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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지중해 바다에서 그의 마음은 파도처럼 무너졌습니다. 햇살은 따스했고 바람은 온화했으며 파도 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었지요. 하지만 그의 눈가는 슬픔과 연민에 젖습니다. 한 장면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10살이 채 되어 보이지 않은 소년들이 나체로 바닷가에 줄지어 있었습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바닷속을 유영하는 아이들, 그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소년들이 있었습니다. 목발을 짚은 장애인이었기에 부러워만 하고 있던 것이지요.
 

호아킨 소로야의 ‘해변의 아이들’. 1910년 작품. 프라도 미술관 소장품

 

.한 수도사가 소년 한명한명 바다 속으로 안내합니다. 치료를 위한 해수욕이었습니다. 장애인인 아이들은 잠시나마 물결의 일렁임을 느낍니다. 고된 일이었지만, 땡볕에서도 수도사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도사의 검은 옷 사이로 땀줄기가 비 오듯 흘렀습니다. 먼발치서 지켜보던 사내는 연민과 동정, 숭고와 같은 감정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제가 당신의 모습을 그려도 되겠습니까.”

사내는 이들을 자신의 캔버스에 담아내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유희의 장소인 이 바닷가에,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를 돕는 한 조력자가 주는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습니다. 수도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러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발렌시아의 바다에서 치료차 해수욕하는 소아마비 아이들을 그린 ‘슬픈 유산’. 1899년.

 

화가였던 사내는 빠르게 붓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완성하지요. 제목은 ‘슬픈 유산’(Sad Inheritance). 매독에 걸린 부모로부터 소아마비를 물려받은 아이들을 의미했습니다. 화려한 지중해 바다와 대비되는 아이들의 슬픈 운명에 전 세계는 찬사를 보냈지요.

화가는 스페인의 대표 예술가로 떠오릅니다. 그의 이름은 호아킨 소로야. 스페인 인상주의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 그를 사색합니다. 올해 8월 10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호아킨 소로야. 1909년.

 

부모 없는 아이로 자란 호아킨 소로야

 

호아킨 소로야는 1863년 2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언제나 화창한 날씨가 인간을 포근하게 품어주는 아름다운 도시였지요. 하지만 내면의 날씨는 늘 우중충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가 콜레라 대유행으로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작 2살에 고아가 되었던 것이지요.

소로야와 그의 여동생 콘차는 외삼촌에게 맡겨집니다. 자물쇠 제조공인 외삼촌 부부는 그들을 제법 잘 보살폈지만, 부모의 빈자리를 완전히 메워줄 수는 없었지요.

소로야는 슬픔을 그림으로 소화했습니다. 외삼촌은 그에게 자물쇠 제조를 가르쳐 주려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소로야의 눈은 언제나 캔버스를 향해 있었지요. 재능을 보인 그에게 외삼촌 부부도 결국 지지를 보냈지요. 수도 마드리드에서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 명화를 습작하기도 했습니다.
 

호아킨 소로야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작품 ‘몬텔레온 공원을 방어하는 포병들. 1884년 작품.

 

꽤 재능있는 화가였습니다. 22세가 되던 해에는 이탈리아 로마와 파리에서 유학할 기회도 얻었지요. 마드리드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2등을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몬텔레온 공원을 방어하는 포병들’(1884년)이란 작품이었습니다. 침략자 나폴레옹에 저항하는 스페인 군대를 묘사한 그림이지요. 화가로서 첫발을 디딘 소로야의 그림에서는 다소 진중함이 엿보입니다. 가족사의 비애가 그림에 녹아든 것일 수도 있었겠지요.
 

소로야가 로마에서 머물 당시 그린 ‘미친 사람을 변호하는 호프레 신부’. 1887년 작품이다.

 

로마에서의 공부는 그를 한층 더 성숙한 화가로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르네상스 화가의 작품을 직접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디테일은 정교해졌고, 붓의 놀림은 더욱 거침없어졌습니다. 그의 그림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사랑을 찾아 발렌시아로 돌아온 소로야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녀가 있는 발렌시아로요.”

약 4년의 공부를 마친 후 그는 스페인으로 귀국을 준비합니다. 예정보다 빠른 귀환이었지요. 17살 때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여인이 그리워서였습니다. 사진관에서 조수로 일하던 당시 알게 된 클로틸데 가르시아 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홀로 사는 삶’을 견디지 못했지요.
 

“사람이 자상해 보이기는 하는데...” 1886년 클로틸데의 사진. 2년 후 그는 소로야와 결혼한다.

