌 러시아군이 승리의 주역이라고 주장한 것에 격분했고, 이것이 사건을 촉발시킨 뇌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중간 원인은 정규군-용병군, 일반부대-특수부대, 징집병-계약병 등 러시아 병역제도의 파편화 현상이다. 가장 중요한 근원적 원인은 우·러전쟁이 개전 명분도 없는 '도발되지 않은(unprovoked)' 침략전쟁이라는 점이다. 푸틴은 아직도 중세시대 유물인 '키이우공국'의 환상에 젖어 '우크라·러시아는 한 민족, 한 국가'라며 우크라의 주권성 자체를 부정한다. 이는 시진핑이 '중국몽' 실현의 연장선상에서 대만의 주권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푸틴은 러시아를 제국으로 만든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의 환생으로 자처한다. 우크라 침략전쟁은 '키이우공국', 나아가 푸틴의 '러시아몽' 실현의 1단계인 셈이다. 그래서 전쟁은 푸틴이 러시아 제국의 회복이라는 망상을 버리지 않는 한 오랫동안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상기 3가지 원인들 가운데 특히 반란사건의 촉발·중간 원인은 러시아군의 난맥상을 가리킨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되어 중세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용병제도는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국민군대'가 등장함에 따라 막을 내렸다. 그런데 21세기에 다시금 '바그너'라는 용병집단이 출현한 것은 우·러전쟁의 시대착오적 특성을 드러낸다. 러시아에서 프리고진과 바그너가 차지했던 위상을 이해하려면 GRU(정보총국), 러시아군 전체, FSB(연방보안국·KGB 후신), 푸틴 대통령 등 4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GRU는 바그너 창설을 주도했다. 이유는 당시 군 정보기관이 격동의 개혁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전임 국방장관 세르듀코프(2007~2012)가 군내에서 GRU의 위상을 줄이려 노력한 반면, 현직 국방장관 쇼이구는 '스페츠나츠(특수부대)' 출신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조직을 강화했다. 당시 러시아는 이들을 앞세워 크름반도와 우크라 동부 점령 및 시리아 분쟁에 깊숙이 개입했다.
'부인 가능한' 군대에 의존해온 러시아
둘째, 러시아는 스탈린 시대부터 비공식적이고 '부인 가능한(deniable)' 군대에 의존했다. 일례로 국적·계급·소속을 알 수 없는 '작은 녹색군인(little green man)'을 앞세워 2014년 크름반도를 총 한 방 쏘지 않고 점령하였을 당시, 이들이 러시아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발뺌할 수 있었던 '부인성(deniability)'은 침략전쟁의 책임과 비난을 모면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2015년 '폰탄카(Fontanka.ru)'라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뉴스매체가 처음으로 바그너의 존재를 알렸다. '폰탄카'는 바그너의 공동설립자가 프리고진과 우트킨(스페츠나츠 사령관 출신)이라고 전했다. 그 무렵 GRU 내부에 바그너 같은 민간군사기업(PMC)을 담당하는 감독부서가 신설되었다. 미국도 이라크에서 '블랙워터' 같은 PMC를 활용했지만, 러시아가 PMC를 활용한 역사는 스탈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소련은 스페인 내전에 오늘날의 바그너와 비슷한 '위장군대(military in disguise)'를 보내, 무솔리니·히틀러와 손잡은 프랑코 총통에 맞서 반(反)파시스트 전쟁을 벌였다.
셋째, 러시아군 내부(FSB 포함)에서 바그너에 대한 지원 범위는 복잡한 문제였다. 2015년 이후 몇 년 동안, 특히 우·러전쟁이 시작된 이후 바그너가 수행하는 군사작전의 성격이 엄청나게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은밀성·부인성을 갖춘 대리 용병으로 시작한 바그너는 점차 여러 국가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포병·공군을 보유한 거대 군사집단으로 발전했다. 나아가 러시아 대도시의 중심가에 모병 광고판 설치, 바그너의 업적을 미화하는 영화 제작,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초대형 건물 신축 등으로 활동반경을 넓혔다.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반역자 죽이기'는 바그너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9월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의 북동부 공세로 상당한 영토를 상실하면서 바그너-러시아군 간의 균형이 기울기 시작했다. 당초 러시아군 지도부는 프리고진을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올 1월 바흐무트에서 불과 10㎞ 떨어진 솔레다르를 바그너가 점령하면서부터 프리고진은 쇼이구·게라시모프를 한 묶음으로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솔레다르 전투에서 5만명의 바그너 용병 가운데 전·사상자가 무려 4만명에 달했다.
