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약 사려고 ‘투잡’ 뛰고 있습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by 민들레 posted Sep 30,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위고비 신드롬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사는 직장인 티나 마리 포터(49)는 최근 ‘투잡’을 시작했다. 월 100만 원이 넘는 ‘약’을 사려면 어쩔 수 없었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사는 조던 존스(30)도 같은 이유로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외식을 줄이고, 식료품을 살 때는 영수증을 꼼꼼히 살피는 중이다. 약값이 비싼 탓에 남자친구까지 나섰다. 그의 남자친구는 최근 근무시간을 늘려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포터는 “(약을 복용하고) 인생이 바뀌었다”면서 “비용이 정말 많이 들지만, 덕분에 더 건강해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 약을 구하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이하 노보)’가 개발한 비만치료제 위고비(Wegovy) 이야기다. 주사 1대 값이 45만 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지만, 역대 가장 좋은 비만치료제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위고비를 사기 위해 일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소셜미디어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위고비는 마커펜 모양의 주사다. 복부나 허벅지, 팔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 방식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놓으면 되고, 한 달 치인 주사기 4개를 한 세트로 판다. 위고비 한 세트는 미국에서 1350달러(약 180만 원)에 달한다.

한 달에 180만 원이 대중적인 가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입소문을 빠르게 탔다. 1년 4개월(68주)간의 임상시험에서 위고비를 맞은 참여자들은 체중이 평균 15% 줄었다. 대상은 과체중(BMI 27∼29.9)이면서, 심혈관계 질환 등 한 가지 이상의 체중 관련 질환이 있는 환자들이었다.

지난달 노보는 위고비가 ‘비만뿐 아니라 심장마비,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20%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덴마크의 한 병원 연구진이 위고비의 주요 성분을 복용한 사람들의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낮은 것을 발견했다.‘위고비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러스트 김보근 기자 [email protected]
 

● “단식, 그리고 위고비”

사실, 비만치료제가 등장한 지는 꽤 됐다. 위고비는 2021년에 미 식품의약품(FDA)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다. 위고비와 용량만 다른 ‘오젬픽’은 이보다 4년 전인 2017년 FDA 승인을 받았다. ‘삭센다’라는 비만 주사는 2014년부터 판매하고 있다.

다만, 오젬픽은 애초에 당뇨약으로 승인을 받았고, 삭센다는 매일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위고비가 살을 더 많이 빼주는 것도 맞다. 이 때문에 위고비는 출시 5주 만에 삭센다 4년 치 판매량을 돌파하기도 했다. (위고비와 오젬픽, 삭센다 모두 노보의 치료제다)

그런데, 최근 치료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폭증했다. 노보가 위고비의 유럽 출시 계획을 늦출 정도. 약 구매 문의가 끊이지 않자 FDA는 의약품 실시간 상황판에 ‘수요 증가로 물량 부족. 언제 해소될지 알 수 없음’이라고 안내했다.

품귀 현상의 배경에는 유명인들의 ‘간증’이 있었다. 모델 킴 카다시안을 비롯해 여러 할리우드 스타들이 위고비를 맞는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치료가 필요한 비만 환자뿐만 아니라 미용 목적의 구매까지 몰린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한 X(구 트위터) 사용자가 지난해 10월 머스크 에게 “13㎏을 감량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머스크는 이렇게 답했다. “단식, 그리고 위고비(Fasting And Wegovy).”
 

동아일보 DB
 

● 날씬해지기 vs. 살아남기

부유한 백인 밀집 거주 지역으로 뉴욕에서 비만율이 최하위인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도 위고비 열풍이 불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미 뉴욕시의 처방 데이터를 분석해 “어퍼이스트사이드 주민 2.3%가 위고비 등 비만치료제를 처방받았다”고 전했다. 비만율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브루클린 처방 비율의 2배 수준이었다. 위고비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비만치료제가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던 것.

뉴욕 부촌의 생활상을 주로 집필하는 작가 질 카그먼은 “요즘 부자들은 위고비를 ‘살 빠지는 비타민’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만치료제를 흔히 먹는 ‘다이어트 보조제’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약값 부담은 부자들이 덜하다. 공공 건강보험인 메디케어는 당뇨병 치료가 아닌 살을 빼기 위해 비만치료제를 사용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반면 부유층이 보통 가입하는 민간 의료보험은 체중 감량이 목적일 때도 보험 처리를 해준다.

