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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에서 배회 중인 000씨(남, 85세)를 찾습니다. 163cm, 줄무늬 노란색, 회색 카라티, 회색 바지, 검정 운동화.’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24분, 경보문자가 울렸다. 서울 광진경찰서 실종전담수사팀(실종팀) 동행 취재를 위해 사무실을 찾은지 단 4분만이었다.

매일 전국에서 평균 약 340명에 대한 실종신고가 이뤄진다. 지난 2017년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과 2021년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으로 실종신고에 대한 경찰의 초동조치를 둘러싸고 비판 여론이 일었고, 이에 따라 경찰은 실종 사건 업무를 형사과로 이전하고 경보 문자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관련 체계를 개선했다. 실종신고가 많은 지역은 단순 가출 사건 등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광진서다. 관할 내에 아차산과 7개의 한강 다리가 걸쳐있어 실종 신고가 유독 많다. 하루 10건은 기본이고 많은 날은 20~30건 접수된다. 관내에 동서울터미널이 있어 공조 요청도 전국에서 들어온다. 지난 1분기 462건의 실종 신고를 해결, 전국 1위를 달성했다.

이날도 광진서 실종팀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앞선 문자를 받은 김문기·유원재 경위는 “실종팀! 여기 상황실입니다. 신고번호 0000 관련해서 관내에서 발생한 치매 할아버지 공조 요청 확인 바랍니다”라는 무전을 듣자마자 무전기와 차 열쇠, 수첩만 챙겨 빠른 속도로 경찰서를 나섰다. 단서는 경보 문자 속 인상착의가 전부였다.

해당 사건의 첫 신고는 지난달 29일 오후 1시 50분쯤 강남경찰서에 접수됐다. 할아버지는 당시 강남구청역에서 지하철을 탄 것으로 확인됐는데 하차역이 확인되지 않아 공조 요청을 받은 인근 경찰서가 지하철역 폐쇄회로(CC)TV를 모조리 뒤졌고 결국 구의역을 관할하는 광진서에까지 공조요청이 왔다. 할아버지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아 위치추적이 어려웠다. 김 경위는 구의역의 CCTV부터 확인했다. “치매 할아버지 때문에 CCTV 좀 볼게요.” 두 형사는 수십 개의 CCTV 화면 속에서 구의역에서 내리는 할아버지를 단번에 찾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광진경찰서 실종전담수사팀 5년차 베테랑 형사 유원재 경위와 김문기 경위가 실종신고된 치매 노인을 찾기 위해 구의역 CCTV를 추적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하지만 진짜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게이트를 나온 할아버지는 다시 승차 플랫폼 앞에서 서성이더니 같은 장소를 맴돌았다. 할아버지가 구의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는지, 아니면 출구로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역의 구조를 잘 아는 역무원까지 동원됐다. 천신만고 끝에 할아버지가 4번 출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는 장면을 포착했다.

구의역 바깥 탐문을 나서려던 김문기 경위는 “치매 환자 특성상 나갔다 다시 들어올 수 있다”며 몇 초간 CCTV를 더 주시했다. 예상이 들어맞았다.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왔던 할아버지는 몇 초 뒤 다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 CCTV에 등장했다. 할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1시간 동안 구의역을 맴돌다 강변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탑승한 뒤에야 구의역 CCTV에서 자취를 감췄다.

두 수사관은 강변역으로 향했다. 실종신고를 한 할아버지의 아들 A씨도 역을 직접 찾았다. “물론 바쁘신 건 알지만, 언제까지 ‘기다려달라’는 말만 할 것이냐”며 김 경위 등을 상대로 울먹였다. 세 사람이 함께 강변역 CCTV를 열어봤지만 할아버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후 6시 5분, 신고자에게 전화가 왔다. 강서구의 한 지구대가 할아버지를 보호중이라는 전화였다. 그제야 아들은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며 실종팀 형사들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김문기 경위는 “더 빨리 찾아야 했는데 아쉽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광진경찰서 실종수사팀이 위치 추적 끝에 잠실대교 위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학생을 구조했다. 장서윤 기자


이날 저녁 8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던 청소년이 실종팀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두절됐다”는 신고를 받고, 실종팀이 위치추적에 나섰지만 휴대전화는 꺼져있었다. 오후 8시 42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잠시 신호가 잡혔고 위치추적에 성공했다. 잠실대교 위였다. 아차산역을 향하던 순찰차는 잠실대교로 방향을 틀었다. 다리의 중간 지점을 지날 때 난간에 매달린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신고내용과 인상착의가 유사했다. 유원재 경위는 곧장 길가에 차를 대고 달려가 학생을 붙잡았다. 학생을 파출소로 인계하고 경찰서로 돌아가는 길, 유 경위는 “조금이라도 늦게 가면 때를 놓칠 수 있고, 달려가면 충동적으로 뛰어 내릴 수 있어 몹시 긴장했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김영옥 기자


