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영화처럼 필사적 생존 몸부림… “미국은 어딨나”

지난 8일(현지 시간) 하와이 라하이나의 유서 깊은 와이올라 교회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AP연합

100여 년 만에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 참사에서 미국 정부의 미숙한 구호 조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경보 작동이 이뤄지지 않는 등 인재 논란이 휩싸인 가운데 후속 대응도 부실해 미국의 재난 대비가 심각한 구멍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라하이나를 파괴한 산불이 발생한 지 며칠 동안 근처에 머문 주민들은 연방 및 지역 기관보다 민간 자원봉사자들이 훨씬 더 생명줄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며 “많은 이재민은 지역 사회 지인들 집에서 지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공원에서 잠을 잤다”고 보도했다.

화재로 마우이섬 일대가 정전되면서 생존자들은 고립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NYT는 “주민들은 냉장고나 전자레인지 등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휘발유, 식수, 음식 등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며 “구호품을 얻기 위해 교회 단체나 지역 사회 단체, 자원 봉사자들에게 의지했다고 전했다.
 

구호품 수송에 참여한 마우이 중부 키헤이 주민인 폴 로메로 씨는 “지역사회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쏟아지고 있다”며 “우리 ‘오하나’(가족을 의미하는 하와이 원주민어)를 지원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있지만, 민간 물품은 고갈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세금을 받는 정부의 대응은 놀라울 정도로 한심하다”며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라하이나의 북쪽에 있는 호노코와이 마을에서 휘발유를 나눠주던 애슐리 얍씨도 “이 휘발유는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마련했다”며 “정부는 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하와이 적십자사는 이재민을 위해 2900명의 숙박을 제공했는데, 마우이 당국은 1400명 이상의 주민이 긴급 대피소에 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NYT는 “마우이 주민들은 다른 곳 주민이 제공하는 식사나 스팸 등을 환영했고, 정부 제공은 너무 부족하다고 한탄했다”며 “(실종자) 수색이 계속되는 동안 마우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고, 어떤 형태의 공식 지원이 가능한지 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마우이 현지에서는 관계 당국이 산불 대응 과정에서 경보 사이렌을 울리지 않으면서 당국의 부실 대응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민 지원을 위한 후속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마지 히로노 상원의원은 “경고가 울리지 않은 것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임시 주택과 수색 및 구조 노력이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하와이 당국자들이 산불 위험을 과소평가했다는 정황도 확인되고 있다. CNN 방송은 주 당국 및 지역 당국의 재난계획 문건을 분석한 결과, 하와이 당국자들이 산불 대응에 대한 자원 부족을 인정하면서도 산불 위험은 과소평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마우이섬에서는 지난 8일 시작된 산불로 해변까지 불길이 번지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하와이주 라하이나 카운티는 전날 홈페이지를 통해 사망자가 최소 93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수색이 진행되면서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존 펠레티에 마우이 카운티 경찰국장은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DNA 샘플을 제출할 것을 촉구하며 “너무 심하게 손상된 경우 확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재난관리국(FEMA)은 직원 250명가량을 하와이에 배치했다. 하와이주 방위군은 지역 안전과 보안을 지원하기 위해 200명을 추가 배치하기로 했다. 디앤 크리스웰 FEMA 국장은 현장을 둘러본 뒤 “종말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며 “지반이 약해져 수색팀들이 재해 지역을 다니는 데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