비만치료제는 복용을 중단하면 체중이 다시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 살이 빠지는 것을 경험하면, 끊기 어려운 구조다. 주사를 맞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고정 수요는 증가하게 된다. 공급이 크게 늘지 않는 한 품귀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만치료제가 절실한 환자들은 약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블룸버그는 “콜로라도주에 사는 한 여성은 주사를 구하려고 약국 100여 곳에 전화를 돌렸고, 그의 남편이 2시간 반을 운전해서야 겨우 0.25mg(오젬픽 1회 분량)을 받아올 수 있었다. 일부는 약을 구하지 못해 체중이 다시 늘었다”며 “치료가 급한 환자들이 페이스북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고 지난달 전했다.

최근 들어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까지 구하기 어려워져 당뇨병 환자들도 괴로워하고 있다. 살을 빼려는 사람들이 위고비가 구하기 어려워지자 오젬픽을 대신 처방 받았기 때문이다. 미 헬스케어 데이터 분석업체 코모도헬스에 따르면 지난해 오젬픽을 구매한 사람 중 40%는 당뇨병 환자가 아니었다. 코모도헬스는 “체중 감량 목적으로 처방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만치료제 열풍에 관한 내용은 ‘글로벌 포커스’ 기사 참고.
‘역대 최고 효능’ 비만치료제, 美-유럽서 열풍…“미용 목적으로 쓰면 득보다 실”[글로벌 포커스]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915/121203446/1
 

비만치료제 위고비
 

● 루이비통 넘어선 회사

올해 2분기 위고비 판매액은 7억3500만 달러(약 9800억 원)에 달했다.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6배다. 위고비 인기에 힘입어 노보 주가는 2021년 이후 4배 이상으로 올랐다. 올해만 주가가 40%가량 뛰었다.

위고비 덕분에 노보는 유럽 기업 시가총액 최고액을 찍었다. 노보는 4일(현지 시간) 덴마크 증시에서 시가총액 4280억 달러(약 572조 8800억 원)로 세계 최대 명품 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기업 가치(약 4190억 달러)를 제치고 유럽 증시에서 처음 1위를 차지했다. 국내외에서 ‘비만주사가 명품 가방을 이겼다’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잘 만든 비만 치료제 하나가 국가 경제까지 이끌고 있다. 노보 시총은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마저 추월했다. 덴마크 정부는 지난달 말 제약 산업의 성장을 주요 요인으로 꼽으며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6%에서 1.2%로 올렸다.

국가 경제에서 노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자 덴마크 경제학자들은 노보를 제외한 경제 통계를 내야할 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덴마크는 인구 600만 명으로 경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전 세계 아이들의 블록 장난감인 ‘레고’, 해운회사 ‘머스크’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다수 있다. 그런데도, 노보가 덴마크 경제에 미친 영향이 훨씬 컸다.

요나스 단 페테르센 덴마크 국가통계국 수석 보좌관은 “지난해 덴마크 경제 성장의 3분의 2를 제약 업계가 차지했다”고 밝혔는데, 덴마크 제약 업계에서 노보 매출은 2위 제약 업체 ‘룬트벡’의 10배가 넘는다. 블룸버그는 “노보의 성장이 없었다면 덴마크 경제는 1년 반 동안 정체되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보의 활약 때문에 덴마크 기업들이 기(氣)를 못 편 점도 있다. 배가 아파서가 아니다. 각국에서 치료제 구매가 몰리다보니 화폐(크로네) 가치가 상승해 기업 경쟁력에 압박이 심해진 탓이다. 이 때문에 일부 경제학자들은 덴마크에 ‘네덜란드병’이 도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네덜란드병은 네덜란드가 1960년대 천연가스를 수출하면서 급격하게 소득이 증가했지만 화폐가치가 오르면서 여러 산업들이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을 의미한다.

한 회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핀란드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때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가 쇠락하면서 핀란드 경제 전반이 침체한 것을 떠올린 것이다. 제약업 특성상 일자리 창출이 많지 않다는 점도 덴마크의 고민 중 하나다.
 

