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낙동강 녹조... 보 수문 개방으로 자연성 회복 시작해야
▲ 올해 6월 17일 발생한 낙동강의 심각한 녹조. 대구 달성군 구지면 낙동강.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지난 5월 24일은 낙동강에서 녹조 띠가 처음 발견된 날이다. 보통 녹조 띠는 6월 중순을 넘어가서 발견되곤 했다. 지난해엔 6월 19일 첫 녹조 띠가 발견되었으니 올해는 약 한 달가량 녹조 발생 시기가 빨라진 셈이다. 시기도 빨라졌지만 그 양상도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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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경이 되자 녹조는 예년 8월 수준으로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녹조가 절정을 이루었던 예년 8월 수준의 녹조가 올해는 벌써 6월에 발생했다. 걸쭉한 곤죽 형태의 녹조가 곳곳에서 목격됐다. 활동가들 사이에선 올해 녹조가 녹조 대발생 직전까지 간 2018년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달 이상 빨라지고 점점 심각
환경 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펄스 방류를 시작으로 인위적인 물 흐름을 만드는 수류장치 가동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녹조 저감 방안들을 동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심각한 녹조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축산 분뇨였다.
무분별하게 방치된 축산 분뇨가 결국 비가 오면 빗물과 함께 강으로 유입돼 녹조를 심화한다는 진단이었다. 심각한 녹조의 원인자로 축산 농가를 지목한 것이다. 그때부터 축산 농가에 대한 대대적 단속이 시작됐다. 그런데도 녹조는 점점 심화했다.
진단이 잘못된 것이다. 녹조의 원인 물질 중 하나인 인의 농도(기준 농도로 0.03ppm)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녹조는 발생하게 되어 있다. 즉, 강에서는 아무리 축산 농가를 단속해 인 농도를 낮추어도 산간 계곡 수준으로 인 농도를 낮출 수는 없다.
녹조의 발생 요건은 크게 세 가지다. 총인과 같은 영양염류(오염원)와 수온과 유속. 총인 농도는 1300만 명이 살아가는 낙동강에서 아무리 농도를 낮추어도 산간 계속 수준으로 낮출 수 없기 때문에 이 방안은 처방으로 안 맞는다. 수온도 마찬가지다. 수온은 햇볕 때문에 올라가는 것으로 이는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배를 타고 들어가서 직접 마주한 낙동강의 심각한 녹조. 지난 6월 17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의 낙동강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는 유속이다. 낙동강에 8개 보가 들어서면서 평균 유속이 과거보다 10배나 느려졌다. 즉 육안으로 확인해 보면 강의 흐름이 없다. 거의 흐르지 않는 정체된 수역으로 바뀐 것이다.
유속을 바꾸는 것이 녹조의 심각한 창궐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인데 정부는 엉뚱하게 영양염류인 인에다 초점을 맞추고 애먼 축산 농가 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진단과 처방이 잘못됐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증됐다. 6월 중순의 이른 심각한 녹조를 잠재운 것은 바로 하늘이었다. 6월 말부터 장마로 폭우에 가까운 비가 내리면서 낙동강 보의 수문이 일제히 열렸고 강의 유속이 빨라졌다. 그로 인해 녹조는 사라졌다.
장마 이후 낙동강 보의 수문을 닫으면서 7월 말 녹조 띠가 다시 목격됐다. 그러다 태풍 카눈이 뿌린 비로 다시 녹조는 사라졌다. 태풍 카눈 이후 수문이 다시 닫혔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녹조가 창궐할 것이다. 올해는 이상 고온 현상까지 겹쳤으니 겨울까지 길게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충격적인 결과
낙동강에서 녹조가 이렇게 문제가 된 것은 2012년 여름부터다. 녹조는 심각했고 4대강사업의 대표적 부작용으로 언론에 연일 오르내렸다. 그전까지는 낙동강에서 녹조가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물론 낙동강 하구나 일부 정체된 수역에서 녹조가 생기기도 했지만 낙동강 본류 전체가 녹조로 뒤덮이지는 않았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 합천창녕보 상류에 강 전체가 완전히 녹조로 뒤덮였다. 낙동강 녹조의 실체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녹조가 사회 문제가 된 이유는 강물을 단순히 녹색으로 바꾸어 놓은 것을 넘어 녹조에 치명적인 독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독이 낙동강에서 만들어지고, 그 낙동강은 1300만 영남인의 식수원이란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녹조의 독성은 외국에서 연구된 결과물과 일본의 녹조 전문가인 다카하시 토루 교수와 일본 신슈대의 박호동 교수 같은 분을 통해 알려졌다. 국내 학자들이 아니어서인지 녹조의 심각성이 덜 알려진 상황에서 2011년 부경대 이승준 교수가 나타났다.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가 소개한 이 젊은 학자에 의해 녹조 독의 실체가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이지영 교수 밑에서 10년 이상 녹조 연구를 해온 이 젊은 학자는 국내로 들어와 낙동강네트워크,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녹조 독소의 실체를 알려나갔다.
