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달라졌다.’
ENA 채널의 월화 드라마 <남남>에서 엄마 은미(배우 전혜진)는 ‘보통 엄마’와는 너무 다르다.
딸 진희(배우 최수영)가 야간근무로 늦게 퇴근하는 줄 알았던 어느 날 엄마 은미는 집에서 TV로 ‘야한 영화’를 본다. 진희는 야간근무가 취소돼 집에 일찍 도착했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딸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엄마의 자위 장면을 눈앞에서 본 것. 무안해하는 쪽은 엄마가 아닌 딸이었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딸은 며칠 고민 끝에 엄마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은미는 “너는 들킨 적 없는 줄 아냐”라며 오히려 더 당당하다.
은미는 딸이 고작 6살밖에 안된 꼬맹이 시절,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비키니를 입고 남성들에게 ‘플러팅’의 시선을 보낸다. 다가오는 남성들의 눈길도 한껏 즐긴다. 튜브를 끼고 있는 딸은 자기가 수영하러 가면 엄마가 남자들과 놀러 갈까봐 자리를 지킨다. 엄마가 딸을 지키는 게 아니라 딸이 엄마를 뭇 남성들의 시선에서 보호하는 느낌이다. 20년만에 갑자기 나타난 진희의 친부 앞에서도 은미는 ‘첫사랑’이라며 설레며 연애를 즐긴다. 모녀의 쇼핑 장소도 흔히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마트가 아니다.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모녀의 쇼핑 장소는 성인용품 가게였다.
드라마 <남남> 한 장면. ENA 채널·지니 TV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남남>은 고등학생때 아이를 낳아 혼자 기른 싱글맘과 그 딸, K-모녀 이야기다. 드라마 등장인물 소개에 엄마는 ‘철부지’로 소개글이 써 있지만 대개 경제적 능력이 없이 사고만 일으키는 그간 철부지와는 다른 맥락이다. 은미는 정형외과 물리치료사로 한 아이를 기르고 조그마한 빌라도 구입할 정도로 거뜬히 딸을 키우고 자기 앞가림도 하는 ‘엄마’다. 그저 성적 욕망을 거세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낼 뿐이다. 자아실현을 이루는 ‘엄마’의 서사에서 욕망하는 엄마도 한층 더 나아간 것이다.
모녀 이야기인데도 제목이 ‘남남’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엄마’를 한 개인 주체로 인정하자는 것. 가족이 끈질긴 혈연관계로 연결되어 있지만 때론 남보다 못한 현실, 그리고 남처럼 거리를 두고 지낼 때 더 화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엄마 은미를 연기한 배우 전혜진은 지난달 17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은미는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은미 그 자체인 것 같다. 감독님한테도 ‘이게 말이 되나. 오버 아닌가. 이 정도로 해도 되나?’ 물어봤을 정도”라고 말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7일 “기존에 드라마에서 엄마는 일단 여성이 아니었는데, 엄마도 여자라고 이야기하면서 모녀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캐릭터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며 “엄마가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는 것은 명확하게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남>은 티격태격 모녀 관계를 담고, 엄마의 첫사랑(안재욱)의 등장과 경찰인 딸의 상관(박성훈)과의 러브라인 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엮어가며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1회 시청률(전국 기준)은 1.2%에 그쳤지만 6회 시청률은 3.6%까지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드라마 <남남>의 주요 출연 배우들. ENA 채널·지니 TV
임지선 기자 [email protected]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