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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측의 근거 없는 '어린아이 참수' 주장... 확인 없이 그대로 보도한 언론
 

▲  하마스가 이스라엘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모습.
ⓒ AP=연합뉴스


 
예루살렘 시각으로 7일 오전 6시 30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가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개시했다. 5000발 이상의 로켓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하며 시작된 기습공격에 천하의 이스라엘군이 한동안 속수무책이었다.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일 바로 다음 날 시작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에서 양측의 희생자는 이미 제4차 중동전쟁의 희생자 숫자를 넘어섰다.

하마스 병력이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을 뚫고 나와 인근 이스라엘 정착촌을 공격했다.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이 다수 피살되었고 상당수가 인질로 잡혔다. 민간인을 생포해서 가자 지구 안으로 끌고 간 이유는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맞교환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 군이 습격당한 정착촌을 하나씩 탈환하는 와중에 경악스러운 뉴스가 전해졌다. 하마스가 어린아이들을 학살하는 것도 모자라 참수했다는 것이었다. 

하마스의 어린아이 참수 관련 보도의 출발

이스라엘 군 당국은 10월 10일에 하마스의 잔혹함을 널리 공개하기 위해 크파르 아자 키부츠(집단농장)로 외신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 키부츠는 장벽 인근에 있어서 하마스 병력이 제일 먼저 침투했던 곳이다. 이스라엘 군이 되찾기까지 17시간이나 걸리는 바람에 거주민 피해가 매우 컸다. 

문제의 어린아이 참수 보도는 현장에 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소재 i24News 소속 니콜 제덱 (Nicole Zedeck)기자로부터 나왔다. 라이브 방송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머리가 잘린 아기 시체를 목격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인의 말을 옮긴 것인데, 제덱 기자가 보도 장면을 자기 X(구 트위터)에 올리자 조회 수는 금방 수백만 회에 달했다. 
 

▲  하마스의 어린아이 참수 관련 뉴스의 시작은 현장을 방문한 제덱 기자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보도 내용을 SNS에 올렸는데 순식간에 수백 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 제덱 기자 X(구 트위터)


 
제덱 기자는 또 다른 라이브 방송에서 "적어도 40구의 어린아이 시체가 들것에 실려 나갔다"고 보도했고 그것을 연이어 X에 포스팅했다. 이후 두 가지 보도 내용이 합쳐져서 참수당한 어린아이가 40명이라는 내용으로 SNS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참수된 어린아이가 40명이라는 경악스러운 뉴스는 온라인에서 빛의 속도로 확산되었고 다수의 국내외 언론이 인용 보도했다. 보도가 진실인지 여부는 뒷전으로 밀렸고 해당 보도에 대한 검증은 언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다른 저널리스트들은 제덱 기자의 보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무차별 학살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참수된 어린아이 시체는 직접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었던 독립 언론매체 +972매거진의 사진기자 오렌 지브(Oren Ziv)는 어린아이 참수와 관련해 어떤 증거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오래 취재해 온 지브 기자는 이스라엘 군이 어린아이 참수를 구실로 가자 지구를 맹폭하고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정당화할 것을 우려했다. 그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어린아이 참수는 어떻게 '팩트'로 둔갑했는가
 

▲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탈 하인리히(우측) 대변인은 하마스의 어린아이 참수에 대해서 다수의 서방 언론 매체와 인터뷰했다. 총리 대변인의 발언이라 팩트로 간주되었다.
ⓒ FOX NEWS


 
하마스의 어린아이 참수가 팩트라고 여겨지는 데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지난 11일에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대변인 탈 하인리히(Tal Heinrich)는 현장의 군인들로부터 보고받았는데 "참수된 희생자의 일부는 어린아이였다"고 영국의 라디오 방송국 L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인리히 대변인은 하마스 침공 직후 이스라엘 총리실이 특채한 미국 출신 프리랜서 방송인인데, 그의 한 마디가 불러온 파문은 컸다. 이스라엘 총리의 대변인 자격으로 한 언론 인터뷰였기 때문이다.

같은 날 있었던 미국의 유대인 커뮤니티 지도자와의 원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테러리스트가 어린아이를 참수하는 사진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라고 언급한다. 하마스 대원이 어린아이 목을 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을 직접 보고 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미국 언론 매체들은 실제로 해당 사진이 있는지, 있다면 대통령이 정말로 봤는지 백악관에 바로 확인 요청했다. 백악관의 고위 인사는 대통령이 해당 사진을 직접 봤다는 것이 아니라 "관련 보고서와 언론 보도를 의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네타냐후 총리 대변인의 말과 관련 보도를 언급한 것이지, 대통령이 직접 그런 사진을 보거나 구체적으로 확인한 보고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한 발 더 물러섰다. 
 

▲  미국 유대인 커뮤니티 지도자 모임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전격 침공에 대해서 발언하고 있다.
ⓒ White House


 
11일에 나온 이스라엘 군 당국의 성명은 "여성, 어린아이, 노인들이 ISIS의 방식으로 잔인하게 학살당했다"는 것이었다. 어린아이 참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편 하마스는 공식적으로 어린아이 참수를 부인했는데 그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CNN은 하마스가 이번에 민간인, 특히 어린아이들을 참수한 것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가 있는지 SNS에 올라온 관련 포스팅과 영상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단 한 건의 증거 자료도 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어린아이 참수 보도가 처음 나온 크파르 아자 정착촌을 다시 취재하러 갔으나 현장에서도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 (관련기사: CNN, Israeli official says government cannot confirm babies were beheaded in Hamas attack)

하마스의 이스라엘 정착촌 공격으로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고, 그중 다수가 어린아이였다는 것은 여러 매체의 보도로 확인된 사실이다. 하지만 살해된 어린아이들이 참수당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고, 이스라엘 군 당국도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온라인 심리전의 플랫폼이 된 SNS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무대는 온라인으로도 옮겨왔다. 기억해야 할 것은 쌍방이 첨예하게 맞붙는 이런 전쟁에서는 전쟁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양측 지지자도 심리전의 일환으로 허위 정보를 적극 유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확인된 정보, 확인되지 않은 정보, 의도적으로 왜곡한 정보가 거의 동시에 퍼져나간다.

말과 글의 전쟁이자, 사진과 영상의 전쟁이기도 하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서 한 쪽 편을 지지한다고 해도, 지지하지 않는 편의 주장을 모두 거짓으로 치부하거나, 지지하는 편의 주장을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급적 지양할 필요가 있다. 

한쪽의 폭력이 다른 한쪽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다면 이번 전쟁의 최대 피해는 고스란히 양측 민간인의 몫이 된다. 40명의 어린아이 참수가 서방 매체의 헤드라인을 한동안 장식한 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15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개전 이래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2450명이고 그중 어린아이는 724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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