동아일보 DB
 

● 당뇨약에 진심인 회사

사실, 노보는 비만주사 이전에 당뇨병 치료제에 진심인 회사였다. 1923년 창립한 이후 무려 100년 동안 당뇨약 개발에 전념해왔다. (얼마나 열정인지 코펜하겐 본사 건물을 인슐린 분자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고 한다)

1922년 코펜하겐대 교수이자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아우구스트 크록은 예일대에 강연하기 위해 부인 마리 크록과 미국을 찾았다. 미국 방문 중에 캐나다 연구진을 만난 부부는 1921년 발견한 호르몬인 인슐린으로 당뇨병을 치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아내 마리 크록이 제1형 당뇨병 환자 주치의이었고, 본인이 제2형 당뇨병 환자였기 때문이다. 부부는 인슐린을 개발한 캐나다 토론토대로 건너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인슐린을 생산, 판매할 수 있는 허가를 따냈다. 부부는 1923년 ‘노디스크 인슐린연구소’를 차렸다. (1925년 덴마크에서 당뇨병 치료제 기업 ‘노보 테라퓨티스’가 설립됐는데, 둘은 경쟁하다가 1989년 합병했다. 그래서 ‘노보 노디스크’가 탄생했다)

이 회사는 기술 혁신을 거듭하면서 1978년 유전자 재조합으로 인간 인슐린을 세계 최초로 생산했다. 1985년에는 최초의 펜 형태 주사제를 내놨다. 이후, 당뇨병 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노보가 수혜를 봤다. 2000년 1억5000만 명이던 전 세계 당뇨병 환자 수는 5억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노보는 현재 전 세계 인슐린 시장의 45.7%를 차지하는 당뇨병 치료제 업계 1위 업체다.

노보 직원 중에서도 당뇨병 환자이거나 환자의 가족인 경우가 적지 않다. 2017년 노보 최고경영자(CEO)였던 라스 프루어가르드 예르겐센의 아버지, 부사장 겸 세포치료 R&D 책임자인 제이콥 스텐 피터슨의 어린 딸도 당뇨병을 앓고 있다. 피터슨은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20년 동안 일했다”며 “딸이 20살이 되기 전에 치료를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노보의 비즈니스 전략에 관한 내용은 ‘딥다이브’ 기사 참고.
덴마크의 노키아? 100년 제약사의 놀라운 도약과 걱정[딥다이브]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822/120812748/1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노보 본사. 노보 홈페이지 캡처
 

● 굶주린 쥐

이전에는 노보의 비즈니스가 당뇨병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노보가 당뇨약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위고비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비만치료제가 당뇨병 약 개발 과정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노보는 당뇨병 임상시험 도중 참가자들의 체중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알아챘다. 당뇨병 치료제가 체내 호르몬인 ‘GLP-1(혈당조절 호르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밥을 먹으면 GLP-1이 장에서 생성돼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 뇌에는 포만감을 느끼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비만치료제는 GLP-1처럼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 체내 혈당을 줄이고 뇌에 신호를 보내 배가 부르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간에선 포도당 합성을 감소시키고, 위는 음식을 천천히 소화하게 된다. 음식이 위장에 오래 머무는 만큼 포만감을 느끼고 덜 먹고 싶게 된다. 비만 주사는 배고픔을 조절하는 뇌의 시상하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첫 발견은 ‘굶주린 쥐’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초 노보 연구원들은 당뇨약 개발을 위해 GLP-1을 생성하는 췌장 세포 종양을 실험용 쥐에 이식했는데, 쥐가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험 대상 쥐들이 스스로 굶어 죽는 모습이 의아했다. 노보 연구진인 로떼 비예르 크누센은 “당시 ‘식욕 조절’에 미치는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확신했다”고 했다.

연구진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GLP-1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주사를 안 맞은 사람보다 뷔페에서 12% 덜 먹는다는 결과를 얻었다. 노보는 당뇨약을 비만주사로 만들었다. 화이자가 심장병 약으로 만들던 ‘비아그라’를 발기부전 치료제로 만든 것과 유사하다.

노보의 위고비는 ‘우연히 발견한 행운’인걸까? 그런 시각이 많지만, 비만치료제 개발은 쉽게 도전할 만한 분야는 아니었다. 그동안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은 비만치료제가 효과적이지 않고,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1934년 여러 제약사들이 ‘디니트로페놀(DNP)‘이라는 약물을 다이어트 약으로 판매했는데, 이 약의 독성 때문에 약 2만5000명이 시력을 잃었다. 미 정부는 사용을 금지했다. 1990년대에는 ‘다이어트 한약’으로 ‘마황(Ephedra)’을 사용했다.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2004년 사용이 금지됐다. 이후, 리모나반트와 시부트라민 같은 제제가 체중 감소 약으로 처방됐지만 안전성 우려로 미국에서 판매가 중단됐다.

