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잠을 자야 한다. 그리고 자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야 한다. 잘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왜 자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잠을 잘 이루지 못하면 몹시 피곤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간의 연구는 일반적 경험에 지식을 보태어 잠이 기억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뇌 안의 노폐물을 정리할 시간을 준다는 것을 밝혀냈다.
과학이 밝혀낸 세 가지 수면 관련 변화를 살펴보자.
먼저 뇌파는 수면 상태를 가장 잘 알려주는 척도로 이를 통해 ‘비렘수면(non-REM sleep)’과 ‘렘수면(REM sleep)’을 구별할 수 있다. 비렘수면 때 뇌파에서는 느린 진동, 그리고 델타 진동이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패턴이 관찰되는데 이들은 기억의 유지와 신경세포의 기능 조절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번째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신호의 변화이다. 뇌 활동 측정에 널리 활용되는 이 기법은 신경세포 활성이나 혈류량에 따라 변하는 ‘혈액 중 산소 의존적 신호’를 측정하는데, 자는 중에는 깨어 있을 때보다 훨씬 큰 폭의 주기적 변화가 보인다.
세번째는 뇌척수액 흐름인데 2013년 미국 뉴욕의 로체스터의대 네더가드 교수팀은 자는 동안 뇌척수액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이로써 치매 관련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포함한 뇌 노폐물 제거가 빨라지는 것을 생쥐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자고 나서 머리가 맑아졌다는 표현을 과학적으로 실증한 셈이다.
과학자들은 나아가 수면 중 여러 변화를 한마디로 설명할 방법을 고민했다. 보스턴대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로라 루이스 박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수면 중 벌어지는 특징적 뇌파와 혈류량 변화, 뇌척수액의 움직임이 특별한 순서로 연결된다고 제시했다. 연구진은 미국 보스턴 마티노스 의생명영상센터에 있는 장비를 활용해 아주 빠른 자기공명영상 기술을 구현했고 이를 통해 기존 한계를 넘어 사람의 제4뇌실에서 뇌척수액 흐름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었다. 깨어 있는 사람에겐 호흡 리듬과 유사하게 3~4초에 한 번씩 약한 강도로 뇌척수액이 유입되지만, 자는 동안에는 20초에 한 번씩 더 많은 양의 뇌척수액이 뇌 안으로 들어왔다. 깨어 있을 때 잔잔히 파도치던 뇌척수액이 잘 때에는 밀물처럼 뇌 안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동시에 대뇌 피질의 자기공명영상 신호도 비슷한 리듬을 가지고 변했는데 자기공명영상 신호의 감소에 이어 뇌척수액 유입이 증가하는 패턴을 보였다. 두개골이 뇌 부피를 제한하기 때문에 혈류량이 줄면서 뇌척수액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해준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뇌파 중 느린 진동이나 델타 진동은 혈류량 감소보다 1초 정도 앞서 일어났다. 특징적인 뇌파가 형성되는 동안에 감소한 신경세포 활동이 혈류량을 감소시키고, 혈류량의 감소로 줄어든 압력이 새 뇌척수액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뇌파 변화는 피질 혈류 변화나 뇌척수액 유입과 같이 주기적이지 않고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기 때문에, 수면 중 뇌파 변화가 모든 변화를 시작할지는 불분명하다. 또 연구에서는 시간적 상관만 제시했기 때문에 각각의 인과성에 대해선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될 것이다.
소개한 루이스 박사팀의 연구는 수면과 관련한 여러 변화가 독립적으로 연구되는 현 추세에서 서로가 연결될 지점을 제시한다고 하겠다.
아이들이 우리가 왜 자냐고 물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알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최한경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인지과학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