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로 검게 그을린 미국에서 가장 큰 반얀트리가 10일(현지시간) 포착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인기 휴양지인 미국 하와이주(州)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이 빠른 속도로 번지면서 최소 53명(현지시간 10일 오후 1시10분 기준)이 목숨을 잃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큰 반얀트리(Banyantree)가 검게 그을렸고, 마우이 최고(最古) 주택으로 1830년대에 지어진 ‘볼드윈 홈 박물관’이 잿더미로 변했다.
하와이를 대표하는 해변의 야자수와 바다 위의 보트 역시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로 폐허가 된 라하이나 마을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이날 CNN 인터뷰에서 이번 화재 사망자 수가 앞으로 큰 폭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린 주지사는 “1960년에 큰 파도(쓰나미)가 섬을 관통했을 때 6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며 “이번에는 사망자 수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 같아서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화재로 1700여채의 건물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라하이나의 약 80%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로 폐허가 된 라하이나 마을의 모습. AP 연합뉴스
라하이나는 마우이섬에서 산불이 덮친 주요 피해 지역이다. 이 지역 주택과 상가 등 대부분이 목조건물이어서 화재 피해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8일 밤 12시22분쯤 마우이섬 중부 쿨라 지역에서 첫 산불이 신고됐고, 이어 새벽 6시37분쯤 서부 해변 마을 라하이나 인근에서 또다른 산불이 신고됐다. 라하이나에서 발생한 불은 한때 진압됐다가 허리케인이 몰고 온 강풍을 타고 오후에 다시 살아나 삽시간에 해변 마을을 덮쳤다.
또 중부 쿨라 지역 인근 서쪽 해안인 키헤이 지역에서도 추가로 산불이 발생해 마우이섬에서 모두 3건의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로 잿더미가 된 보트. 로이터 연합뉴스
라하이나 중심 거리인 프런트 스트리트에서 선물가게를 운영하던 티파니 키더 윈은 이날 피해 상황을 확인하러 현장에 갔다가 주변 거리에 불에 탄 차량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그중 일부는 내부에 불에 탄 시체가 있었다고 AP통신에 전했다.
또 인근 해안가 방파제에서도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키더 윈은 “그들(사망자들)은 탈출하려 했지만, 교통 체증에 갇혀 프런트 스트리트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며 “주변의 모든 랜드마크가 (불에 타) 사라져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식당 요리사로 일하던 말론 바스케스는 화재 발생 경보음을 들었을 때 이미 차를 타고 탈출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어서 동생과 함께 밤새도록 도로를 달려 빠져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불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고 또 달렸다”며 “연기가 너무 심해서 구토를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 피해를 본 이재민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카운티 당국은 이날 오전 10시30분 기준으로 라하이나 지역의 화재 진압률이 80% 정도라고 밝혔다. 키헤이 지역의 화재 진압률은 70% 정도다.
AP에 따르면 하와이주 국방부의 케네스 하라 소장은 전날 밤까지 주방위군의 헬기가 화재 현장에 15만갤런(56만8000L)의 물을 투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산불은 전날 하와이 본섬 북부 지역 2곳에서도 추가로 발생했다. 다만 이들 지역의 화재는 아직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당국은 전했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로 폐허가 된 라하이나 마을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마우이섬 카훌루이 공항 인근 와일루쿠 등에 마련된 대피소 5곳에는 모두 1350명이 밤새 머물렀다. 이 가운데 여행객들은 섬을 떠날 수 있도록 이날 오전 공항으로 이송됐다.
카훌루이 공항에는 여행객 1400명이 밤새 머물다 이날 오전 비행기를 타고 섬을 빠져나갔다. 항공사들은 마우이를 떠나는 여행객들을 위해 이날 항공편을 추가했으며, 항공권 변경 수수료도 면제했다.
하와이주 교통국장 에드 스니펜은 전날 약 1만1000명이 마우이섬을 떠났으며, 이날에는 1500여명이 더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로 피해를 본 관광객들. AP 연합뉴스
라하이나 등 마우이섬 일부 지역에서는 유선·휴대전화 연결이 간헐적으로 끊기는 등 통신이 원활하지 않고, 정전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전현황 집계사이트 파워아우티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마우이섬의 1만942가구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있다.
마우이 당국은 통신의 어려움 등으로 가족·친지와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을 위해 카훌루이 커뮤니티센터에 ‘가족지원센터’를 열었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로 폐허가 된 라하이나 마을의 모습. AFP 연합뉴스
미 언론들은 이번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이 역대 미국에서 발생한 화재 중 2018년 85명의 사망자를 낸 캘리포니아주 북부 ‘캠프파이어 산불’ 이후 가장 피해 규모가 큰 산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에 화재 피해가 큰 라하이나 지역은 19세기 초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큰 문화재가 대부분 파괴됐다.
하와이관광청에 따르면 라하이나는 국립 사적지로 등재돼 있으며, 이곳의 프런트 스트리트는 미국도시계획협회에서 ‘10대 거리’ 중 하나로 선정한 곳이다.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