노보의 비만주사 개발은 고도화된 전문성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뇨병을 연구하며 발견한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노보의 (비만주사) 성공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창조하기보다, 고도로 전문화한 비즈니스의 인접한 영역에서 혁신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입증하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DB
 

● “게으른 게 문제 아닌가요?”

노보에서 비만치료제 개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경영진 설득부터가 쉽지 않았다. 노보는 100년 가까이 한 종류의 치료제만 만들던 회사였다. 1990년 이후 CEO가 3명에 불과할 만큼 안정성을 중시해왔다. 한 마디로, 보수적인 회사라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내부에서도 비만치료제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만큼 비만주사 개발이 쉽지 않아서다.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에서 일했던 독일 헬름홀츠 뮌헨 연구소의 마티아스 초프 박사는 “(비만치료제 개발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라며 “신체에는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상호 작용하는 신경 자극과 호르몬의 중복된 회로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조정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만주사를 개발한 노보에서조차 약물의 작용 원리를 세세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NYT는 “오젬픽과 위고비가 삭센다보다 더 효과적인 이유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왜 일주일에 한 번 주사하는 것이 하루에 한 번 주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체중 감소를 가져올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노보와 일라이 릴리에 자문해 온 미 미시간대 비만 연구자 랜디 실리도 “아무도 GLP-1의 작동 원리를 전부다 이해하진 못했다”고 설명했다.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보다 더 큰 문제는 ‘비만’에 대한 편견이었다. 노보의 임원이었던 리차드 디 마르키 박사는 “제약 업계에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며 “비만을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뇨병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다니엘 드러커 교수는 “GLP-1 연구는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을 줬다”면서 “학회를 신청하면 강연 시간을 맨 마지막으로 잡아줘 많은 참석자들이 공항으로 떠났고 어떤 때는 강연 도중에 강연장을 철거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80, 1990년대 초반까진 거의 텅 빈 강당에서 연설했다”고 덧붙였다.

노보의 일부 경영진조차도 비만이 의지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노보 재단의 CEO이자 최고과학잭임자인 마즈 크로스가드 톰슨은 “최고경영자에게 비만이 단순히 생활 방식에서 오는 질환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는데 반년을 소비해야했다”고 말했다.
 

영화 ‘더 웨일’에서 비만 연기를 한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
 

● 비만은 21세기 신종 유행병?

많은 사람들이 비만을 폭식과 게으름(또는 나태함)의 결과물로 여기지만, 비만도 엄연한 병이다. 운동과 식습관 노력만으로 비만을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연구도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인체의 뇌는 얼마나 많은 지방을 체내에서 운반할지 일종의 ‘설정점(또는 방어 지방량)’을 결정한다”며 “뇌는 사람이 섭취하는 양을 조절해 이 설정 포인트를 유지한다”고 전했다. ‘요요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위고비 같은 비만주사는 뇌의 설정점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WSJ은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비만은 신체의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줄어든 체중을 회복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비만을 의지력보다 생물학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전적인 영향도 있다. 학계에서는 최소 1500여 개의 유전자가 체중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 뉴욕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의 루스 루스 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체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유전자의 변이 조합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유전자 변형을 일으킬 수 있는 식품이 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이에게 체중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NYT는 “미 미시간주 앤아버의 체중 관리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무엘 심슨은 비만과 당뇨병을 앓았던 어머니와 형제들의 운명을 자신도 겪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며 “그들은 모두 신부전증에 걸렸고, 결국 59세의 나이에 각각 숨졌다”고 전했다. 미 미시간대 의대 교수인 에이미 로스버그는 “(비만) 환자에게 ‘의지의 문제’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의학협회는 2013년 비만을 만성 질환으로 분류했다. 비만이 공식적으로 질병이라고 공표한 것. 세계보건기구(WHO)는 2014년 비만을 ‘21세기 신종 유행병’으로 진단했다. 블룸버그는 “비만 관련 건강질환은 236가지에 달한다”며 “비만인 사람은 제2형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2배보다 더(243%) 높고, 심장병과 고혈압을 앓을 확률도 일반 사람보다 각각 69%, 113% 더 높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보 홈페이지 캡처
 

● 글로벌 휩쓰는 ‘비만의 경제학’

전 세계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뚱뚱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 인구는 10억 명을 넘어섰다. 세계비만연맹은 2035년 세계 인구의 절반인 40억 명 이상이 비만이나 과체중으로 분류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공식품 섭취가 늘고,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증가한 탓이다.

