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의료진 부족
선진국, 해외 의료진 확보전
호주, 특별 보너스 등으로 유인
전 세계가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겪으면서 인재 확보를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의사들이 더 많은 급여, 근무 환경을 찾아 미국, 호주 등 부유한 국가로 이동하면서 의료진 부족 문제는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을 뒤흔들고 있다.
1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의료진 확보를 위한 글로벌 전투가 벌어지면서 각국이 서로의 의료 시스템을 공격하고 있다”며 “특히 부유한 국가들이 고령 인구를 돌보기 위해 다른 국가의 의료 시스템을 습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전 세계가 공격적으로 의료진 확보에 나서면서 가난한 나라가 위험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짐바브웨 의료진. / 로이터
호주는 가장 공격적으로 의료진 확보에 나선 나라 중 하나다. 호주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특별 보너스, 빠른 비자 발급 등을 내세우며 해외에서 의료진을 끌어모으고 있다. 호주는 지난해 말, 영국에서 “당신은 이른 아침에 서핑할 수 있고, 주말에는 낚시하거나 사진 강습을 받을 수 있다”며 의료진 모집 광고를 내보냈다. 당시 영국 간호사들이 급여, 장시간 근무 등을 이유로 파업을 벌이던 상황이라 영국에 타격을 입혔다. 해당 광고는 호주 태즈매니아 주의 보건부가 진행했다. 태즈매니아 주 외에도 호주 지방정부는 영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 의료진을 구하는 중이다.
호주 내무부에 따르면 호주는 2023년 3월까지 9개월 동안 의료 종사자에게 4950개의 비자를 발급했다. 1년 전에 비해 48%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호주는 여전히 간호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호주와 10개국에 500개 이상의 병원과 진료소를 소유하고 있는 램지 헬스케어(Ramsay Health Care)는 최근 숙련된 인력 부족으로 환자 치료 능력이 계속해서 제한되고 있다고 공지했다. 램지 헬스케어는 직원을 해외에서 찾고 있다.
영국 북부에서 일했던 한 의사는 지난해 11월 호주 케언즈로 이주했다. 그는 영국에서 일할 때보다 연 5만6000달러를 더 번다. 호주 주 정부가 보조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아일랜드에서 호주로 이주한 방사선과 전문의는 WSJ에 “동료 중 4분의 1이 해외여행을 떠났거나 일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현지 시각)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국 의사들. / EPA 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70개 이상의 국가가 해외에서 의료인력을 쉽게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도입했다. 독일은 가나, 브라질, 알바니아와 같은 국가에서 의료진을 고용 중이다. 아일랜드는 비유럽권 의사를 모집하기 위해 고용 제한을 완화했다. 반대로 필리핀은 의료진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주하자,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일시적으로 의료진의 해외 이주를 금지했다.
이렇듯 선진국이 앞다퉈 해외 의료진 확보전에 나서는 이유는 의료진 부족 문제도 있지만 , 의료진이 숙련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WSJ는 “부유한 국가의 경우 간호사와 의사를 교육하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의료진을 유인하는 것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10만명 이상의 간호사가 미국 밖으로 이동했다. 관련 기록을 작성한 이후 가장 큰 감소다. 영국 정부는 올해 3월 말까지 1년 동안 의료 및 간병 종사자에게 전년보다 3배 많은 10만1570개의 비자를 발급했다. 이들 대부분은 인도, 나이지리아, 짐바브웨에서 온 의료진을 대상으로 발급됐다.
의료진 확보 각축전이 벌어지면서 가난한 나라는 직격탄을 받고 있다. 올해 3월 WHO는 의료진 문제가 있는 55개국(아프리카 37개국 포함) 목록을 발표했다. 부자 나라의 경우 1만 명당 의료진이 148명이지만, 가난한 국가는 1만 명당 15명의 의료진이 존재할 뿐이다. WHO는 이들 국가의 의료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자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의료진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55개국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적극적으로 모집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의료진의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짐바브웨의 한 병원 간호사는 WSJ에 “최근 몇 년 동안 외과병동에서 일하던 12명의 간호사가 해외로 갔다”고 말했다. 올해 영국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월말까지 1년 동안 짐바브웨 국민 1만7421명에게 건강 및 간병 비자가 발급됐다. 1년 전보다 약 6배 증가했다. 간호사 부족으로 인해 일부 병원에서 간호사 한 명이 25~30명의 환자를 돌보는 열악함이 이같은 상황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짐바브웨 부통령이자 보건부 장관인 콘스탄티노 치웽가는 지난 4월, 짐바브웨 의료 종사자의 적극적인 채용을 범죄화하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치웽가 부통령은 지난 4월 한 행사에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의료진 모집을 인류에 대한 범죄”라며 “자국민을 훈련시키지 않고 가난한 나라에서 의료진이 훈련받기를 바라는 무책임한 이들 때문에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는다면 이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범죄”라고 말했다.
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