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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최고 포식자 악어까지 단숨에 삼키는 ‘플로리다의 괴물’ 비단뱀
퇴치위해 땅꾼 실력 겨루는 ‘비단뱀 챌린지’ 까지 창설
”반드시 뇌를 가격해 살처분하고, 두동강 이상 내면 안돼” 등 엄혹한 룰도


올해는 생 택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출간된지 80주년 되는 해로 세계 곳곳에서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책을 다 읽지 않은 분들이라도 알고 있는 유명한 장면이 있죠.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장면이라며 어린왕자가 그린 그림입니다. 중절모처럼 부어오른 뱀의 뱃속에 통째로 들어간 코끼리의 모습은 엉뚱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저 상황을 실제로 가정한다면 호러물도 이런 호러물이 없습니다. 통째로 삼켜진 코끼리의 몸뚱아리를 녹여내기 위해 초강력 위산이 분비될 것입니다.
 

지난해 알을 돌보고 있는 상황에서 포획돼 살처분된 암컷 버마비단뱀이 실험실로 옮겨졌다.
/South Florida. WLRN


삼켜진것도 서러운데 불행히도 의식까지 붙어있다면 코끼리 입장에서는 산채로 녹아드는 고통스러움을 겪게 되죠. 이렇게 어마무시한 먹잇감을 삼킨 뱀의 입장에서도 먹이를 완전히 제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온갖 스트레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화책 바깥에서 펼쳐진 장면이라면 먹잇감이 된 코끼리와 포식자 뱀 모두 죽을 확률이 적지 않습니다. 코끼리는 잡아먹혔으니 죽는거고 뱀은 배가 터져 죽는거죠. 그런데 이런 해괴한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은 징그러움 인덱스가 상당히 높은 동영상으로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클릭하지 않으시길 간곡히 권합니다.
 

00:38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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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습지에서 벌어진 상황입니다. 5.5m짜리 버마비단뱀이 포획돼 즉시 살처분됐습니다. 뱀의 사체는 연구실로 옮겨져 부검이 진행됐습니다. 놈의 뱃속은 불룩하게 부풀어올라 식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정황이 뚜렷했습니다. 외래종이면서 지역 최고의 생태계 포식자로 등극한 놈이기에 어떤 것을 먹어치웠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필수적이죠. 금색과 갈색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매혹적이면서 아름다운 무늬의 가죽을 가르는 순간, 불룩한 먹잇감의 윤곽이 뚜렷합니다. 시커먼 몸색깔, 날카로운 비늘과 줄달음치는 등껍질은 소리없이 이렇게 절규합니다. “그렇소. 나 방금 잡아먹힌 악어요. 왜 더 일찍 구해주지 않았소?” 악어의 몸길이는 1.5m.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놈이지만, 혼만 빠져나갔을 뿐 악어의 몸뚱아리는 온전했습니다.
 

지난해 포획된 5m짜리 뱀의 뱃속에서 1.5m짜리 악어가 소화되지 않은 채로 발견됐다.
/rosiekmoore instagram


이 뱀은 온몸으로 칭칭 감아 악어를 옴짝달싹못하게 한 뒤 머리부터 삼켰을 것입니다. 두 괴물 파충류의 운명이 엇갈리는 순간입니다. 악어의 주둥이부터 뱀의 위장속으로 직행하는 순간 포식자의 눈과 피식자의 눈이 잠시나마 마주치는 순간이 있었겠죠. 든든하게 속을 채운 버마비단뱀은 볕이 좋은 곳으로 격렬한 사냥으로 지친 몸을 쉬면서 본격적으로 소화에 들어가려던 참이었을 겁니다. 악어의 피와 살과 비늘은 버마비단뱀의 종족 번성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변모했을 것입니다. 놈이 수컷이라면, 격렬한 짝짓기를 하며 암컷의 몸에 자신의 유전자를 원없이 뿌려댔을 것입니다. 암컷이라면 받아들인 씨를 키워 100개가 훌쩍 넘는 알을 낳은 뒤 또아리를 틀며 돌봤을 것이고요. 이 모든 계획은 놈이 사람들의 눈에 발각되면서 물거품이 됐습니다.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지닌 버마비단뱀의 무늬.
/Photo/video shoot of captive Burmese pythons; Everglades National Park; March 31, 2015.


징그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목숨까지 잃은 것도 억울한데 몸뚱이까지 훼손당한 뱀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법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지금도 플로리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장면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영원한 안식처, 디즈니월드로 대표도는 테마파크의 본산, 햇살이 작열하는 열대의 해변. 미국 플로리다주 하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아요. 지상 최대의 뱀 사냥터!
 

