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할권 주장하며 300m 부표 장벽 설치
필리핀, '어부 변장' 해안경비대 동원해 제거
25일 어부로 변장한 필리핀 해상경비대원이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 주변 수중에 중국이 설치한 부표 장벽의 밧줄을 칼로 끊어 내고 있다. 중국은 스카버러 암초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최근 이 해역에 약 300m 길이의 부표 장벽을 설치했고, 필리핀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필리핀 해상경비대 제공·AP 연합뉴스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필리핀명 '바조데마신록') 주변의 '부표 장벽'을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 간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주권적 조치"라며 부표 장벽을 설치해 필리핀 어민들을 내쫓았다. 이에 필리핀은 "어민 생계의 문제"라며 해당 부표 장벽을 강제 철거하는 식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이 '영토 주권' 주장을 내세워 위력 과시에 나설 경우, 미국과 중국 간 군사적 대치로 확전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필리핀 해안경비대는 전날 중국이 스카버러 암초 주변 해상에 설치한 해상 부표 장벽을 강제 철거했다. 로이터통신은 "어부로 변장한 필리핀 해안경비대원들이 작은 어선을 타고 부표 장벽에 접근해 (부표들을 묶은) 밧줄을 자르고 닻을 제거했다"고 전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처였다.
어부로 변장해 수중 침투..."가용 수단 총동원해 철거"
지난달 22일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안경비정이 필리핀 군용 물자 보급선 한 대를 막아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필리핀 해경은 지난 22일 해양 순찰 도중 스카러버 암초 주변에서 부표 장벽을 발견했다. 중국 해경선 3척이 부표들을 밧줄로 이어 약 300m 길이로 설치한 해상 장벽이었다. 에두아르도 아노 필리핀 국가안보자문관은 24일 성명에서 "중국이 설치한 장애물은 우리 어민들의 권리를 침해했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철거에 나서겠다"고 밝혔는데, 이튿날 곧바로 실행에 나선 것이다.
중국은 부표 장벽 설치에 대해 "필리핀 측의 불법 침입 때문에 이뤄진 조치"라고 반박하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황옌다오는 중국의 고유 영토로, 중국은 그 부근 해역에 대해 명백한 주권과 관할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스카러버 암초는 필리핀 본섬인 루손과 중국 하이난섬에서 각각 240㎞와 900㎞씩 떨어져 있다. 거리상 필리핀과 가깝지만, 중국은 관할권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주변 해역에 천연가스 5,600억㎥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남중국해의 보물섬'으로 불린다.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위한 관문 격인 바시해협과도 가까워 군사적·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는 각국이 해안가 370㎞ 구역 내에서 천연자원에 대한 관할권을 지닌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중국은 남중국해에 일방적으로 그은 9개 선(구단선) 이내 90%의 영역이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2016년 국제상설재판소의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필리핀 어선 접근을 방해하고 있는 상태다.
"갈등 격화할 경우 미중 간 대치로 확대"
20일 중국 해양경비대 선박이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 주변 해역을 순찰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중국과 필리핀은 곳곳에서 영유권 갈등을 빚어 왔다. 중국 측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쏘는 등 물리적 충돌도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필리핀이 중국의 시설물 강제 철거에 나선 건 꽤 이례적이다. 중국의 거친 반발이 예상된다.
천샹먀오 중국 남중국해국립연구소 연구원은 SCMP에 "스카버러 암초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중국과 필리핀 간) 갈등이 고조되면 결국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5월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방미 당시 "필리핀은 동맹 이상의 가족이다. 어디에서든 우리는 항상 필리핀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친중 성향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6년 중단된 미국·필리핀 간 남중국해 공동순찰 작전은 올해 말 재개될 예정이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