비만은 보통 키 대비 체중 비율인 체질량 지수(BMI)를 사용해 측정한다. 25가 넘으면 과체중, 30이 넘으면 비만으로 본다. (예로, 키가 175㎝인 남성은 77㎏ 이상이면 과체중, 92㎏가 넘으면 비만이다)

미국에서 비만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1974년 12%였던 미국의 비만율은 현재 42%에 달한다. 50년 동안 비만율이 2년 연속 감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WHO에 따르면 2020~2022년 미국에서 약 64만 명이 비만으로 목숨을 잃었다.

과체중은 의료비나 근로 시간 감소 및 생산성, 건강 보험, 병가, 수명 단축 등 다방면으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학계는 전 세계 ‘비만 비용’이 2035년 4조 달러(약 5335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 GDP의 2.9% 수준(2019년 2.2%)에 이를 수 있다. 2021년 미 하버드대와 조지워싱턴대 연구진은 비만이 1인당 연 1861달러(약 250만 원)의 초과 의료 비용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비만 관련 지출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살을 빼기 위해 연 2500억 달러(약 337조 원) 가량을 소비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인들은 헬스장과 칼로리를 계산하는 운동 추적 앱, 다이어트 식단 등 체중 감량을 위해 연간 700억 달러(약 94조 원)를 쓴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비만 자체가 거대한 경제력을 지녔다”고 표현했다.

국제학술지 영국의학저널 글로벌 헬스는 비만 인구를 현재보다 5%포인트 낮추면 연 4290억 달러(약 579조 원)를 절감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비만 인구가 더 오래,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도 수치에 고려했다.
 

동아일보 DB
 

● 노키아 아닌, 아이폰의 탄생

제약 업계는 ‘위고비’를 시작으로 비만주사의 사용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치료제가 비만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글에서 “일부 환자가 구토, 설사 같은 부작용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경우 처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비만치료제의 효과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노보 이외에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도 비만치료제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화이자는 위고비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알약 형태의 치료제를 개발했다. 일라이릴리는 위고비보다 감량 효과가 더 큰(평균 20%) 비만치료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조 풀러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 교수는 “(비만 치료제)의 등장은 스마트폰의 등장이나 택시에서 우버로의 전환처럼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비만치료제가 ‘역대 최대 규모의 신약’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 투자사 제프리스는 2031년까지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가 1500억 달러(약 203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2021년 제약사들의 전체 암 치료제 매출이 1850억 달러(약 249조 원) 수준이었다. 비만치료제 시장이 금세 이를 따라잡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러나 몇 가지 우려가 남아있다. 먼저, 비만 약을 어떻게 평생 먹느냐는 지적이다. 비만치료제는 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만 효과를 보인다. 약을 끊는 순간 체중이 다시 늘어난다. 노보가 자체 진행한 두 건의 임상시험에서 비만주사를 중단한 환자들의 몸무게는 1년 이내에 대부분 제자리 근처로 돌아왔다.

제약사는 이에 대해 “비만을 진정성 있게 질병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이 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예르겐센 노보 CEO는 “고도 비만인 환자의 대부분이 비만을 만성 질환이라고 생각한다”며 “고혈압 환자가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혈압이 상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비만을 만성 질환과 같은 시각에서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약에만 의존하게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약으로 쉽게 체중을 줄이면 생활 습관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식단 관리나 운동에 소홀해진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건 역시 ‘돈’ 문제다. 위고비의 정가는 연 1만3600달러(약 1800만 원)에 달한다. 미 비만학회 학술지 ‘비만(Obesity)’은 “위고비의 원가는 월 40달러(약 5만4000원)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연간으로 계산해도 정가에 비해 원가가 턱 없이 낮다. 노보가 약을 지나치게 비싸게 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 보험에 의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의학저널은 메디케어에 가입한 미국 비만 환자 중 10%만 위고비를 복용해도 연 270억 달러(약 37조6000억 원)가 투입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저널은 “현 의료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복제약은 10년 뒤에나 살 수 있다. 위고비의 미국특허는 2032년 만료된다. 위고비는 비만이라는 병의 적절한 답일까, 아니면 또 다른 골칫거리일까.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