 

‘가족’이란 이름은 언제나 소로야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부모의 부재는 또 다른 욕망을 낳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예쁜 아이들을 낳아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꿈을 그는 자주 꾸곤 했습니다. 1888년 그토록 사랑하는 여인 클로틸데와 결혼에 성공합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도 셋이나 낳았지요.
 

검은 옷을 입은 아내 클로틸데.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화폭에 옮기다

 

결혼 후에도 그는 제법 괜찮은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그림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언제나 연민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인 노예’(Trata de blanca)로 불리는 작품이 대표적이지요.
 

기차로 끌려가는 매춘 여성의 현실을 그린 소로야의 ‘백인 노예’. 1894년 작품.

 

좁은 기차 칸에 두건을 머리에 쓴 젊은 여성이 잠들어있는 그림입니다. 검은색 옷을 입은 나이 든 여성은 포주이지요. 숙녀들이 잠에서 깨어나면 그들은 도시 뒷골목에서 돈을 받고 남성을 상대해야 할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스페인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소로야는 날카롭게 그려낸 것이었지요. 물론 팔려 갈 소녀들에 대한 연민도 잊지 않았습니다.
 

두 노년의 어부가 젊은 어부의 상처를 보살피는 모습을 그린 ‘그들은 여전히 물고기가 비싸다고 말했다’. 1894년 작품. 시대상을 잘 묘사한 화가의 사실주의를 느낄 수 있는 작품.

 

소로야를 스페인의 대표 화가로 만든 작품은 앞서 언급한 ‘슬픈유산’(1899년)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해수욕 치료를 받는 소아마비 소년들을 그린 그림이었지요. 그는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발견할 때의 감정을 그대로 적어났지요.
 

‘슬픈 유산’ 소묘.

 

“어느 날 아침 어부들의 스케치를 하고 있을 때, 저 멀리 한명의 사제와 가까운 거리에 벌거벗은 아이들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산 후안 데 디오스 병원의 아이들이었다. 장애인, 정신병자, 나병 환자가 찾는 곳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불행한 사람들의 존재는 나에게 고통스러운 인상을 남겼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불우한 과거를 투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자신과,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의 처지는 닮아 있었습니다. 해수욕으로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의지에서 어린 시절 그림으로 슬픔을 달래보려 했던 자기 모습을 발견했을 테지요.

그림에 담긴 아련함을 당대의 사람들도 느꼈습니다. 1900 년 파리의 만국 박람회에서 대상을 타게 된 배경이지요. 이듬해에는 마드리드 국립 미술 전시회에서 명예 훈장 (medalla de honor)을 수상합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조감도.

 

가족을 예술의 영감으로 삼은 호아킨 소로야

 

예술은 도덕의 경계를 넘어선다고 하지요. 다양한 여성을 만나고, 또 쉽게 질려하면서 그 감성을 미적 감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예술감각을 가지고도 방탕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부인에게는 끊임없는 사랑을, 세 아이들에게는 깊은 애정을 표현했지요. 그의 작품에는 가족이 모델로 서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1895년 호아킨 소로야의 ‘엄마’. 아내 클로틸데가 셋째 엘레나를 낳고 요양하는 모습을 그렸다. 엘레나는 후에 그의 아버지처럼 화가가 됐다.

 

그의 그림 ‘엄마’(마드레)를 보시지요. 새하얀 침대 위에서 어머니가 갓난아기를 사랑스레 쳐다봅니다. 아이는 쌔근쌔근 자고, 산모는 따뜻한 눈길로 아이를 보듬습니다. 아내 클로틸데와 셋째 딸 엘레나가 모델인 작품입니다. 그가 얼마나 가족을 사랑했는지 느껴지시는지요.

아버지의 무한 사랑을 받은 엘레나가 화가의 길을 택한 배경입니다.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 중 가족을 모델로 한 경우가 많았지요. ‘바닷가 산책’, ‘목욕,하베아’도 대표적입니다.
 

“자기야 예쁘게 그려줘. 늘 그랬듯이” 아내 클로틸데를 모델로 한 ‘바닷가 산책’. 1909년 작품.

“아빠, 또 그림 그려요?” 가족들이 해수욕 하는 장면을 묘사한 ‘목욕, 하베아’.

 

스페인식 루미니즘을 구현한 거장

 

“발렌시아의 빛으로 다가간 화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그는 거장의 자리로 올라갑니다. 1900년에 파리 만국박람회를 다녀온 뒤, 그는 후기 인상주의의 화법을 체화하기 시작했지요. 자연의 빛을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는 ‘외광회화’를 스페인식으로 소화해낸 것이었습니다. 스페인 지중해의 태양이 그의 캔버스에서 다시 빛났습니다. 스페인식 루미니즘이 꽃피기 시작합니다.
 

