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하면 바보"…나라가 만든 '위장 미혼'

by 민들레 posted Jul 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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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직장 동료와 결혼식을 올린 최모(31)씨는 아직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법적 부부가 되면 맞벌이는 내 집 마련에 불리하다고 봐서다. 최씨는 “각자 단독세대인 게 집을 구하는데 더 유리하다”며 “우리처럼 결혼식은 올리고 혼인 신고는 안 한 ‘위장 미혼’ 부부가 주변에 많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혼인 건수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참석 인원이 통제된 서울의 한 결혼식장. 뉴스1

 

“혼자는 청약되는데 부부면 안 돼”

 

결혼이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게 청약과 대출이다. 최씨 부부는 ‘한강뷰 로또’로 불린 서울 동작구 수방사 부지 사전청약을 각자 신청했다. 주변 시세보다 4~5억원 저렴한 가격에 나오다 보니 역대 사전청약 최대 경쟁률(283 대 1)을 기록한 곳이다. 당첨이 안 되긴 했지만, 혼인신고를 했다면 신청 기회조차 얻지 못 했다.

김영옥 기자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30%(846만원) 이하(맞벌이는 140%, 911만원)여야만 청약 신청이 가능해서다. 1인가구도 신청 가능한 일반 청약은 월평균 소득 100%(651만원)가 기준이다. 월 500만원가량을 버는 두 사람이 법적 부부가 되면, 청약 요건 자체에 미달한다.

이처럼 맞벌이 부부가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나오면서 신혼부부들 사이에선 ‘결혼 페널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혼인신고하면 바보” 등의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서야 혼인신고를 하겠다는 사례도 흔하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에선 자녀의 수에 따라 가점이 주어지다 보니, 자녀가 생기기 전까진 되레 가점에서 밀려 불리하기 때문이다.
 

대출 소득기준 1인가구=신혼부부?

 

대출에서도 부부보다 미혼이 유리하다.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운영하는 디딤돌 대출은 주택 구매 때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품이다. 신혼부부는 연 소득 7000만원 이하가 지원 대상이다. 그런데 30세 이상 미혼 1인가구도 첫 주택 구매라면 소득 요건이 연 7000만원 이하로 동일하다. 고금리 상황에서 주택 수요자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최근 도입한 특례보금자리의 우대금리 조건을 봐도 청년 1인가구는 연 소득 6000만원 이하, 신혼가구는 7000만원 이하로 큰 차이가 없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전세도 신혼부부에게 불리하긴 마찬가지다. 청년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34세 이하 세대주에 전세보증금을 2억원까지 저금리로 대출해주는데 청년 1인가구의 소득기준은 연 5000만원, 신혼가구는 연 6000만원 이하다. 다만 이 같은 비난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디딤돌·버팀목 대출의 신혼부부 소득기준을 1500만원씩 상향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맞벌이 가구의 연평균 소득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사람은 2배, 소득 인정액은 1.7배

김영옥 기자

 

소득 지원에서도 부부는 소외된다. 소득이 적은 가구에게 근로장려금을 주는 근로장려세제(EITC)는 1인가구에게 유리하게 설계됐다. 단독가구는 연 소득 2200만원 미만, 맞벌이 가구는 3800만원 미만이어야 근로장려금을 받는다. 결혼을 하면 단순 계산으로 가구원이 2배로 늘어나는데 소득 인정액은 1.7배에 불과한 셈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맞벌이 가구의 근로장려금 수급률은 6.5%로, 단독가구(27%)의 4분의 1에 그쳤다.

신혼부부 중 맞벌이 가구는 이제 외벌이 가구보다 흔한 형태가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전체 부부 중 맞벌이 가구는 46.3%였는데 결혼생활을 주로 시작하는 연령대인 30대로만 보면, 맞벌이 가구 비중이 53.3%에 달했다. 2011년엔 30대 맞벌이 가구 비중이 41.4%였다. 10년 새 10%포인트 넘게 늘었다. 각자 경제력을 갖춘 두 사람이 합치는데 각종 소득 기준은 ‘1+1=2’라는 기준을 적용하지 않다 보니 신혼부부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혼인신고를 피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옥 기자

 

맞벌이 가구는 맞추기 어려운 기준소득

 

가구 평균소득은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임금이 함께 오른 데다 맞벌이 비중이 높아져서다. 그러나 디딤돌 대출(주택 구매)의 지원 소득 조건은 2014년 도입 당시부터 지금까지 부부 합산 6000만원 이하(신혼부부는 7000만원 이하)다. 2019년 1분기 월평균 641만원이었던 맞벌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올해 같은 분기 791만원으로 올랐다. 연봉 9500만원 수준이다.

맞벌이가구 월평균 소득 추이

 

부부에 대한 지원이 독신 가구에 비해 미흡하다 보니 결혼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혼 출산이 흔한 서구와는 달리 한국은 혼인을 해야 자녀 계획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보통이라서다. 저출산 해소를 위해 장려해야 할 결혼을 정책이 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맞벌이가 흔해진 상황에서 맞벌이 부부라는 자체만으로 실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각자 경제활동을 하던 이들이 부부가 되면서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도록 지원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이 살고 결혼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주택이나 세금 문제 등으로 혼인을 미루게 만드는 제도는 고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