'사악한 궁정광대' 프리고진
끝으로 바그너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태도이다. '푸틴의 셰프'로 알려진 프리고진은 반란사건 전까지만 해도 푸틴의 최측근으로 불렸다. 왜 푸틴에게 프리고진이 그토록 중요했는지는 푸틴과 러시아 군부 간의 복잡한 관계에 단서가 있다. 집권 초기 푸틴의 지상과제는 러시아군 장악이었다. 집권 후 10년간 푸틴은 KGB 시절 심복이던 이바노프를 국방장관(2001~2007)에 앉혔다. 이바노프가 군개혁에 실패하자 2007년 시베리아 소수민족 출신의 쇼이구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작년 2월 '특별군사작전'의 참담한 실패로 쇼이구의 위상이 형편없이 추락했다. 역설적으로 러시아 지휘부의 무능은 프리고진이 '사악한 궁정광대(a wicked court jester)'처럼 활개 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궁정광대'는 표트르 대제의 오른팔이었던 알렉산드르 멘시코프였다. 귀족사회에서 거의 왕따였던 멘시코프는 잔인성·가혹함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오직 차르에 대한 맹목적·무조건적 충성만이 유일한 권력기반이었다. 그래서 프리고진은 '현대판 멘시코프'에 비유되기도 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푸틴의 러시아가 표트르 대제의 제국이 아니며, 푸틴이 아무리 노력해도 표트르의 발치에도 못 미치는 인물이라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외형상 이번 사건의 직접적 원인으로는 프리고진·쇼이구 간의 권력투쟁이 꼽힌다. 그러나 문제의 근저에서 러시아군 특유의 '인명경시 풍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러시아가 개전 초반부터 졸전을 거듭한 이유는 그릇된 가정(예컨대 단기간에 수도 키이우 점령, 젤렌스키 참수, 꼭두각시 정권 수립 등)에 기초한 전쟁기획, 달성 불가능한 목표, 보급 불충분, 열악한 물류체계, 방호수단 부족, 리더십 붕괴 등에 기인하지만, 핵심적 원인은 장병의 생명·복지에 대한 러시아군의 '무관심'이다. 우·러전쟁에서 러시아군은 전사자 수습에 무성의 했고 사상자 은폐도 시도했다. 또 근심하는 군인 가족들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무기체계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면서도 부상자 치료·재활 등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전투력 약화로 이어진 인명경시
장병들에 대한 '무관심 문화(culture of indifference)'는 외형상 현대화를 달성했더라도, 군대의 효율성과 전투력을 근본적으로 손상시키는 요인이다. 미국에서 '훌륭한 군인'은 훌륭한 급식·대우·급여를 제공받는 '행복한 군인'이다. 반면 러시아는 아프간전쟁 당시부터 징집병이 전투에 투입된 사실을 은폐해왔다. 또 사망·실종자에 대한 가족들의 생사 여부 확인에도 냉담했고 포로로 잡힌 자녀들의 석방을 간청하는 부모들을 무시해온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러시아 군대 문화에 만연한 '인명 경시' 풍조는 전투력 약화 및 사기 악화를 초래한다. 우크라 전투지역에서 러시아 지휘관들이 병사들에게 식량·식수·텐트 등을 전혀 남겨두지 않고 '사라지는' 사례도 빈발했다. 상관들의 부하들 전투수당 횡령, 전사자들의 사체 유기·방치, 장교들이 병사들에게 발송된 소포 가로채기 같은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군 일부가 전쟁터에서 첨단 무기·장비를 내버리고, 상당한 전력이 그저 '녹아 내리는(melted away)' 현상도 발생했다. 가장 끔찍한 사례는 작년 4월 침몰한 순양함 '모스크바'호에서 실종된 징집병 부친의 경우다. 비탄에 젖어 흑해의 러시아 해군기지로 찾아간 부친이 "아들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사령관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꾸했다. "글쎄요, 바다 어딘가 있겠죠(Well, somewhere at sea)." 바흐무트전투에서는 인명경시 풍조가 '인해전술'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20세기 2차 산업혁명 시대 유물이 부활한 셈이다. 이는 우·러전쟁의 역사퇴행적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춘계공세를 지휘하는 우크라 사령관은 시르스키 중장이다. 그의 별명은 '금욕주의자' '운동중독자' '강박적 기획가' 등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부터 나토(NATO)군의 영향을 받아 임무형 지휘, 하이브리드전 등에 능통한 그의 최우선 순위는 장병들의 사기진작이다. 그래서 전쟁 와중에도 매일 우크라 장병들이 보낸 수백 통의 메시지에 답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크라군도 미군처럼 "군대를 만드는 것은 군인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인명 중시'의 신념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전 워싱턴포스트(WP)는 "마침내 푸틴도 다른 모든 폭군들과 똑같은 교훈을 학습하는 중"이라며, 푸틴이 "전쟁의 맹견(dogs of war)을 풀어 놓으면 그것이 자신을 물어뜯을 수 있다"는 역사상 폭군들의 교훈을 배우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전쟁을 일으키면 그것으로 인해 패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번 전쟁은 "푸틴의,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침략전쟁에 불과하다. 그의 허황된 착각, 오판과 망상이 아니었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전쟁이다. 반란사건에서 드러난 러시아 지휘부의 난맥상은 모두 그 뿌리가 푸틴에게 있다. 푸틴이 범한 결정적 과오는 전쟁에서 단일대오 형성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일례로 개전 이후 16개월 동안 총사령관을 '드보르니코프→지드코→수로비킨→게라시모프' 등으로 네 차례나 바꾸는 갈팡질팡 행보를 보였다. 현대사에서 전쟁 지휘 사령관을 평균 4개월마다 갈아치운 사례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푸틴은 벨라루스 루카셴코 대통령의 중재로 '프리고진 불처벌, 바그너 해체'라는 어정쩡한 해법에 합의했다. 과연 러시아군이 사기 침체, 지휘부 사분오열, 푸틴 정권의 취약점 노출 같은 동시다발적 악재를 극복하고 우크라군의 춘계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이 '찻잔 속의 폭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전쟁의 향배를 뒤바꾸는 '분수령', 나아가 푸틴 정권의 몰락을 알리는 '종말의 시작'이 될지는 오직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될 것이다.
주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