소로야의 1903년 작품인 ‘해변의 아이들’. 빛을 유려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이름이 높다

‘소녀’. 1904년 작품.

‘말의 목욕’.(1909년)

 

그의 대표작 ‘해변의 아이들’ 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발렌시아 앞바다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마치 지금이라도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은 느낌을 자아냅니다. 아이들 위로 내리쬐는 태양 빛은 또 얼마나 생생한지요.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초상화를 그릴 정도였으니까요.
 

소로야가 그린 미국 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초상화.

 

그림 속에서 살다가 그림으로 죽다

 

모든 예술가에겐 자신까지 집어삼키고 마는 ‘역작’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소로야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지요. 1911년 미국 히스패닉 협회가 그에게 작품을 의뢰합니다. 본토 스페인을 그리워할 이민자를 위한 그림이었지요. ‘스페인의 비전’이었습니다. 어느 한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지역의 풍경을 그려달라는 쉽지 않은 소명. 소로야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서울 아니 마드리드에서 온 화가 양반이래.” 토속적인 장면을 자신의 색감으로 구현한 ‘스페인의 비전’ 중 하나인 ‘카탈루냐의 물고기’.

 

소로야는 엉덩이가 무거운 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려냈지요. 고관대작과 귀족들의 풍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시장과 어물전에서 땀내 나는 서민들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전통 의상을 입고 서로의 풍속을 즐기는 남정네들과 여인들이 대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냄새 나는 그림입니다.
 

사람 냄새가 나는 ‘아야 몬테’. 이 역시 ‘스페인의 비전’ 중 일부다.

 

위대한 작품은 때론 예술가를 무너뜨리곤 한다지요. 이 경우도 그렇습니다. 첫 의뢰를 받은 지 8년 만에 완성한 그 작품을 그린 뒤로 소로야는 시름시름 앓고 있었지요. 그 와중에도 그는 가족들의 그림을 그리며 이따금 행복을 찾았습니다. 그에게 가족이란 삶의 근원이자, 행복의 기원이었던 셈입니다.
 

“화가 양반, 그림 그만 그리고 여기서 춤이나 한판 추세.” 아라곤 지방 민속 무용을 묘사한 ‘라 호타’.

스페인의 비전 중 하나인 ‘카스티야 빵의 향연’.

 

‘스페인의 비전’을 완성한 다음 해인 1920년. 그가 뇌졸증으로 쓰러진 것이었지요. 3년 뒤인 그는 마지막 숨을 거뒀습니다. 물론 그의 옆에는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가족들이 함께였지요.
 

눈부신 태양만큼이나 빛났던 소로야

육신은 스러졌으나, 이름은 영원히 남습니다. 가족들은 그의 이름이 평생 스페인 사람들에게 기억되도록 애썼습니다. 소로야의 집과 작품들을 스페인 정부에 기증한 것이었지요. 1932년 소로야 박물관의 시작이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소로야의 시원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즐비하지요.
 

“사랑하오, 내 생이 다할 때까지.” 호아킨 소로야와 아내 클로틸데는 소울메이트 그 자체였다. 1922년 사진을 찍은 뒤 다음 해 소로야는 눈을 감았다. 아내 클로틸데의 품속이었다.

 

올해 8월 10일은 호아킨 소로야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스페인 전역에서는 그를 기리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곳에 직접 가긴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나라 푸른 바다의 윤슬에서 그의 조각을 발견합니다.
 

마드리드 소로야 박물관. 생전 소로야가 가족들과 함께 머물던 곳이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햇살을 담아냈던 그의 솜씨가 떠오르는 뜨거운 여름입니다. 그의 그림만큼이나 아름다웠던 가족을 향한 사랑, 인간을 향한 연민도 함께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호아킨 소로야의 자화상. 1909년.

 

<네줄요약>

ㅇ호아킨 소로야는 스페인식 인상주의 화가로 명성을 높였다

ㅇ그의 작품에는 약자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매독 후유증을 앓는 아이들, 매춘 여성이 대상이었다.

ㅇ2살 때 부모를 잃었던 그는 가족을 향한 사랑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ㅇ난봉과 방종을 예술의 동력으로 삼았던 다른 화가들과는 달랐던 셈이다.

<참고문헌>

ㅇ호아킨 소로야, 바다, 바닷가에서, 에이치비프레스, 2020년.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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