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CTBT 비준 철회 서명
"미국과 동등한 조건 위해"
사진=EPA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철회 법안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30년 만에 다시 핵실험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동등한 조건 위해 서명
러시아 정부는 이날 법령 웹사이트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핵실험금지조약 비준 철회 법안에 서명했다고 공지했다. 법안은 공식 발표된 날부터 발효된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은 보도했다.
법령 웹사이트는 이번에 채택된 법이 "핵무기 통제 약속의 동등성을 회복하기 위해"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1996년 유엔 총회에서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이 결의된 후 러시아는 2000년 이를 비준했으나 미국은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비준 철회가 미국과 동등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5일 발다이 토론 연설에서 "이론적으로 (유엔 총회에서 결의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을 철회하는 게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우리가 실험 재개 여부를 선언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원칙적으로는 미국이 조약에 서명하고 비준하지 않은 것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발언이 나온지 보름만인 지난달 17∼18일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은 3차 독회(심의)에 걸쳐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비준 철회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어 상원도 지난달 25일 역시 만장일치로 이 법안을 승인하며 일사천리로 작업을 진행했다.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은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조약으로 196개국이 서명하고 162개국이 비준했다. 이 조약이 공식 발효되려면 모든 국가가 비준해야 한다. 하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개발 가능성이 있는 44개국 중 미국과 이집트, 이스라엘, 이란, 중국 등 8개국이 비준하지 않았다. 인도, 북한, 파키스탄은 서명도 하지 않았다.
◆미국이 핵실험 하면 우리도 한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심화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CTBT 비준을 철회함으로써 소련 시절 이후 30여년 만에 다시 핵실험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서방의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핵실험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비준을 철회해도 이 조약에 서명한 국가로서 먼저 핵실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먼저 핵실험을 한다면 러시아도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핵실험을 한 적 없다. 소련은 1990년, 미국은 1992년 마지막으로 핵실험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비준을 철회하기 전에 미국과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전날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어느덧 20개월로 접어든 이번 전쟁에 대해 "이제 정적이고 소모적으로 싸우는 '진지전'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진지전은 주로 고정된 진지에만 국한되어 이루어지는 방어전을 의미하는 말로, 전투력을 와해시키는 전략이다. 그는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우크라이나에 비해 인구는 3배 많고, 경제 규모는 10배 큰 러시아가 결국 유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