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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2주 이상의 여름휴가를 중요한 권리로 여긴다. 그러나 독일인의 25%가 이번 여름 휴가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지난 6월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여론조사기관 ‘시베이’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독일인의 25%가 이번 여름휴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소득 구간별로 살펴보면 한 달 가계소득이 세후 1500유로(약 212만원) 이하인 저소득층 중에서는 65%가, 1500~2499유로(약 354만원) 구간 응답자 중에서는 39%가 휴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중산층으로 불리는 세후 소득 2500~3499유로(약 495만원) 가계도 20%가 휴가 비용이 없다고 응답했다. 휴가를 떠나겠다는 응답자 중에서도 24%가 여행 기간을 줄이거나 저렴한 여행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약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7월2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승객들이 탑승 수속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EPA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인은 수년간 평균적으로 가계소득의 7%를 여름휴가를 위해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휴가 비용을 줄여야 하는 인구가 늘어났다. 예년과 비교해 올해 휴가 지출에 변화가 생겼는지를 묻자 응답자의 4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들 중 48%가 휴가비를 많이 줄여야 한다고, 23%는 약간 줄여야 한다고 대답했다. 반면 휴가비를 많이 늘리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11%, 약간 늘리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15%에 그쳤다.

독일 언론은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상황을 빈곤이나 경제적 어려움의 척도로 자주 언급한다. 2019년 경제지 〈비르츠샤프츠 보케〉는 2018년 독일인의 14.5%가 일주일 이상의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는 유럽 통계청 자료를 인용하며 ‘시민 수백만 명이 휴가를 떠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고 보도했다.

이번 여름 많은 사람이 휴가를 떠나지 못하거나 휴가 비용을 절약해야 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휴가비 자체가 증가했다. 공영방송 ARD가 여행 포털사이트 ‘홀리데이체크’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올여름 독일에서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로 떠나는 항공·숙박 등이 포함된 여행 상품의 가격이 2019년에 비해 20~30% 증가했다. 지금까지 저렴한 여행지로 여겨지던 튀르키예, 튀니지, 이집트의 경우 가격이 35~50% 올랐다. ARD가 가격 비교 사이트 ‘이데알로’에 의뢰해 실시한 휴가지 항공권 가격 분석에 따르면, 수백 곳에 이르는 조사 대상 지역 항공권 가격이 2022년에 비해 예외 없이 10% 이상 상승했다.

〈슈피겔〉은 비싸진 휴가의 예로 부모와 자녀 2명으로 구성된 크루트바 씨 가족의 사례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 가족은 지난해 튀르키예의 바닷가에 있는 한 리조트에서 14일간 휴가를 즐겼다. 당시 크루트바 씨가 세 끼 식사가 모두 제공되는 숙박권과 비행기 티켓이 포함된 여행 상품을 구매한 가격은 3800유로(약 538만원)였다. 크루트바 씨 가족은 올해도 같은 상품을 구매하려 했지만 가격이 두 배 가까운 7500유로(약 1062만원)로 뛰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크루트바 씨는 “10~15% 정도 상승한 가격은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의 가격 상승은 미친 수준이다. 이렇게 많은 돈을 휴가를 위해 지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생활비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비용을 절약해야 한다는 압박감 또한 휴가를 가로막는다. 독일 연방소비자센터가 지난 6월 발표한 ‘올해의 소비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재정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람들이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절약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인의 56%가 휴가를 더 적게 떠나겠다고 응답했으며, 76%가 에너지를 절약하겠다고, 61%가 식당 이용을 줄이겠다고 대답했다. 식료품 구매 시 절약 의사를 밝힌 응답자도 44%나 되었다.

한편 〈슈피겔〉은 인플레이션이 끝나도 앞으로 휴가비에 대한 가계 부담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휴가비를 상승시키는 원인이 사라지지 않거나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기후보호 목표로 도입된 탄소세로 인해 저비용 항공은 경쟁력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 되었다. 또 주요 휴양지의 관광업계가 인력 부족이나 수익성 하락 때문에 대규모 관광객보다는 소수의 고급 여행객을 선호하는 쪽으로 추세가 바뀌고 있다. 여기에 점점 더 많은 나라의 중산층 또는 부유층이 휴가에 더 큰 돈을 쓸 수 있게 된 점도 휴가비 상승의 원인으로 언급되었다.
 

7월13일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강가에 앉아있다. ©Xinhua

 

유럽 관광업계 주 고객이던 독일인 관광객



독일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휴가비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였다. 독일 중산층 관광객은 유럽의 주요 휴양지의 주요 고객으로 통했다. 독일 언론은 오랫동안 독일이 세계에서 해외여행 비용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지만 2012년 중국이 처음으로 독일을 제치고 해외여행에 가장 많은 돈을 사용하는 국가가 되었고, 중국과 독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거기다 개발도상국과 산유국의 부유층이나 중산층이 사용하는 여행 경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제 유럽 주요 휴가지의 주 고객은 더 이상 독일 중산층이 아니다.

독일인들이 휴가를 중요하게 여긴 것은 경제발전이 시작된 1950년대부터이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인 중 닷새 이상 휴가를 떠나는 사람은 인구의 3분의 1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국내 여행을 했다. 하지만 1960년대 말이 되면서 대중 관광 시대가 열렸다. 평균 소득이 급격히 증가했고 저비용 항공권과 숙박 등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대형 여행 회사들이 생겨났다. 1970년대에는 오일쇼크로 석유 가격이 올랐음에도 여행 산업은 성장 가도를 달렸다. 당시부터 마요르카 같은 스페인 휴양지가 독일 관광객을 위해 개발되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정권은 외화를 벌기 위해 서유럽 여행객은 비자 의무에서 제외했으며, 여행 사업자들이 호텔과 리조트를 건설하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독일의 경제성장은 1970년대에 정체기에 들어섰지만 해외여행객 수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노동자들의 휴가 일수가 늘어난 것도 여행 사업 부흥에 기여했다. 1974년 옛 서독 법이 보장하는 최소 휴가일은 18일이었지만 이미 많은 노동자가 산업별 단체협약을 통해 더 많은 휴가를 즐겼다. 1977년 단체협약에 따른 노동자의 평균 휴가일은 연 24일이었다. 현재 독일의 법적 최소 휴가 일수는 주 5일 근무 기준 연 20일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70%가 연간 26일에서 30일의 휴가를 보장받고 있다.

〈슈피겔〉은 중산층도 휴가비를 걱정하는 현 상황을 극우 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의 인기와 연결해 분석했다. 여론조사기관들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만약 지금 연방의회 선거를 한다면 어느 정당에 투표하겠는가?’라는 설문에서 최근 AfD는 19%가 넘는 지지율로 기민당(기독민주당)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슈피겔〉은 이 설문 결과는 AfD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실망에 따른 것이라며 만약 부유층 외에 대다수 시민이 휴가를 줄이거나 휴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정치적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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