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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예루살렘 현장… 정철환 특파원 르포
하마스, 소셜미디어에
여성·아이들 희생 영상 살포
이스라엘도 참상 보도하며
분노 증폭시켜… 피의 보복 악순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곳곳 초토화 - 10일(현지 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최대 도시인 가자시티 중심가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폐허로 변해 있다.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민간인을 잔인하게 살상한 하마스의 만행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극우 민족주의 정책으로 팔레스타인 측을 자극해온 이스라엘 현 정부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이의 휴대폰에서 인스타그램·틱톡·X(옛 트위터)를 지우십시오. 하마스가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악용하고 있습니다.” 10일(현지 시각)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의 학부형들에게 이 같은 공지가 전달됐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습해 전쟁이 발발한 후 소셜미디어에 잔혹한 참상을 담은 이미지가 쏟아지자 텔아비브 교육청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소셜미디어엔 납치된 젊은 이스라엘 여성이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영상, 납치 후 살해된 노인의 사진, 닭장 속에 이스라엘 아이들을 가둬놓고 조롱하는 영상 등이 여과 없이 쏟아지고 있다. 아이와 여성이 희생된 모습을 담은 잔혹한 이미지도 적지 않다. 대부분 게시물은 극심한 공포의 확산을 노리는 하마스 측이 올렸다. IS(이슬람국가) 등 이슬람 테러 조직들이 흔히 써온 수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하마스의 잔인함, 피에 대한 갈증은 테러 집단 IS가 저질렀던 최악의 만행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난했다.

이날 이스라엘 방송들은 가자지구 인근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에 이어 크파르 키부츠에서도 최소 100여 명이 하마스에 의해 학살되고, 참수(斬首)된 여성과 아이들의 시신도 나왔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보도했다.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잔혹한 장면들은 이스라엘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냉정한 대응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묻히는 분위기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완전 포위하고, 매일 백여 건의 폭격을 하고 있다.

오랜 기간 응축돼온, 서로를 향한 뿌리 깊은 증오는 ‘피의 보복’으로 분출되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후 75년간 축적된 보복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알아크사 사원, 이른바 ‘성전산(聖殿山)’이 있는 동(東)예루살렘을 10일 찾았다. 평소엔 성지 순례자들로 붐비던 이곳엔 긴장과 두려움이 뒤섞인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래픽=백형선


“당신들 더 이상 못 들어간다. 여긴 접근 금지다.” 10일 오후(현지 시각)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 입구를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경찰 세 명이 가로막았다. 저지하는 이유를 물으니 “무슬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머뭇거리자 사원 반대쪽을 가리키며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속하지만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통제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7일 아무도 예상 못 했던 중동의 전쟁이 시작된 후 국제 사회는 예고 없는 무차별 포격 직후 민간인을 참혹하게 살해하고 납치한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를 규탄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불안하나마 유지되어 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공존을 하마스가 극단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근 극우 민족주의 정책을 펼치며 팔레스타인을 계속 자극하고,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등 무장 단체에 공격의 빌미를 만들어 준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축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소가 이곳 알아크사다. 알아크사는 동예루살렘 구(舊)시가지 내 있는 14만㎡ 고(高)지대 구역이자, 이곳에 있는 이슬람 사원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마스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포 폭격과 무장 전투원 침투를 단행하면서 작전명을 ‘알아크사 홍수’라고 지었다. 그러면서 공격의 명분 중 하나로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성지를 지속적으로 훼손했다”는 점을 들었다. 예루살렘 한복판의 언덕 위에 있는 알아크사(아랍어로 ‘최고의’라는 뜻) 사원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공통 성지다. 유대교·이슬람교 신자들은 알아크사를 두고 서로를 향한 증오를 거듭 드러내 왔고 이 장소는 언제든 분쟁과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는 ‘화약고’로 여겨졌다.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 양측은 아슬아슬한 타협안을 토대로 갈등을 조절해 왔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알아크사 지역을 방문할 순 있지만 기도와 예배는 하지 못한다는 중재안이었다. ‘제한 없는 성전산 방문’을 원하는 유대교 초정통파와 이스라엘 민족주의 강경파들은 이에 큰 불만을 표출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집권을 위해 극우 성향 정당들과 손을 잡으면서 조마조마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2021년 5월 알아크사 단지에서 바위돔을 배경으로 이슬람교 신자들이 집결해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 1월 극우 정당 출신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의 알아크사 사원 방문 사건은 기폭제가 됐다. 그는 당시 트위터(현재 ‘X’)에 “사원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돼 있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그들(아랍인)에게 이해시켜라”고 올렸다.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예정돼 있던 네타냐후 총리와의 정상회담마저 전격 취소했다. 뒤이어 지난 4월 이스라엘 경찰의 사원 진입은 팔레스타인 강경파에 들고 일어날 명분을 줬다. 벤그비르 장관의 사원 방문 항의 시위를 진압한다며 이스라엘 경찰이 사원 경내에 진입하자 아랍인들은 ‘선을 넘었다’며 분개했다.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들은 일제히 ‘보복’을 천명했고, 하마스는 결국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해 전쟁의 문을 열었다.

동예루살렘은 평소 전 세계에서 몰려든 성지 순례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전쟁 발발 후 예루살렘 내 테러 우려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구시가지는 텅 비다시피한 모습이었다.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고, 좁은 골목엔 순찰을 도는 이스라엘 군경만이 보였다.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간에 아직 물리적 충돌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로를 적(敵)으로 여기며 견제하는 침묵 가운데의 팽팽한 긴장이 감지됐다.
 

10일(현지 시각)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 입구에서 이스라엘 경찰들이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입장을 통제하고 있다. /정철환 특파원


기념품점을 운영하는 팔레스타인 상인 라시드(39)씨는 “7일 공격 이후 우리(팔레스타인인) 쪽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축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쪽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 중엔 과격한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동예루살렘 유대인 거주 구역에서 만난 미국 출신 제롬(29)씨는 “지난 며칠간 주변 아랍 마을에서 (공격 성공을 축하하며) 폭죽을 터뜨리고, 하늘로 총질을 하는가 하면 밤새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 쪽으로 물건을 던지거나 레이저 포인터를 겨누는 등 도발 행위가 잇따랐다”고 했다. 그는 “남부(가자지구 인근)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이 이곳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살얼음을 걷는 듯한 며칠이 지났다”고 했다.

이스라엘 측은 현재 이곳에서 양측의 충돌을 예방하고 질서 유지를 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테러 및 소요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성벽 안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십 명의 병사들이 실탄을 장전한 소총을 매고 근무를 서고, 구시가지 곳곳을 서너 명씩 조를 이뤄 순찰을 돌고 있었다. 구시가지 외곽 서예루살렘 지역도 주요 골목마다 탐지견들이 동원돼 테러 공격에 대비하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 이스라엘 경찰은 기자들을 불러 세우곤 “어느 나라 사람이냐. 뭐하러 왔냐. 왜 경찰의 사진을 찍느냐”고 캐물었다. 그는 “안전을 보장 못 하니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말라”고도 경고했다.
 

키워드: 동예루살렘·서예루살렘


1948년 예루살렘은 서예루살렘(이스라엘령)과 동예루살렘(요르단령)으로 분할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 때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공식 선포했지만, 유엔은 국제법상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간주한다. 동예루살렘을 실질 관할하는 팔레스타인은 장차 독립국가가 건설될 경우 이곳을 정식 수도로 삼는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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