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충돌 후 아제르바이잔 장악
학살 공포에 아르메니아계 대피
이틀간 6000명 넘게 빠져나가
아제르 우방 지지 속 편입 시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25일(현지 시간) 트럭에 올라 국경 도시 코르니조르로 대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제르바이잔이 영토 분쟁 지역인 ‘캅카스의 화약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일대를 장악하자 ‘인종 청소’ 공포에 휩싸인 현지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 중 수백 명이 대규모 폭발 사고로 다치면서 혼란이 한층 가중되고 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은 최대 우방인 튀르키예와 정상회담을 하며 이 지역을 자국 영토로 복속하는 ‘굳히기’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5일(현지 시간) AP·로이터·AFP 통신 등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정부는 이날 저녁 현재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민 최소한 6650여 명이 아르메니아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빠져나가 아르메니아에 입국한 주민들의 규모는 이날 오전 1시 1850명에서 오전 8시 4850명으로 급증했고, 이후에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중심 도시 스테파나케르트에서는 많은 주민이 소지품만 챙긴 채 트럭과 버스 등에 간신히 몸을 싣고 빠져나오느라 거리가 혼란에 휩싸였다.
아르메니아에 도착한 난민들은 자신들이 평생을 살아온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지역의 역사가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체념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가운데 스테파나케르트 외곽의 한 주유소에서는 탈출하는 주민들을 태운 차들이 몰린 가운데 연료 탱크가 폭발해 200명 이상이 부상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불명확하지만, 자치지역 당국에 따르면 탈출하려는 주민들이 주유소에 기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주유하러 줄줄이 차를 대고 기다리던 도중에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과 난민들을 둘러싼 인도주의적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서맨사 파워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처장은 이날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를 만나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겠다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에 파시냔 총리는 파워 처장에게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에 대한 인종 청소 과정이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는 매우 비극적인 사실”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이날 우방인 튀르키예와 정상회담을 열고 분쟁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의 통제하에 재통합하는 데 뜻을 같이하며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자국 영토로 다지는 작업을 진행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이날 오후 아제르바이잔 나히체반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만났다. 두 정상은 회담 후 공동 회견에서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인도적 지원물품을 보내기 시작했고, 이는 인종과 관계 없이 이 지역 주민들이 아제르바이잔 시민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내 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난 19일 나고르노-카라바흐 일대에서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 군대와 무력 충돌이 빚어진 후 신속하게 이 지역을 사실상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아르메니아계 주민 최소 200명과 아제르바이잔군 수십 명, 러시아 평화유지군 병력 5명이 숨졌다고 영국 BBC 방송이 전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국제법상 아제르바이잔 영토지만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르메니아계가 분리독립을 요구해왔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후 양측이 두 차례 전쟁까지 벌여 이 지역은 캅카스의 화약고로 불린다.
그러다 지난 19일, 아제르바이잔이 지뢰 폭발로 인한 자국민 사망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이 지역을 공격했고 아르메니아계 자치 세력은 하루 만에 휴전을 받아들였다.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