▲ 녹조가 창궐한 강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있는 이들. 녹조 독이 에어로졸로 날리는 만큼 위험하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이 교수는 미국에서 공인된 방법으로 낙동강 녹조의 독소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그대로 공개했다. 낙동강 원수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물을 정수한 수돗물에서도, 그 물로 농사지은 농작물에서도, 심지어 낙동강 공기에서도 녹조 독이 검출되었다.
소양호 녹조와 낙동강 녹조
이 심각한 녹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낙동강 수질 문제의 핵심이다. 낙동강은 영남인의 식수원이자 농업용수의 원천이다. 그런 용수가 녹조 독으로 오염돼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잘못된 진단과 그에 따른 엉뚱한 처방으로 일관할 뿐 녹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자세도 의지도 없다. 낙동강 녹조의 근본 원인은 바로 보로 인한 강의 정체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 지난 10년간 입증된 사실이다.
4대강사업 이전에는 낙동강 녹조가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없다는 사실과 낙동강보다 수질이 더 나쁜 지천에서는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 두 가지 사실로 설명이 가능하다.
강의 흐름을 되찾아 낙동강의 자연성을 되살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낙동강 녹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낙동강 보의 수문을 상시 개방하거나 낙동강 보를 철거하는 것 이외에 낙동강 녹조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보 해체가 당장 어렵다면 낙동강 보의 수문이라도 열어야 한다. 그래야 강이 흐르고 수위가 낮아지면서 모래톱이 드러나고 습지가 생겨나 강의 자정 작용에 의해 녹조가 사라지게 된다. 먼저 수문을 연 금강과 영산강에서 증명이 된 진실이다. 수문을 연 금강에서 남조류 세포 수가 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금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애먼 축산 농가 때려잡을 것이 아니라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 수 있도록 취·양수장의 구조를 빨리 개선해야 한다. 수문을 열어 낙동강의 수위가 내려가더라도 수돗물 원수 취수와 농업용수 양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취·양수장 구조가 개선되면 언제라도 수문을 열어둘 수 있고 그로 인해서 낙동강의 자연성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영주댐의 심각한 녹조. 영주댐의 녹조는 장마도 태풍도 막지 못했다. 이런 물로 낙동강 수질 개선은 요원하다. 목적을 상실한 영주댐 탓이다. 지난 8월 5일 촬영.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긴 장마와 태풍 카눈이 물러간 지 한 달가량이 지났다. 태풍 때문에 열렸던 보의 수문이 다시 닫히면서 낙동강은 다시 흐르지 않는 강으로 변했다. 흙탕물인 낙동강 물에서 부유물이 서서히 가라앉을 것이다. 낙동강에서 흙탕물이 가라앉을 그 시간만 지나면 다시 녹조가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영남인들을 위협할 것이다. 도대체 영남인들은 언제까지 이런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이번 여름에 소양호에서 녹조가 발생했다. 언론이 연일 소양호 녹조 소식을 보도했고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돼 녹조를 걷어냈다. 왜 그런가? 소양호가 바로 수도권의 식수원이기 때문이다.
낙동강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영남인은 2등 국민인가? 영남인들이 2등 국민이 아니라면 정부는 하루빨리 낙동강 녹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여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루빨리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여는 것이 낙동강의 녹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첩경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지난 15년 동안 낙동강 현장을 기록해오고 있다. 이 기사는 <함께사는길> 9월호에도 함께 실렸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