00:24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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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은 미국 전역의 내로라하는 땅꾼들이 총집결했습니다. 버마비단뱀 챌린지가 지난 4일 개막해 오는 13일까지 진행되거든요. 버마단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동남아가 원산지입니다. 40여년전 애완동물로 길러지다 버려진 개체가 플로리다의 습하고 뜨거운 기후에 완벽하게 적응하면서 최고의 포식자가 됐어요. 이 지역의 토종 동물인 악어와 거북, 사슴 등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뱀의 거대한 뱃속으로 사라지면서 생태계는 쑥대밭이 됐죠. 이 때문에 플로리다주는 일찌감치 유해동물로 지정하고, 주 정부가 땅꾼들까지 직접 고용하면서 퇴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폭발적인 번식력을 과시하며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자, 아예 상금을 걸고 2013년 대회까지 창설했습니다. 돈과 명예를 거머쥐려는 땅꾼들, 그리고 이참에 땅꾼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아마추어들까지 온갖 포획도구를 들고 플로리다에 집결해있습니다. 버마비단뱀들 입장에서는 악몽의 열흘이 시작된 거죠.
 

외래종 유입 40여년만에 플로리다 최고 포식자가 된 버마비단뱀.
/FWC photo by Andy Wraithmell


버마비단뱀이 몰려있는 일곱 개 장소에서 뱀 사냥이 펼쳐지고 있어요. 스포츠 대회에서 말하는 베뉴(venue)죠. 참가자들은 프로 땅꾼 부문과 아마추어 부문으로 이원화돼있습니다. 프로 땅꾼들이야 이미 플로리다 주정부와 고용계약을 맺고 일하던 사람들이니, 뱀사냥의 숙지사항이 몸에 배있습니다. 문제는 아마추어 땅꾼들입니다. 규정에 따라 이들은 허용된 도구로 뱀을 잡아야 하고, 잡은 뱀은 즉시 살처분한 뒤 대회본부에 사체를 제출해야 합니다. 뱀을 잡는 것도 어려운데 잡은 뱀은 어떻게 처치할까요?
 

플로리다주는 버마비단뱀을 살처분할 때 위와 같은 가상의 엑스라인을 그리고 한가운데가 뇌의 위치이니 가격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Florida Python Challenge


대회 조직위원회의 안내가 제법 친절합니다. 그래서 좀 섬뜩하죠. 살처분에 쓸 수 있도록 허용된 도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공기총이 있고요. 소나 돼지들을 도축할 때 머리에 금속봉을 쏘아 기절시키는 가축총도 사용이 허용됩니다. 망치도 쓸 수 있고요. 이렇게 도구가 갖춰지면 어떻게 실행할까요? 우선 뱀의 대가리 앞쪽의 양 눈, 그리고 뒤쪽의 턱뼈를 각각의 꼭지점으로 가상의 사각형을 그리고 대각선을 긋습니다. 그 엑스자 대각선이 겹쳐지는 부분이 뇌가 있는 부분입니다. 그곳을 온힘을 다해 가격합니다. 도축장에서 소나 돼지가 육고기로 해체 가공되기 전에 가축총을 맞고 혼절하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뱀의 살처분 2차 과정인 피싱(pithing) 개념도. 막대기로 뇌와 주변을 마구 휘뒤집어서 파괴하라고 안내돼있다.
/Florida Python Challenge


이렇게 정신을 잃은 다음에는 피싱(pithing)이라고 불리는, 쐐기를 박는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그 가상의 대각선 중심으로 기다랗고 뾰족한 도구를 찔러넣은 뒤 여러 방향으로 휘뒤집어놓습니다. 정신을 잃은 뱀의 골을 완전히 파헤치고 파괴되는 것이죠. 그런 과정을 통해 정신줄을 놓은 뱀의 혼이 몸뚱아리를 빠져나가고, 그저 기다란 살덩이가 됩니다. 몸에선 죽음의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오를 거예요. 야생이라면 벌써 파리떼들이 꼬였겠죠. 사람에게 붙들려 위장이 파헤쳐진 놈들 중 어떤 뱀은 악어 같은 거대한 먹잇감을 뱃속에 담고 있었을 것이고, 어떤 뱀은 뱃속에 새로운 생명들을 잉태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현장에서 살처분된 뱀의 사체는 냉동상태로 보관돼서 대회 운영본부에 제출이 돼야 하는데, 몸뚱이를 분리하더라도 두 조각을 넘어서는 안된답니다. 제출물에 당연히 뱀 대가리는 포함이 돼야 하고요. 이렇게 포획돼 살처분된 뱀들은 사이즈별로 분류가 돼고 이에 따라 수상자들이 결정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저 태어나서 살아가다가 창졸간에 목숨을 잃는 뱀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얼마나 무섭게 숫자를 불리고 있으면 이런 이벤트라도 벌이게 됐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뱀사냥 대회까지 치러야 할 정도로, 아직은 버마비단뱀의 폭발적인 번식력을 사람들이 제어하지 못하는 것일테고요.
 

외래종 유입 40여년만에 플로리다 최고 포식자가 된 버마비단뱀.
/FWC photo by Andy Wraithmell


버마비단뱀을 비롯해, 보아, 아나콘다, 그물무늬왕뱀 등 거대 뱀들의 공통점은 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대신 엄청난 파워로 먹잇감을 칭칭감아서 목숨을 빼앗아버리죠. 그리고 독을 뿜어내는 독니대신 목구멍을 향해 나있어 먹잇감의 탈출을 원천적으로 제어하는 이빨이 나 있습니다. 이 거대뱀들이 독까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지구상의 동물은 정말 묘하게 생태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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