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북부 도시 카노의 곡물 상점. 옥수수 등 곡물 가격 폭등 충격이 이 나라 양계업까지 위기로 몰아 넣고 있다. 카노/AP 연합뉴스
[코즈모폴리턴] 신기섭 |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나이지리아 서부지역에서 닭을 키우는 살람 하비브(40)는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한다. 닭들에게 줄 사료 걱정 때문이다. 세계적인 곡물 파동으로 닭 사료인 옥수수 가격이 크게 올랐다. 평소 1t에 20만나이라(약 35만원)던 게 최근 50만나이라 이상으로 치솟았다. 이 때문에 하비브는 닭 사육을 위해 은행 대출을 갚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다. 하비브는 최근 개발 전문 사이트 ‘데벡스’와 한 인터뷰에서 “다음번에 옥수수를 들여올 때는 돈을 대체 얼마나 지불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두번째로 옥수수 생산량이 많은 나라지만, 자급자족하지는 못한다. 2021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각각 4억9190만달러어치와 2억9664만달러어치 곡물을 수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두 나라에서 곡물을 수입하는 게 어려워졌다. 게다가 이 나라 옥수수 주산지인 북부지역의 정국 불안과 홍수까지 겹치면서 옥수수 수급은 더욱 불안해졌다고 데벡스는 전했다.
옥수수값 폭등은 양계업 기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나이지리아 양계협회의 오날로 아크파 사무총장은 “소규모 양계 농가의 90%는 이미 문을 닫았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농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며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이룬 성과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양계업은 나이지리아 농업 생산의 25%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분야여서 일자리 감소 등 경제적 충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양계 농가가 생산하는 달걀은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 때문에 국민의 영양 불균형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니세프(유엔 아동기금)에 따르면 이 나라 인구 2억3천만명의 10%를 넘는 2500만명이 식량위기를 겪고 있는데, 곡물 부족이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존슨 아그베데 아쿠레연방기술대학 교수(축산학)는 “이런 상황 변화 때문에 정말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며 “달걀 생산 감소가 모든 걸 복잡하게 만들었고, 영양 불균형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나이지리아 양계업 붕괴는, 1년7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삶까지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전쟁의 운명을 결정할 권력을 지닌 이들은 이런 현실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지난 3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안보포럼에서 참가자들의 관심은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서방의 무기가 바닥났다는 점에 쏠렸다. 로프 바우어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위원장은 “(무기 보관)통의 바닥이 보인다”며 나토 회원국들에 무기 생산에 속도를 낼 것을 촉구했다. 제임스 히피 영국 국방장관은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국방비를 늘리겠냐”며 서방 각국의 국방비 확충을 촉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권력자들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 ‘전쟁 기획자’가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것이야말로 ‘지구적 평화와 정의’ 실현과 다름없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