실종신고는 강력 범죄의 전조증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25일 경기 파주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60대 택시기사도 같은날 오전 3시 30분 “아버지가 6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30분 전에 카톡을 했는데 다른 사람인 듯하다”는 아들의 실종신고가 접수된 뒤에야 발견됐다. 사건의 주범 이기영은 이어진 수사에서 여성 동거인과 택시 기사를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문기 경위는 “실종팀 수사관들은 혹시 모를 사건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어 항상 긴장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실종수사는 시간과의 싸움이 된다. 유원재 경위는 5월 1일 접수된 20대 남성 B씨 사건이 그랬다고 기억했다. B씨는 “다니던 직장에 나오지 않고 연락이 안 된다. 평소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친구의 신고 외에 카드사용 내역 등 이른바 ‘생활반응’이 전무했다. 지하철을 타고 수원역에 내렸다는 게 유일한 단서였다. 유 경위는 관내가 아닌데도 시간을 쪼개 6~7차례 수원 출장을 다녀왔다. CCTV 추적 끝에 B씨가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남·녀 2명과 함께 자살 관련 물품을 구매한 흔적을 찾았고, 이들이 함께 들어간 폐건물도 특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경찰이 폐건물을 확인했을 때 B씨는 이미 숨진 뒤였다. 수원 서부경찰서는 B씨와 함께 있던 남녀를 자살방조혐의로 입건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실종신고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보호자, 법정대리인, 동거 가족이나 친족”이 신고자의 요건이지만, “단순히 보호자 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실종신고의 접수를 거부해서는 안 되며, 신고자의 신분에 관계 없이 진술과 정황 등을 바탕으로 판단하라”는 경찰 내부 지침에 따라 사실상 모두가 신고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부 수사관들은 “채무 관계나 내연 관계 등 원한이 있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해서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인천 소재 경찰서 실종팀 수사관)며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연인 사이에 싸우고 하루 연락이 안 된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선서별로 하루에 평균 10건, 많게는 20건 이상 실종 신고가 들어오는데,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나는 신고가 많거나 혹은 산에서 실종돼 200~300명의 인력이 동원되는 고난이도 사건이 발생하면 신고가 적체되는 경우도 있다. 경찰도 악용 소지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실종자를 발견하더라도 신고자에게 안전 여부만 알리고, 실종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소재지는 고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실종신고를 하는 대다수는 절박하다는 게 실종팀 수사관들의 설명이다. 경찰도 신고자들의 절박감, 추가 범죄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실종신고는 즉각 전수처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강력범죄 피해 위험이 명백할 경우 출동 순서가 바뀌기도 하지만, 신고 내용만으로 예측이 쉽지 않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출동해서 다 처리해야 한다”(서울 소재 경찰서 실종팀 수사관)는 것이다. 실종팀장 김영근 경감도 “일단 현장에 가보는 것”과 “1%의 가능성이라도 절대 의심하는 것”을 실종 수사의 핵심으로 꼽는다. 실종신고는 특성상 초기에 범죄로 인한 실종인지, 단순 가출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초동 단계에서 과학적인 접근이 어려워 일단 ‘박치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전국 258개 경찰서 가운데 163개 경찰서에서 운영 중인 실종수사전담팀 인력 831명이, 연간 12만4223건(2022년 기준)에 달하는 실종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있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실종수사 접수 건수는 12만 4223건이다. 가출인(성인)이 7만 4936건으로 가장 많고, 18세 미만 아동 2만 6414건, 치매 환자 1만 4527건,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8344건 순이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실종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신고 내용만 보고 위험도를 따지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전문성을 갖춘 실종 전담 수사 인력을 늘리고, 지역경찰·기관 공조를 활성화해 최대한 신속하게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남친 장난에 가슴 덜컹…실종신고 황당 사례

 

#1. 지난 5월 19일, 실종자의 ‘전 여자친구’라고 밝힌 신고자가 “전 남자친구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목줄 사진을 보내왔다. 사람 좀 찾아달라”며 경찰에 전화를 걸어왔다. 경찰이 자살 의심 신고로 접수하고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서 확인한 결과, 실종 대상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신변에 전혀 이상이 없었다. 알고 보니, 실종 신고된 남성이 “전 여자친구의 반응이 궁금해서” 개인 SNS에 사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2. “아내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회식을 했는지 다른 누군가와 있는 것 같다” 지난 6월 13일, 남편이라고 밝힌 신고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사고가 우려돼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다행히 실종 대상자는 집에서 쉬고 있었다. 실종 대상자(아내)가 지나친 음주를 일삼던 신고자(남편)를 피해 처갓집에 머물고, 남편의 전화만 일부러 받지 않았던 것이었다.

#3. 부모의 신고였다. 지난 6월 30일, “지방에 사는 딸에게 SOS 긴급 구조 문자가 왔다. 연락두절이다. 범죄 피해가 의심된다”는 신고였다. 경찰이 전화해보니, 받았다. 이 신고 대상자 역시 집에서 누워 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가 오작동돼 긴급 연락처에 등록돼있던 부모에게 문자가 잘못 전달된 것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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